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란법, 거악(巨惡) 근절 가능할까
상태바
김영란법, 거악(巨惡) 근절 가능할까
  • 연합뉴스
  • 승인 2016.08.02 09:41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 김영란법에 대해 합헌 결정을 한 헌법재판소의 박한철 소장

대한민국 국민 가운데 공무원, 공기업 임직원, 교사ㆍ교수, 언론인과 가족 등 400만명이 올바르게 살라는 법의 명령을 받았다. 이들은 다음 달 28일부터 부정한 청탁을 하거나 3만원(식사)-5만원(선물)-10만원(경조사비) 이상을 대접받으면 범죄자가 된다.

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김영란법)에 대한 일반 여론의 지지는 뜨겁다. 일부 이해당사자의 반발도 있지만, 각계의 지도적 인사들은 대한민국이 맑고 깨끗한 사회로 가는 전기가 될 것이라고 기대했다.

반칙 없는 정의로운 국가에 대한 꿈은 우리의 5천 년 역사에서 면면히 이어졌다. 역대 어느 왕조, 어느 정권도 새 출발 할 때는 늘 부정과 비리 척결을 내세웠다. 정의 사회 구현은 포장만 달리했을 뿐 모든 정권의 캐치프레이즈였다. 그런데도 부패는 근절되지 않고 마치 불사의 바이러스처럼 우리 사회의 DNA에 내장돼 유전인자로 이어졌다.

이젠 이걸 더는 방치할 수 없다고 공직자와 사회적 영향력을 가진 민간인까지 법으로 묶어버렸다. 김영란법이 시사하는 정치적, 사회적, 역사적 의미는 간단치 않다. 우리 사회의 전통인 상호부조, 온정, 의리의 문화에 일대 충격이 가해졌다.

지금까지는 성공한 친구, 돈 많은 동향ㆍ동문이 주변에 밥 한 끼, 술 한 잔 내는 게 '미풍양속'이었으나 이젠 '직무 연관성'에 따라 범법자가 될 수 있다. 서울의 저녁 자리에서 돼지갈비에 폭탄주 몇 잔이면 1인당 3만원이 훌쩍 넘으니 음식값을 따져가며 회식을 할 수밖에 없게 됐다. 있는 자는 밥 주고 뺨 맞을 수 있기에, 없는 자는 주머니 사정으로 각자 저녁 약속 자체가 부담이다. 더치페이가 윤리가 된 것이다.

이렇게 해서 정의가 강물처럼 흐르고, 공정하고 평등하며, 갑질 없는 선진 사회가 된다면 얼마나 좋을까. 이 정도면 법의 적용을 받아 졸지에 잠재적 부정부패 보균자가 된 400만명은 자존심의 상처나 생활의 불편쯤 감수할 수 있지 않겠는가.

김영란법은 분명 '작은 악(小惡)'에 대한 경감 효과가 있을 것이다. 주변이 모두 감시자가 될 수 있으므로 공직자들은 식사 상대를 정하거나 애경사를 맞아 경조금을 받을 때 극도로 조심하지 않을 수 없게 됐다. 안면이 있다고 함부로 인사 문제나 가족과 지인의 민원을 청탁하는 것도 어려워졌다.

문제는 이 법이 '큰 악(巨惡)'에도 약발이 있을 것이냐다. 김영란법이 만들어진 계기도 국회의원 등 선출직 공직자, 판검사와 변호사, 대기업 오너가의 뇌물 사건이나 갑질, 고위 관료의 병역비리와 방산비리 등 큰 악들이었다. 성완종 리스트는 우리 정치의 썩은 속내를 보여준다. 진경준ㆍ홍만표ㆍ최유정 사건은 법조계의 추한 얼굴을 드러낸다. 방산비리는 군 간부들의 도덕적 해이를 적나라하게 광고했다. 국가의 근본을 흔드는 건 이런 범죄들이지 자질구레한 소악들이 아니다.

주식 뇌물로 일확천금했다가 구속된 진경준 검사장

역사적으로 부정부패는 항상 사회 지도층의 문제였다. '윗물이 맑아야 아랫물이 맑다'는 속담은 진리다. 우리 현대사에서 부정부패는 권력형 부패의 다른 이름이다. 책임질 위치에 있는 사람들이 깨끗해지면 비리의 숙주는 자연히 말라 죽는다. 그렇다고 소악을 가볍게 보자는 건 아니다. 바늘 도둑이 소도둑이 될 수 있으므로 소악을 단속하면 거악을 견제하는 효과도 있을 것이다. 사회 전반의 투명성을 키워 빽없고 돈 없는 국민의 마음을 편하게 하고, 젊은 세대에게 정직한 삶을 교육하는 계기로 삼을 수도 있다.

다만 슬픈 것은 김영란법으로 하여 인간에 대한 신뢰는 더욱 멀어졌다는 점이다. 이 법은 감시와 처벌만이 세상에 질서를 부여한다는 이사와 한비자의 법가를 신봉한다. 성선설을 폐기하고 성악설을 받아들인다. 이는 또한 사회 구성원에게 윤리와 도덕을 심어 자정 능력을 키워야 할 교육에 대한 불신이기도 하다.

공정하고 공평한 세상에 대한 국민적 염원에 전적으로 공감한다. 대한민국의 국격을 높이기 위해 김영란법과 같은 강력한 부패방지법이 필요하다는 점도 인정한다. 그렇다고해서 세세한 법 규정으로 국가와 계약관계가 없는 사람의 사생활까지 일일이 규제하는 걸 정상이라고 얘기할 수는 없다. 이는 인간의 존엄성과 자유에 대한 명백한 도전이다. 법가를 채택해 강력한 통치력으로 중국을 처음으로 통일한 진나라는 단명했다. 진나라 말기 형법이 거칠어지고 세금이 무거워지면서 수도인 함양 백성의 절반 이상이 전과자가 됐다. 사람들은 이런 숨 막히는 국가에 염증을 느꼈고 결국 반란으로 진나라는 종말을 맞았다.

좋은 나라, 좋은 사회가 되려면 법의 오남용이 없어야 한다. 진부한 얘기이긴 하지만 법은 정의를 구하는 수단이지 목적이어선 안 된다. 부패의 척결을 위한 김영란법의 초기 정착은 중요하지만 단속과 집행에 절제가 필요하다. 일각의 우려처럼 이 법이 표적을 정해 칼춤을 추는 '검찰공화국'의 수단으로 전락해선 곤란하다.

국가의 공권력은 거악이나 소악이나 엄격한 법의 잣대를 적용해야 하지만 부귀(富貴)와 공명(功名)에 대한 탐욕으로 헌법 질서를 흔드는 거악의 근절에 매진해야 한다. 진경준 같은 큰 악은 제대로 다스리지 못하면서 곁가지만 붙들고 사법 정의 운운한다면 웃음거리가 될 것이다. 김영란법의 집행엔 사회적, 사법적 지혜가 요구된다.

김종현 연합뉴스 논설위원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
이슈포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