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형배 성명서]"광복절과 안 맞다" 체게바라 티 입었다고 중징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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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형배 성명서]"광복절과 안 맞다" 체게바라 티 입었다고 중징계?
  • 광주데일리뉴스
  • 승인 2013.08.20 17: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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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형배 광산구청장

▲ 민형배 광산구청장
충격이었다. 이어진 광주시립소년소녀합창단 단장이 중징계를 받게 되었다는 것이다. 무슨 잘못을 했기에 그러는 것일까. 도무지 믿을 수가 없는 소식이었다. 하루 전 이 단장은 참으로 멋지게 광복절 기념 공연을 우리에게 선물했었는데…. 공연예술 분야를 잘 알지는 못하지만, 몇 차례 접한 이 단장의 공연은 인상적이었다. 관객의 호응을 이끌어내는 무대 연출이 압권이었다. 충분히 창의적이었고, 보고 듣는 이를 강하게 사로잡는 매력이 있었다. 예술적 완성도가 빼어나다는 느낌을 받았다.

15일 빛고을시민문화관에서 있었던 광복절 68주년 기념 공연도 감동적이었다. 공연장을 가득 메운 관객들 모두가 큰 환호와 함께 아낌없는 갈채를 보냈다. '광주의 노래'인 <광주는 빛어어라>가 울려 퍼질 때 강운태 시장은 무대에서 합창단원들과 함께 춤을 추기까지 했다. 벅찬 흥이 저절로 올라 나 역시 무대 아래에서 춤추고 뛰었다. 나는 기념식 직후 합창단을 찾아가 광주시민의 한 사람으로서 감사의 마음을 전했다. 광산문화예술회관 무대에서 초청공연을 갖고 싶어 필요한 절차와 시기를 검토해볼 참이었다.

그런데 광복절 공연이 끝난 바로 다음 날 광주시가 이 단장의 중징계를 결정한 것이다. 알아보았더니 기념식 당시 공연단원들이 입은 '체 게바라 티'가 문제였다. <광주는 빛이어라>를 부를 때 합창단원들이 입고 있었던 하얀색 한복 상의를 벗었는데 이때 체 게바라가 그려진 검정색 옷이 드러난 것이다.

이 의상에 대한 문제제기는 공연 당시 행사장에 있었던 전홍범 광주보훈청장이 한 것으로 알려졌다. 전 청장은 "광복절 행사의 취지에 맞지 않은 복장인 것 같다"며 강력하게 문제제기를 했고, 이에 강운태 시장이 진상파악을 지시했다는 것이다. 다음 날 시 관계자는 "광복절의 의미와 상반되는 의상으로 판단돼 중징계를 결정했다"고 발표했다.

이어진 단장은 "흰 한복과 대비되는 색의 옷을 입으려 했는데 단원 48명 전원이 똑같이 입을 수 있는 의상이 6월 공연 때 산 체 게바라 얼굴이 그려진 것밖에 없었다"며 "이 옷도 예산이 부족해 학부모들이 구입한 것으로 어떤 의도를 가진 것은 아니다"라고 해명했다.

이어진 단장이 중징계 당하는 순간, 광주는 '정율성'을 버려야 한다

앞뒤 정황을 살펴보면 이 단장이 특별한 의도를 가지고 의상을 선택했던 것 같지는 않다. 그렇지만 의상 또한 공연의 일부이므로 체 게바라와 광복절이 서로 어긋나지는 않는다는 판단 정도는 이 단장이 했을 것도 같다. 물론 이 대목은 내 추측이다. 문제는 이 사안이 '징계'까지 이어져야 하느냐는 것이다.

언론을 비롯해 주변의 대체적인 시각은 "김구 선생이나 윤봉길 의사 등 우리나라 독립운동가 얼굴이었으면 더 좋았을 텐데, 적절한 것 같지는 않다"는 것이다. 나 역시 비슷한 생각이다. 이 단장이 좀 더 '센스 있는' 선택을 했다면 이런 소란은 생기지 않았을 게 분명하다.그러나 이 정도의 의견, 문제제기를 하는 데서 멈추는 게 옳다고 본다. 중징계를 검토하고, 사상적 재단을 하려는 일부의 태도는 도를 넘어도 한참 넘는 '문화적 테러'라는 게 내 입장이다. 세 가지 이유만 들겠다.

첫째, 문제의 대상이 '예술작품'이기 때문이다. 진화한 문명권일수록 표현에 대한 관용도가 넓다. 그 표현이 예술작품이라면 관용의 폭은 더 넓어야 하고, 실제로도 더 넓기 마련이다. 당대의 통상적인 의식 및 가치체계에 의미 있는 파열음을 내어 문명 진화를 위한 단초를 제공하는 게 예술의 중요한 기능이기 때문이다.

광복절과 체 게바라의 만남은 우리가 허용할 수 있는 문화적 관용의 범위 안에 있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다른 의견이 있을 수 있겠다. 그렇다면 어디까지가 관용의 범위 안에 드는지 서로 이야기를 나누면 된다. 그러나 징계라고 하는 회초리까지 드는 것은 표현의 자유시장에 대한 지나친 간섭이다. 이러한 간섭은 공동체의 활력과 에너지를 심각하게 차단한다. 논쟁의 대상과 형벌의 대상을 구분하지 못한, 혹은 하지 않는 데서 파시즘이 시작된다는 점을 되새길 필요가 있다.

둘째, 그 인물이 체 게바라이기 때문이다. 그를 공산주의 혁명가, 사회주의 혁명가라고 강조하는 것은 틀린 이야기이다. 그는, 모든 억압으로부터의 자유, 인간해방을 꿈꾼 혁명가였다. 체 게바라에게 공산주의나 사회주의는 부차적인 관심 사안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그는 쿠바의 독재자를 몰아내고 나서 '한 자리' 꿰차지 않고, 다시 볼리비아의 밀림 속으로 들어갔던 것이다.

이 같은 체 게바라의 특성은 좌우를 막론하고 인정하는 사실이다. 다소 어색할 수는 있겠지만 본질적인 차원에서 광복절과 체 게바라가 만나는 것이 부적절하지는 않다는 것이다.

셋째, 공연의 장소가 광주이기 때문이다. 광주는 민주·인권·평화의 도시를 표방하고 있다. 또한 광주는 문화중심도시를 꿈꾸고 있다. 체 게바라는, 영화배우 제임스 딘과 별 차이 없이 해방과 저항의 아이콘으로 전 세계 젊은이들에 의해 소비되고 있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의 몇몇 선거캠프에서는 체 게바라의 사진을 걸어 놓기도 했다.

KBS클래식FM이 지난해 12월에 발매한 '한국인이 사랑하는 월드뮤직' 앨범에는 <체 게바라여 영원하라(hasta siempre commandante che guevarra)>라는 노래가 들어 있다. 몇 해 전, 광주극장을 포함해 한국의 예술영화 전용극장에서는 젊은 시절 체 게바라의 삶을 담은 영화 <모터사이클 다이어리>를 상영했었다. 프랑스 사상가 샤르트르는 체 게바라를 일컬어 "20세기가 낳은 가장 완벽한 인간"이라고 표현했다.

사회주의나 자본주의라는 이념틀로는 포섭할 수 없는, 인간해방과 관련된 보편적 인물이라는 게 가장 지배적인 시각이다. 굳이 규정한다면, 체 게바라는 반제국주의, 반독재 실천가였다. 우리 독립운동가의 희생, 5·18항쟁의 광주시민과 근본에서 다르지 않다. 이런 인물을 민주·인권·평화의 도시이자 문화중심도시라는 광주가 수용하지 못할 이유를 나로서는 찾을 수가 없다.

광주가 빛인 이유는 체 게바라를 수용하는 관용과 용기가 있기 때문

보훈청장이 문제제기를 했다는 점 또한 찜찜하다. 알다시피 국가보훈처는 5·18기념식장에서 <임을 위한 행진곡>을 지우려 했다. 그리고 이제 와서는 공연의상을 문제 삼으면서 사상적 재단, 이념공세의 포문을 열고 있다. 기념식장을 가득 메운 다른 관객들이라고 해서 체 게바라를 몰랐겠는가. 열기와 환호, 함께 추는 춤에서 대다수 관객들은 이미 체 게바라를 용인했던 것이다. 나 역시 그랬다.

국가보훈처에 부탁컨대 '체 게바라 티'를 단속하려면 먼저 KBS클래식FM이 발매한 음반부터 판매 중지시키고, <모터사이클 다이어리> 상영극장에 대한 정부 지원금도 회수해야 할 것이다. 그것이 국기기관으로서 지켜야 할 형벌의 형평성에 맞는 절차 아니겠는가.

중징계를 결정한 광주시 태도도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는다. 광주시가 '공식적'으로 자랑하는 인물 중 한 사람이 정율성이다. 광주 출신으로 사회주의 중국의 <인민해방군가>를 작곡했다. 남구의 한 아파트 담벼락에는 정율성의 일대기와 업적이 조각되어 있다. 광주시는 해마다 '정율성음악제'를 연다. 광주시가 정율성을 추켜세우면서 체 게바라를 배척하는 것은 놀라운 모순이다. 정율성의 사회주의가 체 게바라의 사회주의보다 덜하다는 증거는 어디에도 없다. 이어진 단장이 중징계를 당하는 순간 우리는 정율성을 버려야 한다.

'광주의 노래' 제목이 의미하는 바, 광주가 빛인 이유는 체 게바라를 수용하는 관용과 용기가 있는 도시였기 때문이다. 협소한 이념적 시각, 단속주의 문화행정으로 누군가가 부당한 대우를 받을 때 광주가 서야 할 자리는 어디일까. 어느 자리에 서 있어야 광주가 빛일 수 있을까.

광주의 한 자치구를 대표하는 공직자로서 나는 이어진 단장에게 많이 미안하고, 부끄럽다. 이 단장에게 덜 미안하고, 덜 부끄럽기 위해 나는 앞으로 할 수 있는 일이 있다면 기꺼이 손을 보탤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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