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강운태 시장, ‘체 게바라’ 몰이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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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강운태 시장, ‘체 게바라’ 몰이해
  • 광주데일리뉴스
  • 승인 2013.08.20 13: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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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의 도시, 창조의 도시, 민주주의의 성지인 광주에서 색깔론의 망령이 되살아났다. 그것도 천진난만한 아이들의 옷차림을 두고 말이다. 광주시는 광복절 경축식에서 시립소년소녀합창단이 남미 사회주의 혁명가 체 게바라의 얼굴이 그려진 티셔츠를 입고 공연한 데 책임을 물어 지휘자를 징계키로 했다. 당초 단순한 해프닝으로 판단했으나 일부 언론이 색깔론을 제기하자 입장을 180도 바꿨다고 한다. 광주시가 책임자의 예술적 의도가 없었음을 분명히 확인하고도 징계 절차를 밟아 “문화예술 창작의 다양성과 자율성을 침해하는 처사”라는 비판론이 커지고 있으며, ‘단순 해프닝’을 논란으로 키운 광주시의 ‘문화 마인드’ 몰이해를 문제 삼는 목소리가 높다.

광주시립소년소녀합창단은 지난 15일 광복절 경축식 기념공연에서 유관순 열사를 상징하는 흰색 저고리를 입고 무대에 올랐다. 단원 48명은 ‘광주는 빛이어라’를 부르다 저고리를 벗고 체 게바라의 얼굴이 새겨진 검은색 티셔츠를 내보였다. 참석자들은 박수를 보냈고 강 시장도 무대에 올라 흥겨워했다고 한다. 논란은 전홍범 광주보훈청장이 “행사 취지에 맞지 않는 복장 같다”고 지적하면서 비롯됐다. 강 시장 지시로 조사를 벌인 광주시는 “흑백 대비를 통해 희망의 메시지를 전달하려는 것이었을 뿐 특별한 의도는 없었다”는 지휘자 이모씨의 해명을 듣고 문제 삼지 않기로 했다. 그러나 이튿날 보수신문들이 비판하자 갑자기 돌변해 이씨를 징계위원회에 회부했다는 것이다.

아르헨티나 출신의 체 게바라는 피델 카스트로와 함께 쿠바 혁명을 이끈 인물이다. 쿠바 중앙은행 총재와 장관을 지내며 2인자에 올랐으나 안락한 삶에 머무는 것을 거부했다. 이상과 좌절, 모험과 유랑, 낭만과 비극이 공존한 체 게바라의 삶은 그를 세계적 ‘문화 아이콘’으로 만들었다. 별을 단 베레모와 덥수룩한 구레나룻의 ‘체 게바라 티셔츠’가 전 세계 자본주의 국가에서 인기를 끄는 이유다. 2000년 출간된 <체 게바라 평전>은 전기 판매가 부진한 한국 시장에서도 베스트셀러에 오른 바 있다.

요컨대 체 게바라 티셔츠에 이념적 잣대를 들이대는 것은 문화적 무지와 몰이해를 고백하는 일에 다름 아니다. 표현의 자유를 들먹이기조차 민망한 문제다. 더욱이 강 시장이 ‘임을 위한 행진곡’을 퇴출시키려 했던 보훈처의 한마디에 조사를 지시하고 보수언론의 낡은 색깔론에 백기를 든 것은 납득하기 어렵다.

어떤 의도 없이 벌어진 일이고, 설사 의도가 있었더라도 광주시가 일부 보수단체나 보수언론의 반발이 있다고 징계를 내리는 것은 옳지 않다. 광주가 진정으로 문화·예술도시를 표방한다면 어떤 항의에도 문화예술의 표현적 자유를 보장해야 하는 것은 당연하다.

지금까지의 광주시 행정이 그랬듯이 눈치 보는 시장, 귀가 얇은 강운태 시장은 아마도 내년 지방선거에서 재선을 노리고 있는 가운데 보수세력의 무분별한 이념공세에 굴복한 소신없는 행정의 결과로 볼 수밖에 없어 안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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