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태종2년(1402년)에 대궐 밖 문루에 북을 달았다. 백성들이 억울한 일을 당했을 때 임금에게 직접 억울함을 호소할 수 있게 하기 위해 시작한 신문고 제도의 시작이었다.
물론 고을 수령이나 관찰사를 고발할 수 없는 한계가 있고 오직 종사에 관한 억울함을 고발할 수 있었으나, 그 의미는 다시 한 번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얼마 전 새누리당의 경제민주화 의총에 아침 식사로 현재 갑의 횡포로 유명해진 남양유업의 우유가 제공된 것을 두고 네티즌들이 분노를 했다. 왜 하필 남양유업의 우유일까?
일부러 그러지 않았다 하더라도 의총의 주제와 어울리지 않는 아침식사를 했다는 비난을 면하지 못할 것이고 경제민주화에 대한 진정성을 의심할 수밖에 없다. 이런 상황에서 대다수 시민들이라고 할 수 있는 을을 위한 신문고가 우리시대에 존재하는가? 개국공신의 횡포를 견제하던 북소리는 성군을 만났을 때 즉 강력한 정치적 리더십을 만났을 때 그 힘을 발휘했다. 현재는 나라에 성군이라고 할 수 있는 정치적 리더십을 지니고 있는 집단 혹은 인물이 없는 상황이다.
신문고는 언론이 그 가진 역할을 제대로 해야만 한다. 현재의 언론들이 제대로 된 신문고의 역할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시민들은 거의 없을 것이다. 제대로 된 신문고의 역할을 할 언론이 탄생하기를 바라는 시민들의 바람은 성군이라는 영웅이라는 정치적 리더십을 원하는 만큼이나 크다.
세상은 조선시대와 많이 다르지만 잘 살기를 바라는 염원은 같다. 광주데일리뉴스가 신문고의 역할을 제대로 할 수 있으리라 믿는다. 시민들의 목소리가 제대로 울려 퍼지게 하는 그리하여 천심인 민심이 움직일 수 있게 하는 그런 천상의 북소리가 되기를 바란다.
건치 광주전남지부 우승관 대표
저작권자 © 광주데일리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