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마와 소설, 6.25 전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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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마와 소설, 6.25 전쟁
  • 연합뉴스
  • 승인 2016.06.25 10: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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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성용 연합뉴스 논설위원

올해도 어김없이 장마가 찾아왔다. 예로부터 오뉴월 장마라고 했다. 오뉴월 장마는 음력에서 유래했다. 양력으로는 6, 7월에 해당한다. 장마는 통상 6월 말 시작한다. 올해의 경우 지난 18일 제주도에 먼저 장마가 왔다. 남부지방은 지난 20일, 중부는 21일 영향권에 들었다. 매년 이맘때쯤 오호츠크해 고기압과 북태평양 고기압 사이로 뚜렷한 기상 전선이 형성되고 북태평양 고기압으로부터 만들어진 기상 수렴대를 장마전선이라고 부른다.

북태평양 고기압은 겨울철 하와이 부근에 머물다 여름이 되면 동북아가 위치한 북서 태평양 쪽으로 움직인다. 6월 들면 오호츠크해 고기압이 동해 쪽으로 이동하고 북태평양 고기압과 가까워지면서 두 고기압의 온도 차에 의해 뚜렷한 장마전선이 생긴다. 대체로 한 달가량 한반도를 오르락내리락하다가 북쪽으로 올라가면서 사라지게 된다.

1981년부터 30년간 평균치를 계산해 보면 장마 기간은 32일가량이다. 내달 20일쯤 장마가 끝날 것으로 보인다. 지난해에는 장마가 6월 24~25일 시작했고 7월 23~29일 끝났다. 지난 30년간 장마 강수량 평균치는 지역별로 340~390㎜가량이다. 작년에는 220~510㎜가량으로 지역별 편차가 컸다.

기상청은 2009년부터 장마 종료 시점과 장마 기간 강수량을 아예 예고하지 않고 있다. 2000년대 들어선 장마전선이 소멸한 이후에도 강한 비가 빈번하게 내려 예보의 의미가 없다는 것이다. 그만큼 예측도 쉽지 않고 변덕스럽다. 장마는 집중 호우에 따른 재해를 불러오기 십상이다. 이웃 나라 중국과 일본은 최근 폭우로 인해 인명 피해가 속출하고 있다는 소식이다.

장마전선의 이동 상황에 따라 일시 맑은 날씨를 보이기도 하지만 장마전선이 머무는 동안은 우울하고 음산한 날씨가 주를 이룬다. 장마의 이미지는 대체로 어둡다. 문학 작품이나 영화 속에서도 장마는 불안과 두려움의 상징으로 종종 등장한다.

▲ 장맛비 내리는 제주시 도로. 사진=연합뉴스

1970년대 대표 문예지인 '문학과 지성'에 발표됐던 작가 윤흥길의 소설 '장마'는 6.25 전쟁과 분단 체제의 비극을 다룬 작품이다. 소설 속 장마는 전쟁과 동의어로 볼 수 있다. 두려움과 불안, 공포의 의미다. 참혹한 전쟁의 와중에 일가족 내에서 벌어지는 이데올로기 대립과 갈등, 반목, 극적인 화해에 이르는 다양한 전개 과정을 담았다. 전쟁이 발발하자 사돈지간인 두 식구가 한곳에 모여 살게 되는데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초등생 동만은 친삼촌이 빨치산이고 외삼촌은 국군 장교다. 한 집안에 빨치산과 국군이 함께 있었던 셈이다. 동만은 실수로 빨치산인 친삼촌의 행방을 발설했다가 친할머니의 호된 질책을 받게 된다. 궁지에 몰린 동만을 외할머니가 감싸게 되고 사돈 간에 묘한 알력이 생긴다.

전쟁이 지속되는 가운데 국군인 외삼촌의 전사 통지서가 전달되면서 집안 분위기는 더욱 싸늘해진다. 빨치산 때문에 아들이 사망했다고 저주하는 외할머니와 이에 반발하는 친할머니 간에 갈등과 충돌이 불거진다. 소설 전개 과정에서 내내 장맛비가 내린다. 장마는 전쟁 상황을 대변한다. 빨치산인 친삼촌도 끝내 돌아오지 못하고 사라지는 운명을 맞은 뒤 사돈인 두 할머니는 서로를 위로하며 극적으로 화해하고 동시에 장마는 그친다. 소설 '장마'는 어린 동만의 눈에 비친 전쟁의 참상을 그렸다. 이념 대립을 넘어 두 할머니의 모성을 통해 화해를 모색해 보려는 시도가 돋보인다는 평가를 받기도 했다.

▲ 한국전쟁 상기 결의대회. 사진=연합뉴스

소설에선 전쟁과 장마가 동의어로 묘사돼 있지만, 실제론 전쟁과 장마가 서로 어울릴 수 있는 단어는 아니다. 잦은 호우는 군사 작전에 걸림돌이다. 북한은 왜 장마 때에 맞춰 남침을 강행한 것일까. 장마철에 접어든다는 점을 몰랐을 리는 없을 것 같다. 당시 북한은 군사력 우위를 자신하고 있었던 듯하고 전쟁을 강행하는데 기상 조건이 중요한 요소로 고려되지는 않았을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6월 25일 당일 날씨는 맑았다는 기록이 있다. 부영 이중근 회장이 편저자인 편년체 서술 형식의 저서 '6.25 전쟁과 1129일'에 따르면 6월 25일과 26일 날씨는 맑음으로 표시돼 있다. 6월 27일과 30일이 흐림 또는 비로 표시돼 있지만 6월 말에는 대체로 비가 내린 날이 많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장마가 본격화된 것은 7월 이후인 것으로 짐작된다. 7월 들어선 1일과 5일, 8~9일, 12~13일에 비가 내렸고 19일~22일 나흘간, 28~31일 나흘간 연속으로 비가 내렸던 것으로 기록돼 있다. 8월에는 간혹 비가 내리지만 맑은 날씨가 연속되는 기간이 많았던 것으로 미뤄 7월 말로 당해 장마는 끝이 났던 것으로 추정된다. 세월은 흘러 어느덧 6.25 전쟁이 올해로 66주년을 맞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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