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력(生命力)
상태바
생명력(生命力)
  • 윤정한 위원
  • 승인 2015.04.28 16:53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 윤정한 공학박사 전남대학교 명예교수
생명체가 살아 꿈틀거리는 약동(躍動)하는 봄이다. 봄은 날씨가 따뜻함에서도 느낄 수 있지만 오묘(奧妙)한 생명력을 느끼게 하는 것은 약동하는 생명체에서 느낄 수 있다. 나무에서는 눈꼽만한 잎의 씨가 먼지인지 씨눈인지 모를 만큼 작은 무엇인가가 보인다. 그것도 자세히 보아야 한다. 그로부터 2-3일 지나면 이제 새싹이 보이기 시작해 일주일 정도 지나면 완연한 잎의 자태가 드러난다.

나뭇잎에서도 봄을 느끼지만 흙을 뚫고 나오는 잡초와 나물류의 새싹에서도, 그리고 새봄에 뿌려둔 강낭콩이 흙을 뚫고 나오는 것을 보면 그야말로 신기함 자체다. 씨가 흙속에서 싹을 튀어 그 어린 생명체가 자기보다 몇 배나 더 큰 힘으로 누르고 있는 흙을 뚫고 나오는 것을 보면 생명체의 오묘함과 자연의 신비함을 동시에 느끼게 한다. 어떤 놈은 꽃부터 나오는가 하면 어떤 놈은 새 잎부터 나온다. 어떤 놈은 평생 동안 그 키가 지면(地面)에 닿을 정도로 작지만 어떤 녀석은 나오자마자 키가 쑥쑥 자라서 일주일 정도 후면 20-30cm 정도로 훌쩍 커 버린 놈도 있다.

우리 내외는 시골 산중에서 지난해에 꾸지뽕 100여주와 두릅 1,000주 정도를 심어서 가꾸고 있다. 꾸지뽕은 아직 자라고 있어 그 재미를 느낄 수 없지만, 작년 봄에 친구와 친지의 도움을 받아 심어 놓은 두릅은 얼마 전부터 전혀 새순이 돋아날 것 같지 않던 깡마른 두릅나무의 제일 꼭대기에 조그마한 잎이 머물기 시작했다. 그런데 약 1주일 정도 지나면 따 먹을 수 있겠지 하고 방치해 두었는데 1주일 후에 다시 두릅 밭을 방문해 보니 벌써 상품(商品)으로서의 가치가 떨어질 만큼 훨쩍 커 버렸다. 누가 언제 어떤 힘을 작동시켜 메마르기만 했던 두릅 줄기에 이 아름다운 잎을 세상에 나오게 했을까? 과학적으로는 설명이 가능하겠지만 약동하는 힘과 나무 가지를, 그리고 흙을 뚫고 나오는 에너지를 우매(愚妹)한 나의 생각으로는 언뜻 이해하기가 불가능(不可能)하다.

어디 식물뿐이겠는가? 우리 인생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갓난애는 예쁜 토끼 정도의 크기보다 작지만 하루, 한 달, 100일이 지나면 언제 컸는지 모르게 커서 빵긋 빵긋 웃기도 한다. 참 신기하게 바라볼 뿐이다. 그런데 갓난애에게는 엄마가 영양분을 공급해 주기 때문이라고 생각되지만 강낭콩, 취나물, 고사리, 잡초들에게는 인공적인 영양을 공급해주지 않았는데도 봄이 되면 무거운 흙더미를 뚫고 올라온다. 뿌리가 토양속의 영양분을 섭취하면서 성장한 것이라고 생각해 버린다.

뿌리의 발달 상태도 가지가지다. 쑥 뿌리를 비롯한 대부분의 잡초 뿌리는 대단히 발달해 실타래처럼 얽혀있지만 머위 뿌리는 나무뿌리와 유사하다. 길게 뻗지만 잔뿌리가 많지 않다. 그런데 그 힘에 감탄을 하는 것이다. 흙을 쑥 들어 올리고 자기의 쪼그마한 꽃잎을 세상 밖으로 내밀어 호흡하는 힘의 신비함이 대단하다. 언제, 그리고 무슨 힘으로 흙을 뚫고 나오는 새싹은 항상 신기하기만 하다. 단지 지수화풍(地水火風)의 힘이 어우러져 낸 결과 정도로 추축해 버린다. 지수화풍은 지구에서 생명체가 존재하게 하는 위대한 요소다.

그러나 우리 인간은 이들의 위대함을 느끼지 못하고 살고 있다. 이 얼마나 우매(愚昧)한 인간인가? 그러나 인화(人花)는 어떤 꽃보다 아름답고 신비한 존재물(存在物)이다. 나는 어느 날 명상을 하다가 ‘인간이야말로 이 지구상에서, 아니 이 우주에서 가장 오묘(奧妙)하고 신비(神秘)한 존재물’이라는 깨달음이 번쩍 일어났다. 그 후로는 사람을 보면 특히 어린 꼬마나 초등학생을 보면 얼마나 예쁜 존재물인지 감탄하고 또 감탄하는 경우가 가끔 있다. 그리고 어디에 가서 강의를 하면 첫 강의 시간에 꼭 하는 말과 행위가 있다. “여러분 반갑습니다. 여러분은 이 우주에서 얼마나 아름답고 오묘하고 신비한 존재물입니까? 나는 여러분에게 최대의 경의(敬意)를 표하기 위해 두 손으로 합장하고 인사 올립니다.” 한다. 그냥 장난삼아 하는 말도 아니고 더욱이 허언(虛言)도 결코 아니다. 신비하고 오묘하고 예쁘디 예쁜 존재물에게 진심으로 인사를 드리는 것이다.

그런데 그 새싹들은 어떻게 그렇게 청순(淸純)하고 한량없이 예쁠까? 나의 최근 화두는 무망 청정심(無望 淸靜心)이다. 나의 몸은 시간의 흐름에 따라 세포가 퇴화되어 어쩔 수 없겠지만 나의 마음은 어린 새싹처럼 청순(淸純)해질 수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어떻게 하면 어린 새싹처럼, 어린이들처럼 내 마음이 청순해 질 수 있을까?

그래서 생각해 낸 것이 청정경(淸淨經)에 있는 한 구절이다. 청정경(淸靜經)에 견기욕(遣其慾)하고 증기심(澄其心)하면 상청정(常淸靜)하리라고 했다. 내 마음도 따뜻함과 고요함과 욕심을 버리면 청정(淸靜)해 질 수 있을 것으로 믿는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
이슈포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