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층사다리'가 되지 못하는 교육은 무용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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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층사다리'가 되지 못하는 교육은 무용하다
  • 연합뉴스
  • 승인 2016.07.14 17: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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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행스럽게도, 어쨌든 교육은 아무런 효과가 없다. 만약 그렇지 않았다면 교육은 상류계급에 심각한 위협이 됐을 것이다." 신랄하게 정곡을 찌르는 어록을 많이 남긴 영국의 오스카 와일드는 19세기 말에 이렇게 교육의 무용성을 말했다.

2016년 7월. 우리나라 교육 정책을 입안하는 자리에 있는 고위 공직자는 기자들과의 저녁 자리에서 신념을 늘어놓는다. "신분제를 공고화시켜야 한다. (99%) 민중은 개ㆍ돼지로 취급하면 된다. (개ㆍ돼지로 보고) 먹게 살게만 해주면 된다. 신분이 정해져 있으면 좋겠다는 거다. 미국을 보면 흑인이나 히스패닉, 이런 애들은 정치니 뭐니 이런 높은 데 올라가려고 하지도 않는다. 출발 선상이 다른데 어떻게 같아지나. 현실이라는 게 있는데…."

우리는 경제개발 시기에 교육이 종종 신분상승의 도구로 기능했던 사례를 목격했다. 그런데 지금은 이런 교육의 기능에 대해 믿음보다는 회의가 많아진 느낌이다. 이런 흐름을 바꾸지 않는다면 오스카 와일드의 일침은 확고한 현실이 되고 말 것이다. 교육이 신분상승의 사다리가 되지 못한다면 계층을 가르는 유리 벽은 더없이 강고해질 수밖에 없다. 계층 분리가 고착화된 뒤에 그다음 순서로 따라오는 것은 엘리트 귀족교육뿐이다.

올해 초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은 우리나라에서 개인노력으로 계층상승이 가능하다고 믿는 사람은 소수로 전락했다는 내용의 보고서를 내놓았다. 4만여 명을 대상으로 한 보고서의 분석 결과를 보면 추세는 확연하다. 우리나라에서 계층상승의 가능성이 '작은 편'이라는 부정적 응답은 2009년 45.6%이던 것이 지난해에는 61.3%로 크게 늘었다. 대략 15%포인트 정도 부정적 응답자가 증가한 것이지만, 그 중간에 과반을 가르는 선이 있다는 게 중요하다. 자식 세대가 되면 계층상승이 이뤄질 가능성이 있다고 응답한 비율도 가파른 속도로 줄었다. 2009년 48.3%이던 긍정 응답은 2015년에는 30.1%에 불과했다. 이미 우리 사회에서는 개인의 노력으로 사회경제적인 지위를 높일 수 있다는 희망을 품은 사람을 쉽게 찾기 어려워진 것이다.

현실 세계에서 각 개인은 어떤 형태로든 불평등하게 태어나고 성장한다. 어떤 사람은 부잣집에서 태어나서 자라고 그보다 많은 사람은 경제적으로 어려운 가정환경이 숙명이다. 또 어떤 사람은 유력가문에서 성장하며 훨씬 더 많은 사람은 사회적으로 별 의미가 없는 부모를 만난다. 이런 불평등은 개인이 선택한 것도 아니고, 국가가 바로잡을 수 있는 일도 아니다. 다만 민주주의 사회는 불평등이라는 문제와 관련해 기본적 합의를 갖고 있다. `불평등은 개인의 재능과 노력에 따른 결과일 때만 가장 덜 불공정하다'는 절충이다.

교육의 목적은 민주시민으로서의 가치관 정립이라는 한 축과 사회에 적응토록 하는 지식습득이라는 기능적 측면으로 구성돼 있다. 지식습득은 사회경제적으로 볼 때 계층상승의 사다리가 될 잠재력으로 바뀔 수 있다. 계층상승의 디딤돌이라는 가능성이 사라진다면 교육은 절름발이가 된다. 계층 사다리가 사라진 사회는 역동성을 잃고, 퇴보하는 게 필연이다. 그건 과거 봉건시대 정체사회의 모습과 다를 바 없다. 봉건 왕조 시대에 소수의 선비가 과거시험을 통과해서 공적 책임을 독점할 동안, 나머지는 먹고 사는 일에만 매달려야 했다. 하지만 공부로 입신한 사람은 그마저도 소수였고 지도층은 대부분 세습 권문세가 출신들로 채워졌다. 모두가 잘 아는대로 무너져 가는 말기적 사회의 특징이다.

우리 사회에 세습자본주의 시대가 도래한다고 우려하는 목소리가 커지는 것과 동시에, 교육무용론이 은근히 퍼지고 있는 게 아닌가 우려스럽다. 교육만으로는 개인적 성공을 이루는 일이 불가능하다는 좌절감의 표현이다. 가장 최악의 상황은 이런 현상이 정신적, 물질적 교육 투자에 대한 무관심으로 확산하는 것이다. 만약 그런 상황을 끊지 못한다면 중장기적으로 사회의 역량은 바닥으로 추락할 것이다. 그렇게 될 거라고 믿을만한 강력한 역사적 증거가 많다. 뒤늦게 상황을 되돌리는 데는 몇 배의 노력과 시간이 필요하고 어떤 경우는 원상회복조차 불가능해진다.

이병로 연합뉴스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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