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를 낳지 않는 여자들의 반란
상태바
아이를 낳지 않는 여자들의 반란
  • 연합뉴스
  • 승인 2016.09.07 12:54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이슬람 문학의 감수성이 얼마나 아름다울 수 있는가를 보여준 할레드 호세이니는 2003년 첫 소설 '연을 좇는 아이'(The Kite Runner)로 일약 베스트셀러 작가가 됐다. 그가 2007년 발표한 '천 개의 찬란한 태양'(A Thousand Splendid Suns)은 출세작보다 더 울림이 크고 시적이다. '천개의 …'는 이슬람 사회의 극한적 여성 차별을 그렸다. 그중 하나를 전하자면 여성은 남편이나 남자 친척을 동행하지 않고는 외출할 수 없다는 율법이다. 아프가니스탄 전란 와중에 남편을 잃은 여성들은 취업은 고사하고 외출조차 못 해 아이를 키우지 못하고 고아원에 맡겨야 했다. 고아원에는 엄마가 살아있는, 고아 아닌 아이들로 넘쳐났다.

'뉴 월드(New World)'를 슬로건으로 내걸었던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은 역대 올림픽의 고질로 지적됐던 인종·성 차별을 극복하려는 노력이 돋보였다. 초기에 남성 전유물이었던 올림픽에서 금녀의 벽은 허물어지고 있다. 여성의 외부 활동을 엄격히 제한하는 율법에도 일부 이슬람 국가들은 여성 선수들을 출전시키거나 선수단 기수로 내세웠다. 개막식에서 이란 양궁 선수 자하라 네마티(31)가 국기를 들고 입장해 갈채를 받았다. 지진 때 하체가 마비된 네마티의 신체장애와 여성 차별에 대한 도전은 큰 감동을 줬다.

힐러리 클린턴이 오는 11월이면 세계 최고 권력자로 등극할 가능성이 점쳐진다. 한국은 이미 여성 대통령을 배출했고, 최근 제1야당 대표도 여성이 선출됐다. 양성평등 문화가 발달한 서구는 물론 국내에서도 점점 많은 여성이 걸출한 지도자로 사회 전면에 등장하고 있다. 그러면 경제 규모 11위, 무역 6~7위로, 세계 무대에서 큰소리쳐도 될 법한 한국의 양성평등은 어디에 와 있나.

마스터카드가 아시아태평양 16개국 여성의 경제·경영 분야 참여도를 수치화한 여성 기업가 지수에 따르면 한국은 46.2점으로 9위였다. 한국은 다른 아·태 국가보다 여성의 교육수준이나 가정 경제력은 높지만, 사회 진출도는 평균에 미치지 못했다. 한국 여성의 가정 경제력과 고등 교육기관 진학률은 각각 2위와 4위였다. 그러나 노동참여율과 경영자 비율은 각각 12위와 14위로 하위권이었다.

한국 양성 문화의 후진성을 보여주는 지표는 여럿 있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펴낸 '젠더 형평성 지수의 국제적 동향과 시사점' 보고서를 보면 '세계경제포럼 젠더 격차 지수'(Gender Gap Index·GGI)에서 한국은 지난해 115위(전체 145개국)였다. 한국은 특히 '경제 참여 및 기회' 분야 순위가 낮았다. 한국은 이 분야 순위가 2006년 96위(전체 115개국)에서 2015년 125위(145개국)로 하락했다. 반면 건강과 생존 분야에서는 2006년 94위에서 2015년 79위로 나아졌다. 영국의 경제주간지 '이코노미스트'가 발표한 '유리 천장지수'에서도 한국은 꼴찌와 다름없었다.

'유엔개발계획(UNDP) 젠더 불평등 지수(GII)'의 경우 한국은 2014년에 전체 152개 국가 중 17위로 높았다. 이 지수는 산모 건강, 출산, 보건에 가중치를 둔다. 종합하면 한국 여성은 교육을 많이 받고 건강하지만, 사회, 경제적으로는 별 성공을 거두지 못한다는 뜻이 된다. 이는 우리가 피부로 느낄 수 있는 현상이기도 하다. 자식을 기껏해야 한둘밖에 낳지 않는 요즘 아들딸 불문하고 형편이 닿는 한 최고의 교육을 한다. 학업 성취도에서 여성은 남성을 앞지른다. 좋은 영양 덕분에 '신인류'라고 불릴 만큼 젊은 여성들은 키가 커졌다. 피부에 윤기가 흐르고, 옷차림이 세련돼 동남아시아에서는 한국 여성이 "공주 같다"며 부러워한다. '한류' 열풍의 근본 원인은 우아하고 세련된 한국 여성이지 않나 싶다.

건강하고 교육도 많이 받은 한국 여성들이 왜 사회, 경제적으로는 성공하지 못할까. 주류업체 금복주는 결혼한 여성에게 퇴사를 강요하는 성차별적 고용 관행을 창사 이래 현재까지 약 60년 동안 지속해왔다. 육군3사관학교는 사관생도 모집 전형에서 여생도 지원자들에게 임신반응검사를 포함해 산부인과 수술기록을 제출하도록 해 제소됐다. 국내 100대 기업 임원 중 여성은 40명 중 1명꼴이다.

박 대통령이 당선됐을 때 원칙을 중시하는 그의 스타일로 인해 정치 문화 혁신 기대가 적지 않았다. 그것보다 더 큰 것은 헌정사의 첫 여성 대통령 탄생이 뿌리 깊은 한국의 남녀 차별 문화에 획기적인 전환점이 될 수 있다는 희망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별로 바뀌지 않았다. 왜 그럴까. 보건복지부는 '퇴근할 때 인사하지 맙시다'라는 캠페인을 벌이고 있다. 출산, 가정과 일을 양립하는 데 우호적인 환경을 조성하기 위해서라고 한다. 이렇게 해서 저출산이 해결될 수 있을까. 지난 10년간 저출산 대책에 80조 원을 쏟아부었지만 효과는 크지 않았다.

돈을 적게 들이고도 저출산을 해결하는 방법이 있다. 성차별을 없애는 것이다. 우대까지 안 해도 된다. 맞벌이 남편이 가사와 육아를 공평하게 분담하고, 여성이 일터에서 존중받아 임신과 출산을 해도 불이익이나 불편을 겪지 않는다면 사정하지 않아도 애를 낳을 것이다. 어떤 이가 말했다. 미래 노동력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애를 낳으라면 누가 낳겠느냐고. 아이는 사랑의 결실이다. 저출산은 돈만으로 해결되지 않는다. 여성에 대한 사랑과 존중이 전제되지 않으면 말이다. 아직도 모르겠는가. 애를 낳지 않는 것은 여자들의 반란이다. (현경숙 논설위원)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
이슈포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