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관의 탐욕과 야수의 절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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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관의 탐욕과 야수의 절제
  • 광주데일리뉴스
  • 승인 2016.06.06 19: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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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종현 연합뉴스 논설위원

아프리카 탄자니아의 세렝게티 평원은 지상 최대의 자연 사파리다. 이곳에는 작은 설치류에서 백수의 제왕 사자까지 다양한 동식물이 먹이사슬 생태계를 이루며 살아가고 있다.

세렝게티를 '야생의 낙원'이라고 하지만 거기서 목숨을 부지해야 하는 동물들에게는 지옥일 수 있다. 24시간 생존에 신경을 써야 한다. 포식자를 경계하고 자연을 극복해야 한다. 신기한 동물은 영양, 가젤, 임팔라 등의 초식 동물이다. 순하기 짝이 없고, 재주라고는 달리는 것밖에 없다. 주변엔 온통 침을 흘리는 야수들뿐이다. 그런데도 무리를 이뤄 긴 세월 삶을 견뎌낸 것을 보면 참으로 경이롭다.

이들이 왕성하게 번식할 수 있었던 것은 사자나 표범, 하이에나 같은 포식자들이 욕심을 부리지 않았기 때문이 아닐까. 맹수들은 사냥으로 배가 부르면 양순해진다. 드러누워 휴식을 취하거나 새끼를 양육하고, 놀이를 한다. 옆으로 지나가는 사냥감을 쳐다보지도 않는다. 그러다 보니 연약한 동물들도 숨통이 트인다. 사냥하되 배가 차면 족함을 아는 것. 그 게 세렝게티 생태계가 균형을 유지하는 비결이 아닌가 싶다.

만약 포식자들이 먹지도 않으면서 탐욕에 눈이 멀어 사냥감을 죄다 물어 죽여놓고 본다면 결국 먹이사슬이 망가지고 생태계는 파괴되고 말 것이다.

인간 역사도 남의 것을 탐하지 않은 초기 수렵채집기는 평화로웠을 것이다. 불행한 역사는 먹을거리와 영토를 두고 경쟁하면서 비롯됐다. 권력과 자원을 나누지 않고 독점하겠다는 욕망이 전쟁과 살육이라는 비극을 불렀다.

싹쓸이는 생태계의 적이다. 그리고 다수 인간에게 고통을 준다. 나폴레옹과 히틀러는 유럽, 군국주의 일본은 아시아를 날 것으로 집어삼키려다 패망했다. 군주들은 권력의 독점을 즐기다가 혁명의 망치를 얻어맞았다.

기업도 마찬가지다. 독점은 경쟁 산업계를 질식시키고, 소비자들을 노예로 만든다. 한 사람, 한 조직의 부를 위해 절대다수의 국민이 희생해야 한다. 그래서 제대로 된 국가일수록 독점에 대한 규제가 엄격하다.

전직 검찰·법원 간부 출신 변호사의 수임비리로 세상이 떠들썩하다. 한 검찰 간부 출신 변호사는 개업 후 한 해 신고한 수임료만 80억∼90억 원이었다니 입이 다물어지지 않는다. 그는 오피스텔 123채와 아파트형 공장, 상가 점포도 대거 소유하고 있다고 한다. 이미 구속된 부장판사 출신의 변호사는 죄를 짓고 복역 중인 졸부들을 보석이나 집행유예로 나오게 해주겠다며 지난해 100억 원대의 부당 수임료를 챙긴 혐의를 받고 있다.

서울변호사회에 의하면 변호사의 61%가 사무실 운영비 등을 뺀 월평균 순소득이 600만 원 이하다. 9%는 300만 원을 넘지 못했다. 전관과 판·검사 경력이 없는 변호사의 수입이 양극화돼 있음을 보여준다. 변호사들 사이에도 실력 차가 존재하고, 능력에 따른 수입의 격차는 당연히 인정해야 한다. 하지만 전관이라는 배경만으로 다른 변호사들보다 10배, 100배 수입을 올리는 걸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가.

우리 사회에서 전관 변호사와 '일확천금'은 같은 말이다. 이들에게 의뢰인이 몰리는 건 '약발'을 기대하기 때문이다. 바보가 아닌 바에야 아무런 효과 없는 변호사에게 뭉칫돈을 쓰겠는가. 이는 우리 법조계가 맑지 않다는 것을 뜻한다. 전관예우는 법치주의와 민주주의 토대를 흔드는 독버섯이다.

일반 국민에게 법조계는 현직과 전직이 만수산 드렁칡처럼 지연, 학연으로 얽히고설키면서 형님 먼저 아우 먼저, 밀어주고 끌어주고, 끼리끼리 다 해 먹는 것처럼 비친다.

법리로 무장하고 재판정에서 변론을 잘하는 변호사가 유능한 것이 아니다. 전화 한 통으로 보석과 감형을 주무를 수 있느냐가 변호사의 능력을 결정한다. 유전무죄(有錢無罪)라면 돈 없는 일반 서민은 어디서 사법정의를 구해야 하나.

이들이 적당히 해먹었다면 지금까지 그랬던 것처럼 문제없이 넘어갔을 것이다. 혼자 너무 많이 삼키려다 옆구리가 터져버렸다. 이번 사태를 법조계가 전근대적인 폐습을 청산하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

만약 수사가 '역시나'로 끝난다면 이참에 법관이나 검사 출신자의 변호사 개업을 원천적으로 차단하는 법이 만들어질지도 모른다. 특정 전문직의 직업선택 자유보다 더 본질적이고 중요한 것은 '만인이 법 앞에 평등하다는 법치주의 대한민국 확립'이라는 논리에 누가 토를 달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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