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드와 한국 경제
상태바
사드와 한국 경제
  • 연합뉴스
  • 승인 2016.07.12 09:27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2000년 6월 1일 한국 정부가 중국산 수입 마늘에 대해 315%의 관세율을 부과하기로 했다. 값싼 중국 마늘의 수입으로 국내 마늘 가격이 폭락해 농가가 큰 피해를 보았기 때문이었다. 중국은 1주일도 지나지 않은 6월 7일 한국산 휴대전화와 폴리에틸렌 수입 중단 조처를 했다. 중국산 마늘 수입 규모는 연간 900만 달러였고, 한국의 중국에 대한 휴대전화와 폴리에틸렌 수출은 5억 달러 규모였다. 되로 주고 말로 받은 셈이었다. 그해 7월 15일 한국은 중국산 마늘 3만2천 t을 50% 이하의 관세율로 수입하기로 하고 마늘 분쟁을 타결했다. 40여 일 만에 완전히 백기를 든 것이다.

한국의 대중 수출 의존도는 지난해 26%였다. 중국에 대한 수출은 1천371억 달러로, 미국 698억 달러, 일본 255억 달러를 합한 것보다 많다. 중국에 대한 무역 흑자는 468억 달러. 미국에 대한 무역 흑자 258억 달러보다 200억 달러 이상 많다. 한국의 일본에 대한 무역수지는 202억 달러 적자다. 중국이 한국 경제에 얼마나 중요한지 알 수 있다.

한국은 1992년 한·중 수교 이후 지난해까지 총 697억 달러를 중국에 직접 투자해 같은 기간 미국(880억 달러)에 이어 두 번째로 투자 규모가 크다. 중국에 진출해 있는 한국 기업이 그만큼 많은 것이다. 한국에 대한 중국의 투자 규모도 만만치 않다. 중국의 투자는 한국에 투자한 나라 중 8번째로 많다. 지난해만 놓고 보면 한국에 대한 전체 외국인 투자 중 9.5%를 차지해 3위다. 관광 분야에서도 중국 의존도가 높다. 지난해 한국을 찾는 외국인 중 45.2%가 중국인이었다.

미국의 고고도 미사일방어체계인 사드(THAAD)의 주한미군 배치 결정은 중국에 대한 경제 의존이 이처럼 큰 상황에서 단행됐다. 벌써 경제계에서는 중국의 보복에 대한 우려가 크다. 사드 배치 결정이 전해진 지난 8일 유커(중국인 관광객) 대상 매출이나 중국 수출 비중이 높은 기업들의 주식은 폭락했다. 하루에만 이 주식들의 시가 총액 중 최소 3조 원이 증발했다. 앞으로 중국의 대응 강도에 따라 2차, 3차 충격이 생길 가능성이 있다.

일본도 중국으로부터 무역 보복을 받아 완패한 경험이 있다. 2010년 센카쿠 열도(중국명 댜오위다오) 분쟁으로 중국 선장이 일본에 체포되자 중국은 일본에 희토류 수출을 중단했다. 희토류는 첨단 제품을 만들 때 사용되는 재료다. 일본은 대부분을 중국에서 수입한다. 일본은 선장을 17일 만에 풀어주고 무릎을 꿇었다.

사드 배치는 사실 어느 정도 예견할 수 있었다. 그만큼 한국은 미국의 입김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처지다. 박정희 전 대통령은 한국의 산업화를 이끈 인물로 존경받고 있지만, 한국 경제의 성공은 미국이 물건을 사주고, 직간접으로 지원해주지 않았으면 가능하지 않았다. 미국이 한국을 지원한 것은 한국이 예뻐서가 아니었다. 구(舊)소련, 중국, 북한과 대치한 냉전에서 한국을 제1 보루로 삼았기 때문이었다. 미국으로서는 최전선 보루를 경제적으로나 안보 측면에서나 강화할 수밖에 없었다. 미국의 경제적 배려나 안보 지원 없이 한국이 제힘으로 살아가기 쉽지 않은 것은 지금도 마찬가지다.

미국과 역대 최고의 밀월을 구가하는 일본도 아직 배치하지 않은 사드를 한국이 먼저 받아들이기로 한 이면에는 이런 한미 관계가 작동하고 있다. 대미 자주 외교를 추구했던 노무현 전 대통령이 한국-미국 자유무역협정(FTA)을 추진한 것이나, 이명박 정부가 미국산 쇠고기 수입을 강행했던 것도 이런 맥락과 무관하지 않다.

북한이 올해 1월 4번째 핵실험을 하고, 중거리탄도미사일인 무수단의 시험 발사를 5번 실패 끝에 성공한 데 이어 지난 9일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을 또 발사한 것은 사드 배치의 불가피를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 문제는 사드 배치 결정 시기와 방법이 우리 경제 흐름에 유리하지 않다는 것이다. 우리 경제는 수출 감소에 내수 침체가 겹쳐 올해 2% 중반대의 성장도 달성하기 어렵다. 조선·해운 구조조정이 성장률을 어느 정도 더 갉아먹을지, 얼마나 많은 실업자가 길바닥으로 나앉을지 미지수다. 브렉시트(영국의 유럽연합 탈퇴)로 보호주의 파고는 거세지고 금융시장은 불안하다. '김영란법' 시행으로 내수는 추가적인 위축이 우려된다. 여기에 중국의 보복까지 더해지면 우리 경제는 회복하기 어려운 타격을 받을 수도 있다.

커티스 스캐퍼로티 전 한미연합사령관이 2014년 6월 사드의 한반도 배치 필요성을 처음 제기한 뒤 정부는 사드 배치에 관해 한때 혼선을 빚는 모습이었다. 배치 결정 발표는 전격으로 이루어졌다. 결정 과정에서 중국의 보복 가능성을 염두에 둔 대비 조치를 했을까. 국내 정치와 마찬가지로 국제 정치도 생물과 같다. 사드라는 변수를 어떻게 요리하는가에 따라 외교와 경제의 성패가 갈린다.

중국은 홍기택 전 산업은행 회장이 맡았던, 한국 몫의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AIIB) 리스크 담당 부총재(CRO)직을 국장급으로 격하시켰다. 한국은 AIIB에 4조 원 이상의 지분을 갖고 매년 분담금을 나눠내고 있다. 산업은행이 최대주주인 대우조선해양의 부실과 분식회계로 인한 파문이 있었지만, 이를 고려해도 일방적인 조치이자 외교적 결례다. 일본은 센카쿠 사태 이후 중국에 진출한 주요 자국 기업들을 동남아시아 등으로 이전시키기 시작했다. 사드 배치를 결정할 땐 중국에 대한 경제 의존을 줄이겠다는 결기도 필요하다.

현경숙 연합뉴스 논설위원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
이슈포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