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료주의라는 이름의 괴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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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료주의라는 이름의 괴물
  • 연합뉴스
  • 승인 2016.07.10 1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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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종현 연합뉴스 논설위원

대한민국의 경제성장률이 조만간 0%로 내려앉을 것이라는 분석이 나왔다. 김세직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는 최근 논문에서 1990년대 중반 이후 우리나라의 성장률은 5년마다 평균 1%포인트씩 규칙적으로 떨어지고 있다고 했다. 구조적 원인을 찾아내 수술하지 않으면 6∼7년 뒤에는 성장률이 0%대로 진입할 수 있다는 우울한 전망이다. 신흥 경제국 가운데 역동성의 상징이었던 우리나라의 성장 엔진이 꺼져가고 있다는 진단은 곳곳에서 나오고 있다.

많은 식자는 한국을 냄비 속 물에 뜬 개구리에 비유한다. 냄비가 서서히 가열되면서 영문도 모르게 죽어가는 개구리처럼 기분 좋은 온도에 취해 있는 게 아니냐는 것이다. 말로는 위기를 부르짖지만 돌아서면 '나만 괜찮으면 그뿐'이라는 집단 보신주의에 매몰됐다는 설명이다.

이런 흐름은 나라 전반에 똬리를 튼 관료주의에 맞닿아 있다. 관료주의는 변화를 싫어하고 현상유지를 선호한다. 도전하지 않는다. 책임을 회피하고 결정을 유보한다. 그래서 나라든 기업이든 겉으로는 멀쩡한데 속으로는 곪아간다.

대우조선해양의 부실 사태는 관료주의가 부른 재앙이다. 이 업체는 환란 직후인 1999년 터진 대우그룹 해체 당시 국책은행인 산업은행의 자회사로 편입돼 막대한 금융지원을 받아 부실을 털고 우량기업이 됐다.

역대 정권은 여기에 이사, 감사, 고문 등을 낙하산을 내려보내 단물 빨기에 급급했을 뿐 16년간 경영을 방치했다. 서둘러 매각해 주인을 찾아줬어야 하지만 누구도 총대를 메지 않았다. 부실이 누적되면서 수술이 필요했지만 아무도 칼을 들지 않았다. 정권에서 정권으로 폭탄 돌리듯 문제가 '전달'만 될 뿐이었다. 그러는 사이 부실은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관료사회의 복지부동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지만 갈수록 정도가 심해지고 있다. 중앙부처의 경우 외딴 섬나라 같은 세종시로 이전하면서 변화에 더욱 둔감해졌다는 얘기가 나오고 있다. 지방 공직사회는 이미 토착 권력화한 지 오래다. 세간에서는 '대통령 위에 관료'라는 말도 회자하고 있다.

관료들은 대체로 신분과 정년, 연금이 보장된다. 중뿔나게 나설 일도 없고, 정권에 충성할 이유도 없다. 자칫 '헌신'했다가 어느 정권 사람이라고 낙인이 찍히면 끝이다. 충실히 윗전의 명령을 이행하고, 나중에 책잡히지 않도록 업무수행시 절차적 하자를 피하는 것을 능사로 한다. 정책은 소나기처럼 쏟아지는데 대부분 검증은 없다. 5년의 정권 임기가 끝나면 거의 잊힌다.

관료들의 힘은 일본의 민주당 정권에서 드러났다. 민주당은 2009년 8ㆍ30 총선에서 압승, 54년간의 자민당 장기지배를 종식했다. 민주당 정권은 선거공약이었던 '탈(脫) 관료'를 내세워 거대 권력집단화한 관료정치의 상징인 사무차관 회의를 폐지했다.

▲ 관료주의로 부실 키운 대우조선해양

공무원 출신의 사무차관 회의는 당시까지 123년의 전통을 가진 핵심 정책 결정 기구로, 각료회의는 사무차관 회의 결과를 추인하는 거수기에 불과했다. 이걸 없애겠다고 관료의 기자회견도 금지하고, 각 부처의 모든 정책 결정을 중의원이나 참의원인 각료와 부대신(차관), 정무관(차관보)이 하도록 했다. 관료는 정치의 '손발'이지 국정의 주체가 아니라는 논리였다.

관료 배제 정치는 여론의 큰 지지를 받으면서 기세등등하게 추진됐다. 하지만 2년만인 2011년 9월 사무차관 회의는 부활했고 '탈 관료'는 없었던 일이 됐다. 공무원들이 눈치만 보고 움직이지 않자 국정이 마비됐기 때문이다. 부처 간 정보 교류, 업무 협의, 정책 아이디어 개발이 이뤄지지 않았다. 정치인은 관료들에게 전문성과 실무 추진 능력에서 상대가 되지 않았다.

노다 요시히코(野田佳彦) 총리는 결국 "정치인만으로는 세상이 잘 돌아가지 않는다. 각 부처의 도움이 필요하다"면서 사무차관들에게 고개를 숙였다. 민주당 정권은 관료사회를 길들이지 못하고 3년 3개월 만에 붕괴했다.

관료들을 나무랄 수는 없다. 막스 베버가 지적한 것처럼 관료는 업무에 관한 한 영혼이 없다. 민주주의 사회에서 유능한 관료는 좌든 우든 어느 정권에나 '봉사'할 자세가 돼 있어야 한다. 정치가 바로 이런 관료들을 틀어쥐고 끌어, 국정 목표 달성으로 몰아가야 한다. 정치가 결정하고 책임지는 모습을 보여야 관료사회가 움직인다.

정치는 빠지고 정책의 결과에 대한 책임을 관료에게 돌린다면 국정은 앞으로 나아갈 수 없다. 외환은행의 매각과 관련, 정권은 오리발을 내밀고 실무자인 변양호 당시 금융정책국장에게 헐값 매각의 책임을 씌워 유치장에 보낸 이후 공무원 사회는 움직이지 않는다. 세월호 사건에서 관료주의의 폐해가 적나라하게 드러났고, 이를 개선하겠다고 수선을 떨었지만 대우조선을 보면 변한 건 없다.

문제는 관료를 통제해야 할 정치의 관료화다. 지금 다양한 개선책이 논의되고 있지만 특권의식에 물든 정치인들의 관료주의는 위험수위다. 정치인들이 부처나 공기업의 리더가 되면 얼마 지나지 않아 관료사회에 순치된다. 폼만 잡고 구정물 튀는 일은 하지 않으려 한다. 조직을 다뤄본 적 없는 교수 출신 장관이나 공기업 CEO도 관료들의 '밥'이 되기 십상이다.

정치권이나 공무원 사회에만 관료주의가 횡행하는 게 아니다. 기업의 관료주의도 한국 경제의 숨통을 막고 있다. 창업자들은 도전의식으로 모험했지만 2세, 3세 체제가 되면서 야성이 사라졌다. 능력이 검증되지 않은 오너 주변엔 관료화한 가신들이 득실대고 있다. 창의적이고 혁신적인 인재가 자리할 공간이 없다. 사회 전반의 에너지가 관료주의라는 괴물의 입속으로 빨려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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