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좀비' 소재를 내세운 독특한 한국형 재난영화〈부산행〉이 20일 개봉했다.
원인 모를 바이러스가 전국으로 확산돼 긴급재난 경보령이 선포된 가운데, 서울역에서 부산행 열차에 몸을 실은 사람들은 생존을 건 치열한 사투가 벌어진다.
석우(공유)는 딸 수안(김수안)도 별거 중인 아내를 만나러 함께 부산행 열차에 오른다.
같은 시각, 서울 곳곳은 정체불명의 바이러스에 감염된 사람들로 혼란스럽다.
열차가 출발하려는 순간 감염자가 열차에 뛰어들고 승객들도 하나둘 바이러스에 감염된다.
뉴스에서는 "과격 시위대의 폭동이 정부 대응으로 안정되고 있으니 괴담이나 악성 유언비어에 동요하지 마라. 지금은 정부를 믿어야 할 때다. 국민 안전에는 이상이 없다"는 말이 흘러 나오지만 사람들은 이미 무서운 속도로 감염되고 있다.
딸을 지키려는 석우, 임신한 아내 성경(정유미)과 여자친구 진희(안소희)를 지키려는 상화(마동석)와 영국(최우식), 그리고 다른 사람이야 어떻게 되든 저 살기에 급급한 용석(김의성) 등 살아남고 싶은 이들의 사투가 펼쳐진다.
아직은 안전한 부산까지 이들은 무사히 갈 수 있을까?
물리기만 하면 수 분 내에 감염된다는 설정, 무언가를 물어뜯으려고 저돌적으로 진격해 오는 습성, 어둠에 취약하고 소리에 반응하는 감염자의 모습은 흡사 좀비를 떠올리게 한다.
〈부산행〉의 공포는 원인도 실체도 알 수 없는 막강한 전파력을 가진 바이러스가 아니다.
조금 전까지 함께 이야기하고 고난을 헤쳐나가고자 고군분투했던 동료가 한순간 영혼 없는 괴물로 바뀌어 움찔움찔 놀라게 하는 그 정도에서 그치지 않는다.
시속 300㎞로 달리는 밀폐된 공간 역시 거들 뿐이다.
평범한 일상이 깨지고 나서 마주하게 되는 이기적인 우리의 민낯과 연이은 대형 사건들을 통해 학습된 정서 속에서 펼쳐지는 현실에 안착한 공포다. 나 살자고 다른 사람을 방패 삼고, 같은 칸의 사람들을 선동하는 용석의 모습은 들키기 싫은 평범한 인간의 모습이다.
나부터 살고 보자는 용석에게 힘을 실어주고, 조금만 손을 뻗으면 함께 살 수 있는 이들을 외면하면서까지 용석의 말에 동조하는 이들 역시 그저 겁에 질린 평범한 사람들이다.
긴박한 상황에서도 자신과 딸이 살 방법을 몰래 알아내고서 상황을 모면하려 했던 석우의 모습 또한 어떠한가.
무엇보다 두려운 것은 아수라장이 된 상황 속에서도 "우리를 믿고 가만히 있으라"고 앵무새같이 반복되는 뉴스 속 모습이다.
재앙의 본질은 보지 못한 채 잘못된 정보로 국민을 현혹하는 정부와 언론의 안일한 태도다.
이 대목에서 영화는 우리의 현실을 돌아보게 한다.
사드의 논점이 어느 순간 '외부세력'에 대한 논란으로 전환되고 있는 현실이 두렵다.
국민의 불안과 불신을 '괴담'으로 치부하고 정부는 이를 중대 범죄로 단호히 대처하겠다고 발표했다.
본질을 흐리고 연대를 방해하며 누군가의 고립으로 사태를 해결하려는 모습은 무고한 이들의 엄청난 희생과 수많은 시행착오 속에서도 하나도 변하지 않았다.
영화는 부산에 도착하며 끝이 나지만 현실은 부산에만 도착하면 끝이 아닐 것이다.
좀비 영화 특유의 음습함을 제거하고 역동적인 액션으로 긴박감을 극대화했던 〈월드워 Z〉(2013)가 어쩔 수 없이 떠오른다.
무작정 인간을 공격하는 좀비의 특성을 한껏 활용하면서도 문제 해결을 위한 정보를 효과적으로 흘려 놓아 관객을 적극 영화 속으로 이끌었다. 범세계적으로 힘을 합쳐 '끝나지 않은 전쟁'에 함께 대응하는 것으로 여운을 남겼다.
그러나 〈부산행〉의 공권력은 잘못된 정보로 국민을 현혹할 뿐 개개인의 사투와 희생에 맡긴 채 그저 내달려 결국 신파로 마무리하는 아쉬움을 남긴다.
덕분에 관객은 제3자로 관망할 뿐 적극적으로 영화 속으로 들어가지 못한다.
속도감 있는 진행에 몰입될 뿐 감정이입에는 실패한다. 실사로 그려낸 좀비 세상은 강렬하다. 평범하면서도 변화무쌍한 감정 변화를 이끌어내는 연기자들의 연기 또한 인상적이다.
지극히 개인적이던 석우가 어느 순간 연대를 통해 살아남을 방법을 찾아가는 과정을 공유는 설득력 있게 그려냈다.
곰살맞은 애처가이면서도 맘에 들지 않는 상대를 슬슬 약 올릴 때는 얄밉기까지 했다가 좀비에 맞서 주먹을 힘껏 내지르는 마동석은 유머와 액션, 감동까지 아우르며 존재감을 발산한다.
킬링타임용으로도 손색이 없지만 하 수상한 시절을 관통하며 〈부산행〉은 묵직하게 질주할 듯하다. 액션, 스릴러. 118분. 15세 관람가
http://movie.naver.com/movie/bi/mi/mediaView.nhn?code=130966&mid=311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