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헌론과 정치의 실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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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헌론과 정치의 실패
  • 연합뉴스
  • 승인 2016.06.20 10: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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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종현 연합뉴스 논설위원

권력의 속성은 독점이다. 역사상 어떤 정권도 권력을 포기하거나 나누려 하지 않았다. 그걸 빼앗거나 함께하려면 피를 흘려야 한다. 1987년은 5천 년 우리 역사에서 사실상 처음으로 독재에서 해방된 해였다.

6ㆍ10 국민항쟁의 승리로 얻은 제9차 개정 헌법은 어떤 권력자도 5년 이상 집권을 못하도록 대못을 박았다. 그로부터 30년 가까이 흐른 오늘 이른바 '87년 체제'가 몸에 맞지 않는다며 개헌론이 분출하고 있다.

개헌 논의가 새삼스러운 건 아니다. 9차 개헌의 잉크가 채 마르기도 전인 1990년 민정당과 민주당, 공화당이 합당해 만든 민자당에서 내각책임제 개헌론이 나온 이후 대부분 정권에서 정치적 이해관계에 따라 대통령 4년 중임제, 이원집정부제, 내각제 등의 헌법 개정론이 등장했다.

정치권에서 제기하는 개헌론의 심층 심리에는 90% 정도의 집권에 대한 욕망과 10% 정도의 합리적 이성 혹은 애국심이 작동한다고 본다. 개헌을 통해 이득을 기대하지 못한다면 어떤 정치 세력이나 개인도 개헌 얘기를 꺼내지 않을 것이다. 지금까지 개헌이 공감을 얻지 못한 이유는 정치권이 서로의 권력욕을 조율하는 데 실패했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87년 체제의 한계는 명확해 보인다. 군사독재 정권의 장기집권을 막아야 한다는 절박함 속에 이뤄진 개헌이어서 태생 때부터 과도기적 성격이 짙었다. 대통령 5년 단임제에 집착하면서 책임 정치, 국정의 연속성, 조기 레임덕 등이 문제가 됐다. 한쪽에서는 제왕적 대통령제의 폐해를 지적하고, 다른 쪽에서는 의회 권력의 비대화를 비판한다. 국민의 기본권 보장도 불충분하다. 다원화한 시대를 포용하기엔 정치제도의 틀이 너무 경직되고 좁다.

무엇보다 세상이 바뀌었다. 군사쿠데타나 1인 장기집권을 걱정하지 않아도 될 정도의 정치적 민주화를 이뤘다. 그동안 컴퓨터와 인터넷 기반의 3차 산업혁명인 정보화 혁명을 거쳐 이제는 인공지능(AI)이 상징하는 4차 디지털 혁명 시대를 맞았다. 경제의 고도 성장기가 끝나고 저성장 시대에 접어들었다.

역사상 가장 풍요한 시대이지만 빈부 격차 심화, 청년실업, 저출산 고령화 등으로 사회가 위기에 직면했다. 따라서 당면한 부조리를 해소하고, 새로운 시대정신을 구현할 헌법 체계를 제대로 한 번 만들어보자는 주장은 타당성이 있다. 정치권이 합의하고 국민의 공감대가 형성된다면 개헌을 막을 이유는 없을 것이다.

다만 개헌을 얘기하기에 앞서 짚고 넘어가야 할 점이 있다. 우리 정치권이 87년 체제를 가꾸기 위해 진심으로 노력한 적이 있었는지 묻고 싶다. 제왕적 대통령제를 비판하지만 그런 리더십이 없었다면 단군 이래 최대의 국난이라는 1998년의 환란을 단시일 내에 극복할 수 있었을까. 군부 내 사조직인 하나회를 척결하고 5공 독재를 단죄할 수 있었을까.

역대 대통령의 독선과 부패를 문제 삼는다면 이는 사람의 문제이지 제도의 문제는 아니라고 본다. 법치(法治)를 하지 않고 특정 세력이나 인맥에 의존한 패거리 인치(人治)가 잘못이었다. 민심에 귀 기울이거나 인재를 널리 쓰지 않았다. 독선과 아집에 빠져 코드에 맞는 한 줌의 사람들로 '끼리끼리 정권'을 꾸렸다. 그러다 보니 정치가 협량해지고 호가호위하는 자들이 국정을 농단했다. 레임덕 역시 제도의 탓이라기보다 덕을 잃은 최고 권력자의 자업자득이었다.

개헌론의 빌미로 적대적 공생의 양당 정치에 대한 불만을 제기하지만 우리 정치인들이 정당 정치를 꽃피우기 위해 언제 애를 쓴 적이 있었는지 의문이다. 지역 패권, 줄타기, 철새 행태에 기대다 보니 정치인의 격이 떨어지고 정치가 희화화했다. 국회는 소모적 정쟁으로 동물 아니면 식물이었다.

아래로부터 여론을 결집한 정강·정책이나 이념이 아닌 유력자 중심의 보스 정치가 횡행하면서 정당의 간판이 동네 라면집보다 자주 바뀌는 황당한 일이 벌어졌다. 이 때문에 우리나라는 쓸 수 있는 정당 이름이 남아있지 않다. 정치 선진국에서는 유례없는 일이다. 책임 정치가 실종된 것이다.

개헌을 통해 아무리 그럴듯한 체제를 도입해도 정당과 정치인의 행태가 바뀌지 않는 한 정치판은 백년하청일 것이다. 개헌이 오히려 나라를 어렵게 할 악수가 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개헌의 명분도 투명하지 않다. 헌법 개정은 국민의 힘을 모을 수 있는 미래에 대한 명확한 비전이 있어야 하지만 그 게 보이지 않는다. 지금보다 나은 삶에 대한 희망을 담지 못한다면 헌법을 바꿀 이유가 없을 것이다. 이웃 일본의 아베 신조 정권에서 배울 건 배워야 한다. 아베는 전쟁할 수 없도록 한 헌법 9조를 폐기하려 한다. 이유는 명확하다. '강한 일본'이다.

정당이나 개인의 이해관계나 욕망 때문에, 혹은 대통령의 권력을 빼앗아 의회 권력을 강화하자는 논리로 개헌을 추진한다면 국민의 찬성을 얻기 어렵다. 나라의 주인인 국민의 눈에는 대통령의 권력이나 의회의 권력이나 그게 그거다. 통일 이후를 내다본 국가의 백년대계나 국리민복에 복무하지 않는 개헌론은 공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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