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어와 일본어에 존재하는 고유한자(固有漢字) 이야기[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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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어와 일본어에 존재하는 고유한자(固有漢字) 이야기[중]
  • 지경래 위원
  • 승인 2015.05.04 18: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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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경래 / 사단법인 빛고을정책연구센터 이사
4월의「한국어와 일본어에 존재하는 고유한자(固有漢字) 이야기」의 뒤를 이은, 5월의 이야기이다. 이번 칼럼에서는, 독자의 이해를 돕는 뜻에서 고유한자 한 자씩을 용례로 들었다. 그러나 이 가운데서도 글자에 따라서는 용례를 찾을 수 없는 것이 많아 우선 있는 것만을 중심으로 하였다.

①한자에 한글 자모‘ㄱ·ㅁ’을 종성표기(終聲表記)로 하여 만든 고유한자
「巪」(걱) (예:[林巪正(임걱정)] /「㪲」(둑) (예:[畓㪲(답둑),㪲劫(둑겁)] /「㫇」(억) (예:[㫇金(억금)] /「䎞」(작) (예:[䎞德(작덕)] /「㖈」(놈) (예:[㖈金(놈금)] 이상은 주로 공문서에 보이는 것으로 보아 인명이나 지명에 쓰였던 것으로 추측된다.

②한자‘隱(은)’의‘卩’을 종성표기(終聲表記)로 하여 만든 고유한자
「隱」(은)자의 왼쪽 획‘卩(절)’을‘ㄴ’종성표기로 하여「厁」(산)‘斜+卩’과 같이 만들었다.
이 경우는 한자「隱」자를 읽으면 그 음이 ‘은’으로 발음되니까 ‘卩(절)’을 한글자모 ‘ㄴ’으로 생각하고 붙여 쓴 것이다. 용례는 없다. 인명이나 지명, 고문서 등에 쓰였던 것으로 보인다.

③한자‘豆(두)’자 아래‘ㄴ’을 종성표기(終聲表記)로 하여 만든 고유한자
「䜳」(둔) (예:[䜳乭(둔돌)] ‘豆+ㄴ’과 같이 한글자모 ‘ㄴ’을 ‘豆’자 아래 붙여 만든 글자다.

④한자‘高(고)’자에‘ㅂ’을 종성표기(終声表記)로 하여 만든 고유한자
「䯩」(곱) (예: [䯩乷里(곱살리)]는 ‘高+ㅂ’과 같이 한글 자모 ‘ㅂ’을 직접 한자 ‘高’자 아래 붙여 쓴 경우이다. 용례는 보이지 않는다. 이것도 奴婢名(노비명)에 쓰였다.

⑤한자‘斗(두)’자에 한글 ‘ㅇ’을 종성표기(終声表記)로 하여 만든 고유한자
「㪳」(둥) (예: [㪳起(둥기)]는 공사문서(公私文書) 에서 찾을 수 있다. 이것 하나만 보인다.

⑥한자‘口匕(질)’을 ㅅ종성표기(終声表記)로 생각하고 붙여 만든 고유한자
「㖛」(곳)/「夞」(욋)/「廤,蒊」(곳)/「㖚」(붓)/「唟」(것)/「旕」(엇)/「嗭」(짓)/「巼」(팟)/「㘏」(돗)/「㗯」(잣)/「㖌」(굿)/「㖙」(갓) 등도 주로 인명과 지명에 쓰였다.
그런데〈동국신속삼강행실도(東國新續三綱行實圖)〉에서는 ‘口匕‘를 ‘ㅅ’이 아닌 ‘ㄱ’으로 생각하고 종성표기(終声表記)를 사용한 예도 있다. 그 용례를 보면, 사람 이름으로「無其口匕金」라 써놓고 ‘무적쇠’라 부르고, 「注口匕德」은‘죽덕’으로, 「注口匕同」는 ‘죽동’이라 읽고 있다.

⑦한자‘乙’(을)자를 종성표기(終声表記)로 하여 만든 고유한자
「乫」(갈) /「㐓」(갈) / 「㐣」(골) /「乬」(걸) / 「㐝」(굴) /「㐗」(놀) / 「乶」(볼,폴) / 「乷」(살) /「乺」(솔) / 「㐏」(올) /「乻」(얼) / 「乽」(잘) /「乼」(줄) / 「乤」(할) / ……

이처럼, 한자 ‘乙’자를 다른 한자 아래 붙여 만든 고유한자는 다른 글자에 비해, 그 수요가 많은 것이 특징이다. 그것은 ‘乙’자 자체가 한글자모 ‘ㄹ’과 발음이 같아서 붙여쓰기에 간편한 면이 있었을 것으로 생각된다. 이 글자들은 주로 지명과 인명에 쓰였다. 이 밖에도「㐇」(굴) /「㐐」(놀) / 「㐈」(둘) / 「朰」(몰) /「㐛」(울) / 「㐘」(쌀) / 「㐋」(톨) 등이 있다. 노비명(奴婢名)에 쓰였다.

이상과 같이 고유한자의 용례를 살펴보았다. 그 쓰인 내용을 보면, 땅 이름, 사람 이름, 때, 장소, 나무, 열매, 꽃, 일상 생활의 필수품, 옷감, 열매, 동물, 자연물인 돌, 곡식, 일상 생활의 도구에 이르기 까지 다양하다. 그러나 고유한자라고 하면서, 뜻글자인 한자에다 표음문자 한글자모를 붙여 만든 글자가 아닌가. 게다가 한글처럼 음으로만 읽도록 되어있고 한자와 같은 뜻도 찾을 수가 없다. 절반은 한자이고 다른 절반은 한글자모인데도 한자(고유한자)라고 부르고 있다. 그러므로 이 글자는 한자도 아니고 한글도 아닌 이상한 글자로 보기 십상이다.

그리고 어찌하여 전혀 성질이 다른 문자인 한자에다 한글 자모를 받침처럼 붙일 생각을 했을까. 처음에는 한자와 한자를 부합시켜 우리 실정에 맞는 새로운 글자를 만들어 보려다가 그 글자에 음을 붙이는데 어려움을 느낀 나머지, 일부 한자의 획을 한글처럼 생각하고 시험 삼아 발음하기 쉬운 한글자모 ‘ㄱ’∼‘0’을 한자 아래 결합시켜 본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받침으로 쓰인 한글 자모는 ‘ㄱ’부터 ‘0’까지 쓰였다. 그런데, 그 가운데서 유일하게 ‘ㄷ’자모만이 한번도 쓰이지 않았다. 물론 그 음가로 보아 ‘ㅅ’이 ‘ㄷ’음을 대신할 수 있다는 생각에서 그렇게 했을 것이라는 짐작은 간다. 그러나 이것은 분명 무슨 다른 사연이 있을 수 있다는 점에서 연구과제가 아닐 수 없다. 이와 같이 한글 자모를 종성표기로 사용한 것으로 보아, 고유한자는 분명 한글 탄생 이후의 것임을 짐작하게 한다.
그리고 ‘乙’자가 종성표기로 쓰인 ‘乫’(갈)/’갈’(㐓)/’(돌)/‘乬’(걸)/‘䯩’(곱)……과 같은 고유한자 역시 비록 ‘乙’ ’邑’과 같은 한자를 종성표기로 사용하였다 할지라도 한글 자모와 함께 쓰인 것으로 볼 때, 한글 탄생 이 후의 고유한자라고 볼 수 있다.

궁금한 것은, 이 고유한자를 언제 누가 어디서 어떻게 무슨 목적으로 만들었다는 명확한 설명이나 그에 따른 기록이 없다. 그래서 오늘을 사는 우리로서는 아쉬움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쓰인 예로 보아, 고유한자라는 것이 독창적인 문자라기 보다는, 기껏해야 한자를 모방하여 한글처럼 주로 음만을 표기하기 위한 글자이다. 따라서 신라 시대의 ‘이두(吏讀)’와 같이 실제 표기하여 사용하는 데 있어서는 한계를 느낄 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

문헌을 통하여 꼼꼼히 살펴보면, 좀더 다양하게 쓰인 고유한자를 더 찾을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아쉽지만 이번에는 일단 이 정도에서 정리하기로 한다. 우리나라에서 고안된 국자(國字) 즉 고유한자(固有漢字) 수는 그 당시에는 꽤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오늘에 이르러서는 그다지 남아 있지 않다. 그 이유는 기록으로 정리하여 남겨두지 않았기 때문이다. 서울대학교 동아문화연구소에서 발행한 사전류에는 다음과 같은 예도 보인다.「한국에서는 중국에서 수입된 한자 이외에 국어에만 독특한 속자(俗字)가 만들어졌다. 이에는 이두(吏讀)에서 응고(凝固) 화석화(化石化)된 ‘兺,哛(뿐)’/‘旀,㢱(며)’/‘召(조)’와 같은 한자가 있으며 관부(官簿)ㆍ군적(軍籍)ㆍ공사문적(公私文籍)에 쓰이던‘太(콩태)’/‘印(끝)’/‘頉(탈)과 같은 한자 및 고유명사 표기를 위해서 만들어 낸 ‘巪(걱)’/‘乭(돌)’/‘釗(쇠)’/‘乫(갈)’/‘乮(묠)과 같은 것이 있다」 (서울대학교 東亞文化硏究所(1979)『國語國文學事典』新丘文化社). 이 사전 역시 우리 문헌에 용례가 그다지 남아 있지 않으니 이처럼 단편적으로 몇 글자만 예로 제시하고 있다.

끝으로, 옛날 우리 조상들은 한글이 있기 이전에는 중국에서 들여온 한자를 우리 글자로 알고 써왔다. 그러다가 고유한 우리 글 한글을 맞이하게 된다. 그러면 우리 글자를 가지게 되었다는 자부심에서 이를 더욱 갈고 닦았으면 좋았을 것이다. 그러나 한글이 우리 문자라는 생각은 없고, 오로지 한자만이 문자라는 생각에 마음을 쓰다 보니, 본질이 전혀 다른 한자를 기본으로 하고 한글을 보조적인 것으로 보고 만드려 하니 이와 같은 이상한 글자를 보게 된 것이다. 물론 그 시대의 요구에 따라 만들 수밖에 없었던 그 자정은 이해 못하는 바는 아니다. 그러나 이와 같은 생각을 지울 수가 없다. 독자 여러분은 옛날에 이와 같은 문자가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만으로 공부가 되었으리라 생각한다.

5월의 주제는 이 정도에서 마치기로 한다. 다음 6월의 칼럼에서는 ‘일본의 국자(고유한자)’에 대하여 언급하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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