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모님 탈옥’과 같은 일은 없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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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모님 탈옥’과 같은 일은 없어야
  • 광주데일리뉴스
  • 승인 2013.09.05 17: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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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대생 청부살해 사건’ 주범 윤길자씨의 주치의인 박모 연세대 세브란스병원 교수와 남편인 류모 영남제분 회장이 구속됐다. 박 교수는 윤씨가 형집행정지를 받을 수 있도록 허위 진단서를 발급해준 혐의를 받고 있다. 류 회장은 가짜 진단서를 받는 대가로 회사 돈을 빼내 박 교수에게 1만달러 이상을 건넸다고 한다. 윤씨는 무기징역형을 선고받고도 형집행정지를 수차례 연장해가며 4년간 병원 특실에서 생활해온 사실이 알려져 공분을 일으킨 바 있다.

수사 결과를 들여다보면 윤씨의 ‘합법적 탈옥’도 다른 탈옥과 매한가지로 ‘불법’으로 점철돼 있다. 박 교수는 2007년 6월 이후 10여차례에 걸쳐 윤씨에게 허위 진단서를 내줬다고 한다. 협진의사로부터 의학적 소견을 받아 최종 진단서를 작성할 때 내용을 임의로 변경하거나 과장했다는 것이다. 윤씨의 진단서에는 유방암과 파킨슨증후군, 우울증을 비롯해 12가지에 이르는 병명이 등장한다. 돈으로 사고판 진단서 앞에서 ‘법 앞의 평등’이라는 원칙은 무력했다. 형사사법 시스템은 완전히 우롱당했다.

형집행정지 처분의 결정권자는 검사다. 윤씨 사건에서도 마땅히 검사의 책임을 물어야 한다. 검찰 관계자들은 “의사가 형집행정지 의견을 냈을 때 전문지식이 없는 검사들이 반대하기란 쉽지 않다. 만약 반대했다가 (수감자가) 사망하기라도 하면 더 큰 문제가 될 수 있다”고 해명하는 모양이다. 그러나 비전문가라는 이유만으로 면책될 수는 없다. 수감자 쪽 의사가 작성한 진단서만 믿지 말고 다른 의사를 통해 교차 검증을 했다면 윤씨의 호화 생활은 불가능했을 터이다. 박 교수는 수사선상에 오른 뒤 동료들에게 보낸 e메일에서 “진단서 의견만으로 형집행정지가 내려졌겠느냐”며 억울해 했다고 한다. 뭐가 억울하다는 건지 이해할 수가 없다. 책임 회피를 위한 변명으로만 치부하는 이런 의사들이 있어서는 안 된다. 박 교수도 자식을 둔 아비로서 가슴에 손을 얹고 생각을 해야 한다. 의사윤리강령 제4장 23조에는 ‘의사는 정당하지 않은 방법으로 경제적 이득을 취하여서는 안된다.’고 적혀 있다.

채동욱 검찰총장은 윤씨 사건과 관련해 “앞으로 형집행정지 결정에 어떤 의혹도 제기되지 않도록 절차적 공정성과 투명성을 높여야 한다”고 밝힌 바 있다. 타당한 얘기다. 형집행정지 심사·관리 절차는 반드시 강화해야 한다. 하지만 이와 별개로 윤씨 사건에서 검찰이 어떤 역할을 했는지도 명확히 규명해야 한다. ‘사모님 탈옥’은 한국 사회에 정의가 존재하는지 의문부호를 찍게 만든 상징적 사건이다. 공익의 대표자인 검찰은 ‘검사 선서’에서 밝히고 있듯이 스스로에게 더 엄격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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