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사원의 영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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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원의 영혼
  • 신현호 편집인대표
  • 승인 2013.08.28 14: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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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현호 편집국장
선과 악을 이분법적 대립으로 보는 서양 문명에선 '악마에게 영혼 팔기'가 예술의 단골 소재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괴테의 '파우스트'임은 말할 나위도 없다. 지식에 대한 환멸에 빠진 노인 파우스트는 악마 메피스토펠레스에게 영혼을 파는 대가로 젊음과 환락을 얻지만 파멸에 직면한다. 그러나 영혼이 맑은 그레첸에게서 구원을 받는다.

샤미소의 '그림자를 판 사나이'도 있다. 한 청년이 행운의 주머니를 받고 악마에게 그림자를 판다. 그림자는 아무 쓸모 없는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왕따가 된 그는 햇빛 아래에 설 수 없는 신세가 된다. 악마가 다시 그림자와 영혼을 바꾸자고 꾀지만 이번엔 유혹을 물리친다.

기독교의 사탄은 원래 루시퍼란 이름의 대천사다. 가장 아름답고 품계가 높았지만 스스로 신이 되려고 모반했다가 지옥으로 추방됐던 것. 그래서 성경에도 '영혼 팔기' 설화가 많다. 욥은 신과 내기한 악마의 농간으로 졸지에 재산과 자식을 잃고 피부병까지 앓지만 끝내 굴복하기를 거부한다. 하기야 예수조차도 악마의 유혹을 받았으니, 제게 경배하면 지상의 권세와 영광을 주겠노라고 유혹하는 악마에게 예수는 "성서에 주님만을 섬기라고 돼 있다"고 단호히 거부한다. 악마에 대한 경배는 곧 영혼을 파는 행위라는 것이다.

며칠 전 감사원장을 물러난 양건 씨가 "현실적 여건을 구실로 독립성을 저버린다면 감사원의 영혼을 파는 일"이란 퇴임사를 남겼다. "외풍을 막기엔 역부족이었다"는 알 듯 말 듯한 말도 했다. 4대강 감사에서 정권의 눈치를 보며 갈지(之)자를 걸었던 감사원의 행태에 그의 책임이 없다고 할 수는 없다. 하지만 감사원의 영혼 팔기에 대한 그의 회한은 새길 만하다.

다산 정약용의 '간리론(奸吏論)'의 한 구절이다. '감독자가 자주 바뀌면 (하급 관리가) 간사하게 되고 감독자의 행동이 정도(正道)가 아니면 간사하게 되며 윗사람이 외롭고 어리석으면 간사하게 된다.' 감사원이건, 국정원·경찰이건 공무원의 영혼을 사들이는 행위는 민주주의를 능욕하는 죄다. 증인선서조차 거부하고 거짓말을 쏟아낸 이른바 '원·판'이란 사람들에게도 그림자가 남아 있는지 궁금하다. 아니, 그들의 영혼을 산 자는 과연 누구인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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