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리더십’ 메르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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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리더십’ 메르켈
  • 신현호 편집인대표
  • 승인 2013.09.25 11: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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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현호 편집국장
독일 총리 앙겔라 메르켈이 정계에 데뷔했을 때 언론은 "유머 감각도 없는 촌스러운 동독 아줌마"라고 혹평했다. 싹둑 자른 단발, 촌티 나는 '옷발'에 웃지도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요즘은 이미지 변신에 성공한 세계 여성 정치인 중에 첫손 꼽힌다. 대중 앞에서 미소 짓는 법도 터득하고 헤어스타일이나 패션도 세련되게 바꿨다.

메르켈은 푸근하고 검소한 독일 주부 이미지도 지니고 있다. 훔볼트대학 교수인 남편 요하임 자우어는 이론화학 분야의 저명한 학자. 세계 영향력 1위 여성의 남편이지만 아내의 곁을 너무 따라다니지 않는대서 오히려 구설에 오른다. 대학 동창인 두 사람은 각각 이혼하고 재혼했다. 메르켈은 전 남편의 성(姓)이다.

메르켈은 대처와 자주 비교된다. 대처는 식료품 가게 주인의 딸이고 메르켈은 시골 목사의 딸이다. 둘 다 소신을 꺾지 않은 강인함으로 '유리천장'을 뚫고 남성들의 정글인 정치의 영역에서 최고봉에 올랐다. 하지만 대처가 '영국병'을 고치는 과정에서 노조를 탄압하고 포클랜드 전쟁도 불사하는 등 '마초적 리더십'을 선보였다면 메르켈은 화해와 조정의 '엄마(Mutti) 리더십'을 가졌다는 평가를 받는다.

1982년 아르헨티나가 눈앞의 섬 포클랜드를 침공했다. 영국령이지만 영국에서 수천마일 떨어져 있다. 영국과 아르헨티나는 둘 다 미국 동맹국이기에 미국이 중재에 나섰다. 헤이그 미국 국무장관 면전에서 대처는 말했다. “장관, 내 인생은 매일매일이 전쟁이었고, 많은 남자들이 나를 과소 평가했지만 그들은 언젠가 후회하게 될 겁니다.” 영화 ‘철의 여인(The Iron Lady)’에 나오는 장면이다. 말대로 됐다. 아르헨티나 군 장성들은 항복의 치욕을 안았다.

목숨 건 투쟁을 남자들이 더 잘할 거라는 믿음은 미신이다. 역사 속 여제들이 얼마나 냉혹했는지를 전하는 사례는 무수하다. 중국 측천무후가 그랬고 이집트 클레오파트라가 그랬다. 대처는 11년6개월을 총리 자리에 있었다. 현대 정치사에서 가장 막강한 힘을 가졌던 여성 정치인이다. 그는 원칙주의자였고 단호했으며 강경보수 노선을 견지했다. 온화함보다는 냉혹함의 비중이 훨씬 높았다. 강성노조가 판치고 남녀 편견이 심한 시대적 요인이 그렇게 만들었을 수도 있다.

독일 앙겔라 메르켈 총리가 3선에 성공했다. 4년 임기를 더하면 대처의 유럽 최장수 여성지도자 기록을 넘어선다. 메르켈이 집권한 2005년만 해도 독일은 10%가 넘는 고실업률, 재정 악화, 빠른 고령화 등으로 ‘유럽의 병자’로 취급받았다. 독일은 이제 유럽의 좌장이 됐다. 앙숙인 프랑스와 영국이 헤매는 동안 메르켈은 독일을 마법의 나라로 만들어 놓았다. 언론이 그를 ‘유럽의 여제’라고 치켜세울 만하다.

그러나 메르켈은 대처와 많이 다르다. 타임지는 이렇게 평했다. “메르켈은 카리스마 없이도 얼마든지 훌륭한 리더가 될 수 있는 지도자 중 한 명이다.” 그 리더십의 요체는 소통, 통합이다. 메르켈은 정치적 대부 헬무트 콜이 비자금 파문에 휩싸이자 매몰차게 결별했다. 단호함의 발휘는 그것으로 충분했다.

더 중요한 것은 화합과 포용력을 갖춘 ‘엄마 리더십’이다. 그는 상대의 말을 따뜻하게 들어주면서 모성적인 소통으로 설득하는 데 탁월하다. 유로존 위기 때 모든 상황을 듣고 조율하며 최대공약수를 만들어 낸 것도 이 덕분이라고 한다. 해외출장을 앞두고도 남편 아침식사를 꼭 챙겼고, 주말 별장에서 키운 채소로 친구들을 대접하며 농담까지 즐기는 소탈한 면모도 인기 비결이다. 자식이 없지만 ‘무티(mutti·엄마)’라는 애칭으로 불리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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