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무공 이순신의 리더십과 애국정신(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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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무공 이순신의 리더십과 애국정신(2)
  • 최준원 위원
  • 승인 2015.04.28 16: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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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광주국제행사 성공시민협의회 시민강사 최준원
오늘은 이 충무공 탄신 제470 주년이다.

어리석은 자는 경험을 한 후에 후회하면서 배우고, 현명한 자는 역사를 통해서 배운다고 했다. 우리나라가 처한 작금의 현실은 임진왜란 당시와 흡사하다. 일본은 군대 위안부 문제와 독도교과서 왜곡, 혐한시위 등으로 심각한 대립관계를 조성하고 있고, 국내 정치권은 국익은 아랑곳없이 이념과 당파의 이익을 위해서 극심한 대립과 국론 분열을 일삼고 있다.

이러한 때에, 나를 냉철하게 반성하고 지금 우리들이 무엇을 어떻게 대처해야 할 것인가?를 고민하면서 역사속의 이순신의 인간적인 삶과 리더쉽을 반추해보려 한다. (난중일기 참고).

임진 왜란 발발 전 일본의 정세를 살펴보기 위해서 1590년(선조23년)에 황윤길을 통신사로, 김성일을 부사로 임명하여 통역관과 함께 사절단을 보냈다. 1591년(선조24년)에 돌아온 황윤길과 통역관은 일본이 전쟁 준비를 하고 있으니 그들의 침략에 대비해야 한다고 했고, 김성일은 침략의 기미가 없다고 보고했다.

당시 실권을 장악하고 있던 동인 세력은 무사안일에 젖어 일본의 정세를 외면하고 김성일의 보고만 믿고 침략에 대한 대비를 전혀 하지 않았다. 그러나 일본은 100여 년 동안 무사들이 전투를 벌이는 ‘戰國 (전국)시대’를 겪으며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일본을 통일하고 전쟁준비를 착착 진행하고 있었다. 때문에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조선은 우왕좌왕하였고 조선군은 일본군의 총칼 앞에 벌벌 떨며 도망치기에 바빴다. 용인전투에서는 조선군 5만 명이 일본군 1,600여명이 나타자자 도망치다가 전멸을 당한 황당한 일이 벌어졌다.

통제사 원균이 부산 앞 바다 해상전투에서 참패하고 사망하자 선조임금은 이순신을 다시 3도수군 통제사로 임명하면서 수군이 너무 약하니 수군을 폐지하고 도원수 권율 장군 휘하의 육군에 합류하라고 명령했다.

이순신은 자기 확신의 장수다.

이순신은 “신에게는 아직도 12척이 있습니다. 죽을힘으로 막아 지키면 오히려 해낼 수 있습니다.
만약 지금 수군을 폐지한다면 일본군이 충청도를 거쳐 한양까지 진격할 것 입니다“라고 설득하여 수군 폐지의 명령을 철회시켰다. 권율도 백의종군의 수모 속에서도 오직 백성과 나라구할 생각만 하는 이순신의 애국심과 용기, 전장에서의 지략을 높이 평가하고 있었다.

이순신은 아무런 보상을 바라지 않았다. 돈이든 쌀이든 어떤 보상도 받지 않고 자기위치에서 오직 조국과 백성을 위해서 온 몸을 받친 사람이다. 이순신은 울음이 많은 장수였다. 출세나 이익, 자신의 시련 때문이 아니라, 늙으신 어머니 걱정, 전쟁으로 위기에 처한 나라 걱정, 백성 걱정, 군사들의 고달픈 삶에 대한 걱정으로 울었다. 적에 대한 분노, 리더로써 책임감과 열정에서 솟구치는 피눈물이었다.

영국의 재상 윈스턴 처칠은 세계2차 대전이 한창이던 1940년 5월 의회에서 “내가 받칠 것은 오직 피와 땀과 눈물밖에 없다.”고 하였으나 이순신은 조국을 지키기 위해 지기목숨까지 다 바쳤다. 평상시에는 부하 장수들과 자주 술을 마시며 놀이도하고 열린 마음으로 소통하고 사기를 진작시켰다. 한 치 앞이 안 보이는 무서운 전쟁터에서 군사와 백성의 고통을 치유하고 마음을 모으는 도구로 술을 활용했다. 술자리는 허황되거나 과장된 이야기가 넘친다. 그러나 귀 기울여 듣다 보면 실전을 치르는 장졸들의 지혜를 뜻하지 않게 얻은 경우가 적지 않았다.

그러나 법을 위반하고 약속을 지키지 않았을 때는 가차 없이 처벌하여 군법의 준엄함을 보임으로써 장수들의 비겁함과 두려움을 깨고 적극적으로 전투에 참여하도록 독려 했다. 출전명령을 하자마자 탈영한 병졸, 탈영병이 발생한 사실을 알고도 뇌물을 받고 허위로 보고한 관리들, 소를 훔치고 일본군이 침입했다고 헛소문을 내어 민심을 교란케 한 사람도 사형에 처하고 효수했다.-높은 용병술.

이순신은 배포가 큰 사람이다.

명나라 해군 제독 진 린이 왔을 때는 중국의 해군 5천여 명을 음식과 술로 흠뻑 취하게 만들었다. 군량이 부족해 늘 굶주리면서도 비축한 식량과 술로 성대한 잔치를 열었다.

장수는 용기와 지혜를 겸비한 사람을 선발했다. 위태로운 상황에서도 태산처럼 담대하고 번개처럼 지혜를 번뜩여야 한다고 했다. 다른 사람이 아직 보지 못한 것을 먼저 보고, 다른 사람이 듣지 못한 소리를 먼저 들으라고 했다. 자신의 직무를 수행하기 위해서 완전히 헌신했기 때문에 군사들과 백성이 따랐고 충성을 다해 주었다. 하늘도 도와 주셨다.

난중일기는 임진왜란 전쟁 중에 이순신이 싸우면서 하루하루의 일 들을 기록으로 남겨놓은 것이다. 이 일기들을 통해서 임진왜란의 상황을 매우 구체적으로 파악할 수 있다. 이러한 가치를 인정받아서 난중일기는 2013년에 UN 세계 기록 유산으로 지정되었다.

지금 우리가 처한 상황은 참으로 엄중하다. 환경 탓, 남의 탓, 나라 탓만 하지 말고, 각자가 각자의 위치에서 이순신으로 거듭나서 주인정신을 가지고 자신의 행복과 공동체를 위해서 이 나라의 발전과 안전을 위해서 자신의 직책에 최선을 다해 헌신하는 것이 역사를 통해 배우는 삶이라 믿는다.

임진왜란을 기억합시다.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는 미래가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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