우리 식탁과 방사능 오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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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식탁과 방사능 오염
  • 신현호 편집인대표
  • 승인 2013.08.20 10: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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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현호 편집국장
일본에서 들여오는 수산물이란 명태와 횟감 정도라고 생각했다. 동태가 아닌 생태는 일본산이 많다는 것을 알고 있었고, 원산지 표시가 일본으로 된 돌돔, 참돔, 벵에돔을 본 적이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지난달 수입 수산물 목록을 보니 그것만이 아니었다. 명태는 물론 고등어와 갈치, 낙지, 장어, 홍어, 꼴뚜기, 마른새우, 왕게, 가리비까지 다양했다. 횟감으로도 다랑어, 눈다랑어, 남방참다랑어, 황새치, 돛새치 같은 다양한 참치 종류가 더해졌다. 지역마다 조금씩 다르겠지만 제사상에 오르는 생선들을 거의 모두를 수입하고 있으니 일본 수산물은 어느새 우리의 식탁을 휩쓸고 있다.

인터넷과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중심으로 이른바 방사능 괴담(怪談)이 수그러들 줄 모르고 있다. 국무총리까지 나서 걱정했을 정도이니 영향이 그만큼 심각하다는 뜻일 것이다. 괴담은 ‘일본 국토의 절반이 고농도 방사능에 오염됐다’거나 ‘한국이 수입하는 명태의 90% 이상이 일본산’이라는 내용이 대표적이다. 생각해 보면 일본은 지리적으로 어느 나라보다 가까운 이웃이다. 게다가 먹거리의 상당 부분을 의지하고 있다. 일본의 환경문제에 초연할 수는 없는 형편이다. 실제로 괴담이 퍼져나가기 시작한 것은 도쿄전력이 2011년 방사성물질 유출사고가 일어난 후쿠시마 제1원전에서 고농도 방사성 오염수가 지속적으로 바다로 흘러들고 있다고 고백한 이후의 일이다. 일본 정부의 사고 수습이 신뢰를 주지 못하니 괴담이 떠도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일본에서 들여오는 수산물에서 방사성물질이 검출됐다는 것은 이제 더 이상 뉴스가 아니다. ‘투명사회를 위한 정보공개센터’가 농림수산검역본부를 통해 확인한 자료에 의하면, 지난 한 해 일본에서 수입된 냉장 명태, 냉동 고등어, 냉동 대구에서 각각 34회, 37회, 9회에 걸쳐 세슘이 검출됐다.

세슘은 자연에서 나오는 방사성물질이 아니다. 세슘이 발견됐다는 것은 원전에서 유출된 방사성물질에 오염됐다는 증거다. 지난해 세슘이 검출된 수입 수산물은 정상적으로 유통됐다. ‘기준치 이하’ 판정이 내려졌기 때문이다. 세슘이 검출된다는 사실 자체도 큰 문제지만, 기준치와 정보 공개 또한 논란거리다. 다른 나라에 견주어 검사 기준과 대상이 엄격하지 않고, 또 그마저도 일반에게 정확하게 알려지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며칠 전에도 충격적인 소식을 접했다. 민주당 장하나 의원과 ‘핵 없는 사회를 위한 공동행동’(이하 공동행동)이 기자회견을 열고 정부의 직무유기를 규탄한 것이다. 정부는 이미 ‘인접국가 방사능 누출 사고 매뉴얼’을 만들어 놓고서도 그에 따른 조처를 전혀 취하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장 의원과 공동행동은 지난 7월24일 일본 정부가 후쿠시마 원전에서 하루 300t에 달하는 방사능 오염수가 바다로 유출되고 있으며, 고농도 방사성 증기가 대기로 확산되고 있다고 밝혔는데도 우리 정부가 위기 경보를 발령하지 않고 있다고 비판했다.

일본 정부는 사고 원자로를 폐기하는 데 40년이 걸린다고 밝힌 바 있다. 앞으로 40년 동안 방사성물질이 해양과 대기 속으로 끊임없이 유출된다는 것이다. 불행하게도 우리 주변에는 후쿠시마 말고도 수 십기의 원전이 더 있다. 국내에서 가동 중인 것은 13기이고, 일본 50기, 중국 18기, 대만 6기 등 모두 74기의 원전이 한반도를 에워싸고 있다.

방사능 오염 수입 식품에 대한 논란을 지켜보면서 5년 전 광우병 사태가 떠올랐다. 당시 광우병에 대한 걱정도 ‘괴담’으로 치부됐다. 그때도 느슨한 검역 시스템이 도마에 올랐다. 2008년에도 정부는 연일 ‘문제없다, 안심하라’고 발표했다. 수산물은 육류 못지않게 식탁에 자주 오르는 먹거리다. 게다가 방사능 오염은 광우병보다 훨씬 더 근본적이고 광범위하고 장기적인 문제다. 방사능 오염에 대한 국민의 우려를 ‘괴담’ 수준으로 받아들인다면 이건 정말 위험하다.

후쿠시마 지진해일 때 떠내려간 오토바이가 14개월 만에 미국 서부 해안에서 발견됐다. 후쿠시마 상공의 대기는 2~3주면 지구를 한 바퀴 돈다. 바다와 하늘, 인간과 자연은 모두 연결돼 있다는 엄연한 사실이다. 후쿠시마 사태는 일본만이 아니라 세계 전체가 직면한 대재앙임이 분명하다. 원자력은 본래 인간이 감당할 수 있는 기술이 아니다. 그럼에도 이것을 망각하고 덤벼든 주제넘은 짓의 결과가 지금과 같은 속수무책의 상황을 불러온 것이다. 아무리 몰라도 ‘괴담’ 운운할 때가 아니라는 것쯤은 알아야 한다.

불길한 얘기를 하자면 끝이 없다. 작년 5월 독일 막스플랑크 연구소가 발표한 연구도 그렇다. 그 연구에 의하면, 향후 지구상에서 원자력 대사고 발생 확률은 10~20년에 1회라는 것이다. 이 예측이 맞고, 세계의 원자력 시스템이 이대로 간다면, 100년 안에 적어도 북반구는 거주 불가능한 불모의 공간으로 변할 것이 틀림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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