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저임금 1만 원'의 유토피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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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저임금 1만 원'의 유토피아
  • 연합뉴스
  • 승인 2016.06.29 16: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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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만 원 권 지폐

'최저임금 1만 원'을 둘러싼 논쟁이 뜨겁다. 돌팔매를 맞을 말인지 몰라도 시간당 최저임금 1만 원이 지금 당장 실현된다면 한국은 이상적인 복지국가에 가까운 나라가 될 것이라고 이야기하고 싶다. 단, 지금 아르바이트를 구하듯이 최저임금 일자리를 쉽게 구할 수 있을 때 한해서다.

최저임금은 원칙적으로 '근로자를 사용하는 모든 사업 또는 사업장'에 적용돼 근로조건에 관한 규정 가운데 가장 적용 범위가 넓다. '동거하는 친족만을 사용하는 사업'이나 '가사 사용인', '정신장애, 신체장애로 근로능력이 현저하게 낮은 자' 등에 대해 극히 예외적으로 적용이 배제되거나 제한될 뿐이다. 각종 비정규직 근로자는 물론 외국인 근로자에 대해서도 예외가 인정되지 않는다. 최저임금은 또 임금산정의 기초가 될 뿐만 아니라 각종 수당이나 복지혜택의 산정 근거가 된다. 최저임금이 바뀌면 저소득층의 생활 전반이 변화하게 되는 것은 바로 그 때문이다.

지금 최저임금 1만 원이 적용되고 있다고 쳐 보자. 토·일요일과 공휴일을 제외하면 올해 6월의 평일은 모두 21일이다. 하루 8시간씩 평일에만 일하는 근로자의 6월 기본임금은 168만 원이 된다. 여기에 매주 하루씩 모두 4일 치의 주휴수당 32만 원이 추가된다. 휴일이나 시간외 근로, 야간 근로에는 50%, 즉 시간당 5천 원의 수당이 각각 가산되지만 이런 수당이 전혀 없더라도 평일에만 법정 근로시간을 모두 채워 일하면 6월 급여로 200만 원을 받게 된다.

▲ 저임금 타파 퍼포먼스 2일 오후 정부세종청사 고용노동부 앞에서 민주노총 세종충남본부 주최로 최저임금 1만원 쟁취 결의대회에서 저임금 타파를 요구하는 퍼포먼스가 열리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이렇게 일하던 근로자가 부득이한 사정으로 일자리를 잃게 되면 어떻게 될까. 그가 그 이전 1년 6개월 간 180일 이상 회사에 근무하면서 고용보험료를 납부했다면 성실하게 구직활동을 계속하는 한 최소 90일간 최저임금의 90%, 즉 하루 7만2천 원(시간 당 9천 원 X 8시간)씩을 구직급여로 받게 된다. 여기에는 세금이나 각종 사회보험료가 공제되지 않고 실직자는 출퇴근에 따르는 교통비나 식비도 거의 들지 않을 것이기 때문에 구직급여가 직장생활을 할 때 실제 손에 쥐는 급여보다 더 많을 수도 있다. 물론 1년간 근무했을 때 한 달 치씩 받게 되는 퇴직금은 별도다. 최저임금 근로자가 1년 동안 일하다 일자리를 잃었다면 구직급여 648만 원(하루 7만2천 원 X 90일)과 퇴직금 약 200만 원을 합해 최소한 848만 원의 소득을 보장받게 되는 셈이다.

이밖에 최저임금 1만 원을 받던 근로자가 출산 휴가를 가게 되면 90일의 출산전후휴가 급여로 상한액인 405만 원을 받게 되고 업무상 부상 또는 질병으로 근로하지 못하게 되는 경우에는 하루 임금의 70%인 5만6천 원을 일하지 못한 날수만큼 계산해 휴업수당으로 받게 된다. 누구라도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하루 8시간 아르바이트만 해도 월 200만 원이 꼬박꼬박 월급통장에 입금되고(물론 세금과 사회보험료는 공제되겠지만) 실직을 하거나 질병·사고로 일을 하지 못하게 되더라도 최소 몇 달 간은 생계 걱정이 없고 비슷한 조건의 일자리를 언제든 쉽게 구할 수 있는 나라가 된다면 더는 '헬조선'이라는 말을 입에 올릴 일은 없게 될지도 모른다.

그러나 문제는 이 돈을 누가 대느냐이다. 대기업이나 금융기업, 공공기관의 정규직 근로자들이 최저임금을 받을 일은 거의 없을 것이다. 반면에 피라미드식 하도급구조의 맨 밑바닥, 영세 중소기업과 자영업 근로자와 아르바이트생은 사실상 최저임금이 곧 자신의 임금이 될 가능성이 크다. 통계청의 '가계금융·복지 조사'에 따르면 2014년을 기준으로 할 때 가구주가 자영업자인 가구 가운데 가구 전체 소득이 1천만 원에도 못 미치는 경우가 4.7%였고 1천만~3천만 원이 24.7%였다. 2015년 종업원 5~9인인 소기업 근로자의 월평균 급여는 236만6천 원에 불과했다. 굳이 이런 통계를 들이대지 않더라도 지금 우리 주변에서는 아르바이트생 급료만큼도 수익을 내지 못하는 자영업자나 영세 기업 소유주들이 한둘이 아니지 않은가. 최저임금 1만 원 시대가 당장 현실이 된다면 이들 영세업자는 그나마 초라한 자신의 몫을 줄이느니 차라리 사업을 접고 아르바이트 자리라도 구하는 것 이외에는 별다른 선택이 없게 될 가능성이 크다.

최저임금의 효용에 대해서는 경제학자들 사이에서도 논란이 분분하다. 일반적으로 최저임금 제도의 목적으로 빈곤 퇴치, 생산성 향상 촉진, 기업 간 경쟁 유도, 노사 분쟁 방지, 유효 수요의 창출 등을 들고 있다. 그러나 최저임금의 파격적인 인상으로 그 임금을 줄 수 있는 기업의 절대 수가 급감한다면 저소득층 사이에서도 최저임금 일자리를 구할 수 있는지에 따라 또 다른 양극화가 초래될 뿐이다.

'최저임금 1만 원'이란 참으로 귀가 솔깃해지는 구호가 아닐 수 없다. 그러나 어느 영화의 대사대로 '무엇이 중한지' 선후를 가려야 한다. 영세 중소기업이나 자영업자들을 나락으로 내모는 재벌 독식의 풍토나 약육강식의 하청 구조, 비정규직의 양산을 초래하는 고용 규정 같은 근본적인 문제들을 치유하는 것이 우선이다. 그리고 현행 시간당 6천30원인 최저임금이라도 제대로 지켜질 수 있도록 홍보하고 위반 사례를 철저히 단속하는 것도 필요하다. '최저임금 1만 원'은 구호만으로 가능한 일도 아니거니와 설령 억지로 실행된다 하더라도 토대가 마련되지 않은 상황에서는 오히려 재앙이 될 가능성이 크다.

추왕훈 연합뉴스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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