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투경찰 42년 만에 역사의 뒤안길로…
상태바
전투경찰 42년 만에 역사의 뒤안길로…
  • 신현호 편집인대표
  • 승인 2013.09.26 16:16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 신현호 편집국장
42년간의 역사를 이어온 전투경찰이 마지막 전역식을 갖고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지난 25일 전투경찰 마지막 기수인 3211기 182명이 마지막 전경으로 전역했다. 1971년에 창설된 전투경찰은 시위 진압 활동을 비롯해 대간첩작전, 치안 유지 등의 활동을 해왔다. 1981년부터는 현역 입대자 가운데 차출해 운영돼 왔지만 2000년대 후반 병역자원이 급격히 줄며 인력이 감축됐다. 결국 경찰청과 국방부는 2012년 1월 전투경찰 차출을 중단하기로 협의했다. 따라서 마지막 전투경찰인 3211기가 이번에 전역함에 따라 전투경찰은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됐다. 앞으로 전투경찰의 업무는 의무경찰이 대신한다.

1980년대 전경은 최루탄·화염병·짱돌과 짝을 이룬 시대의 아픔이자 비극이었다. 그들은 '치안 보조'라는 이름으로 전투 업무도, 경찰 업무도 아닌 '어중간한 특별 업무'를 감당했다. 최루탄이 자욱한 시대에 정권의 방패막이로, 시위 진압군으로 내몰렸던 것이다. 대학 휴학생으로 입대했다가 훈련소에서 차출된 전경 중에는 시위를 하던 현장에 진압복을 입고 나가 날아오는 돌과 화염병을 막아야 하는 이들도 있었다.

허구한 날 데모대와 맞서면서 전경 내부 군기는 더 없이 세졌다. 스트레스와 깡은 비뚤어진 기수 문화로 표출됐다. 아무 것도 하지 않는 '열외기수' 밑에 중간 기수로 '챙기는 기수(챙)'와 '받치는 기수(받데기)'가 있었다. 이들이 구타와 가혹행위로 소위 '쫄따구' 군기를 잡는 '갈구는 기수'였다. '물당(물당번)'과 '막내' 등으로 불리는 후임들은 A4 12장 분량의 암기사항을 외워야 했는데 밤 점호 때 99% '×박살'이 났다.

전경은 1968년 1월 북한군 31명이 청와대 기습을 노린 김신조 사건이 계기가 돼 생겼다. 1971년 1천522명을 차출해 전경이 출범했고 실상 1970년대에는 해안 경비 등 대간첩작전 업무를 주로 담당했다. 전경과 비슷한 의경(의무경찰)은 1979년 박정희 전 대통령 시해 사건 이후 시국 혼란이 가중되자 1982년 만든 것이었다. 전경과 의경은 한 시대를 표상했던 박정희 전 대통령과 직간접적으로 관계 있는 셈이다.

42년간 전경으로 복무한 이들은 32만 9천266명이며 그중 322명이 순직했다. 무장간첩과 교전하다가 사망하거나 시위 현장에서 목숨을 잃은 이들이다. 마지막 전역식에서 이성한 경찰청장은 "전경 대원들은 국가를 위해 불꽃같은 청춘을 바쳤다"고 했다. 불꽃 같았던 격동의 한국 현대사가 감당해야 했던 장면으로서 전경은 기억될 것이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
이슈포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