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봉영화 신세계] 어린 시절의 추억 '우리들'
상태바
[개봉영화 신세계] 어린 시절의 추억 '우리들'
  • 신현호 편집인대표
  • 승인 2016.06.16 13:44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열한 살 선(최수인)은 외톨이다.

여름 방학식 날, 교실에 남아 있던 선은 전학생 지아(설혜인)를 만난다. 여름 내내 붙어 다닌 둘은 어느덧 서로의 비밀을 공유하는 단짝이 된다. 그런데 새 학기가 시작되자 선을 대하는 지아의 태도는 차갑기만 하다. 지아는 같은 반 보라(이서연)의 편에 서서 선을 따돌리는 데 동참하고, 영문을 모르는 선은 지아와 다시 친하게 지내고 싶다.

일상에서 아무렇지도 않게 툭 쓰는 말들이 있다.

이를테면 이런 것. “애들은 좋겠다. 고민 없이 놀기만 해도 되고.” 과연 그럴까. 어린이 시절의 우리는 아무런 고민 없이 단순하고 해맑기만 했을까. 〈우리들〉은 어른들이 모르는, 더욱 정확히 말하면 오래전 겪었으나 이미 잊어버리고 만 세계의 풍경을 생생하게 펼쳐 보인다. 마치 열한 살 소녀가 이불을 뒤집어쓰고 꾹꾹 눌러쓴 일기장을 찬찬히 들여다보는 기분이다.

이 영화가 포착한 순간들은 마냥 밝고 맑은 것이 아니다.

여기에는 나와 너를 떠나 ‘우리’라는 관계를 맺으며 느꼈던 인생 최초의 당혹감이 생생하게 담겨 있다. 체육 시간에 조를 나눌 때 조장 아이가 어서 내 이름을 불러 주기를 간절히 바랐던 기억, 정확한 이유는 알 수 없지만 친구와 미묘하게 신경전 벌였을 때의 기분, 사실상 내 인생의 첫사랑이라 불러도 좋을 단짝 친구가 다른 아이와 더 친하게 지낼 때 느꼈던 질투와 배신감 같은 것들 말이다.

단순하게 뭉뚱그려졌던 기억과 감정이 다시 하나하나 살아나게 만드는 힘은 카메라로 세밀화를 그린 듯한 윤가은 감독의 솜씨에서 나왔다.

이 영화를 보면, 엄마 심부름을 떠난 어린이(김수안)가 겪는 일화를 섬세한 시각으로 풀었던 단편 ‘콩나물’(2013)의 탄탄한 연출력이 우연이 아니었음을 깨닫게 된다. 아이들에게서 이토록 미묘하고 다채로운 표정과 감정을 포착하고 또 연기로 이끌어 낸 윤 감독의 재능이 놀랍다. 지금까지 나온 영화 중 올해 최고의 장편 데뷔작이라 꼽겠다.

〈우리들〉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가장 먼저 언급해야 할 것은 연기다.

이 작품에서 배우들의 연기는 완벽함에 가깝게 자연스럽다. 윤가은 감독은 연기와 영화가 따로 존재하지 않는다는 흔한 이야기를 온전히 이해하는 연출가다. 어떤 연기는 작품을 따라가지 못하고, 또 어느 작품은 배우의 연기를 쫓아가지 못하지만, 〈우리들〉은 배우의 연기와 작품이 결합해 내놓을 수 있는 최상의 결과물을 내놓는다. 다시 말해, 〈우리들〉은 극의 메시지와 메시지를 전달하는 태도가 일치한다.

이 영화의 평범한 대사 하나, 무심한 눈빛 하나가 관객의 가슴에 와 꽂히는 건 그런 이유다.

타인과 관계를 맺어갈 때 생겨나는 감정들, 사랑·미움·질투·분노·감사와 같은 것들이 얼마나 불쑥 찾아와 각자를 흔들어놓고 관계를 헝클어놓는지 윤 감독은 이해하고 포착했다. 최대한 연기의 자유를 보장하는 방식으로 배우들을 통제하는 데 성공한 그의 연출은 진솔하고 사려 깊으며 정확하다고 볼 수 있다.

이 영화는 웃고 토라지고 오해하고 풀며 알알이 영그는 아이들의 시간은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흐뭇하다. 영화 속에서 아이들이 나란히 앉아 손톱에 물을 들이듯, 보고 나면 마음에 예쁜 봉숭아 물이 든다. 94분 전체 관람가.

http://movie.naver.com/movie/bi/mi/mediaView.nhn?code=146504&mid=30842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
이슈포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