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이 서로 베풀고 살아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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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이 서로 베풀고 살아야지"
  • 연합뉴스
  • 승인 2016.09.11 1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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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아암 환자를 위해 삭발하는 배우 김보성

 '의리의 사나이'로 유명한 배우 김보성 씨가 검은색 선글라스와 더불어 자신의 트레이드 마크인 긴 머리를 남김없이 잘랐다. 이유인즉슨 소아암 환자를 위한 가발을 만드는 데 기부하기 위해서란다. 지난해 겨울 김 씨는 소아암 환자를 돕기 위해 로드FC(종합격투기) 자선경기에 나서겠다고 선언하고 줄곧 연습을 해왔다고 한다.

언론 보도에 따르면 김 씨는 이달 6일 서울 압구정 로드FC 짐에서 '소아암 어린이 돕기 로드FC 데뷔전 기자회견'을 하기에 앞서 삭발을 했다. 그는 "첫째 모발을 기부하고, 둘째 항암치료 과정에서 머리가 빠지는 아이들에게 동질감을 느끼며, 셋째 로드FC 데뷔전 승리 의지를 굳건히 하기 위해 삭발했다"고 말했다. 김 씨는 오랫동안 자선 활동을 해왔다. 또 다른 나눔을 실천하기 위해 50세의 늦은 나이에 격투기라는 새로운 도전에 나선 것이다. 자선경기는 오는 12월 열린다.

김 씨의 '나눔'은 한국 사회의 소득 양극화 속도가 가히 세계적이라는 최근 뉴스 때문에 더욱 빛이 난다. 국회입법조사처가 세계 상위소득 데이터베이스와 국제통화기금(IMF) 자료를 분석한 바에 따르면 우리나라 상위 10%의 소득 집중도는 2012년 기준 44.9%로 세계 주요국 중 미국(47.8%) 다음으로 높았다. 소득 집중도란 소득 상위권 구간에 있는 사람들이 전체 소득에서 차지하는 비중으로, 경제 내 소득 불평등 정도를 판단하는 지표다.

외환위기 이전인 1995년에만 해도 상위 10%의 소득 집중도가 29.2%로 미국(40.5%)은 물론 싱가포르(30.2%), 일본(34%), 영국(38.5%), 프랑스(32.4&) 등보다 크게 낮았다. 그러나 이후 빠른 속도로 집중도가 상승하기 시작해 2000년 35.8%, 2008년 43.4%, 2012년 44.9%까지 치솟았다. 이 기간(1995∼2012년) 상위 10%의 소득 집중도 상승 폭(15.7%포인트)은 비교 대상 국가 중 가장 높았다. 외환위기 이후 우리나라 경제성장의 과실이 대부분 상위 10% 소득층에 집중됐음을 의미한다. 소득 불평등으로 인한 양극화가 그만큼 빠르게 진행됐다는 뜻이다.

유독 우리나라에서 양극화의 속도가 빨랐다는 것은 그간 사회 시스템에 큰 문제가 있다는 이야기다. 불평등이 사회 갈등의 뿌리라는 점에서 이대로 계속 가면 지속적인 사회 발전이 어렵다. 국가의 미래가 암울하다는 이야기가 나올 만하다.

그래도 열심히 번 돈을 공동체를 위해 쾌척하는 부자들이 잇따르고, 가진 것이 많지 않아도 작은 나눔을 실천하는 배우 김보성 같은 사람들이 있다는 데서 우리 사회의 희망을 본다.

이달 초 사재 3천억 원을 출연해 기초 과학 육성을 위한 재단을 만들겠다고 밝힌 서경배 아모레퍼시픽 회장은 부자의 귀감이 되고도 남음이 있다. 서 회장은 재단 설립 배경에 대해 "제가 성공하기까지 받아온 과분한 관심과 사랑을 우리 사회에 반드시 크게 돌려드려야겠다고 다짐했다"며 "힘들게 번 돈을 멋있게 써야겠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아울러 과학연구를 지원하는 사람들이 늘었으면 하는 바람도 밝혔다. 그는 "혼자 하면 백일몽이지만 다 같이하면 현실이 된다"고 했다.

또 지난달에는 조창걸 한샘 명예회장이 기부를 약속한 사재 4천400억 원을 바탕으로 한국판 브루킹스연구소를 표방한 민간연구소인 '여시재(與時齋)'가 공식 출범했다. 한샘 창업주인 조 명예회장은 여시재의 아무 직함도 맡지 않았다. 연구소가 괜히 출연 기업의 눈치를 보지 않도록 하기 위함이란다. 통 큰 기부로 재정적으로 독립한 연구소를 만들어 놓고 아무 조건 없이 물러나는 그야말로 '아름다운 퇴장'이다. 10년 전쯤 미국 워싱턴에서 1년간 연수할 때 세계적으로 유명하다는 민간 싱크탱크들을 둘러볼 기회가 있었다. 전·현직 정부 관리와 학자들이 싱크탱크에서 모여 주요 정책 이슈에 대해 자유롭게 의견을 교환하는 장면이 아주 인상적이었다. 그때 한국에는 언제쯤 이런 싱크탱크가 생길까 싶었는데 그게 비로소 현실이 됐다.

"세상이 서로 베풀고 살아야지, 요즘처럼 지만 잘 살겠다고 해서 되겠나." 지난 주말 고향을 찾아 소꿉친구들과 세상사를 이야기할 때 한 친구가 뱉은 말이다. 친구는 고교를 졸업하고 곧바로 생업에 뛰어들었고 지금은 관광버스를 운전하는 '평범한' 시민이다. 얕은 지식과 글로 세상의 시시비비를 가리겠다며 언론사에서 20년 넘게 녹을 먹는 사람보다 세상을 보는 이치가 명쾌했다. 나만 잘살아서는 행복한 사회가 될 수 없다. 베풀고 사는 것이 함께하는 세상의 이치인데 다만 깨닫지 못할 뿐이다. 벌써 며칠 뒤면 추석이다. 가을의 풍성함 뒤에는 늘 쓸쓸한 구석이 있다. 나보다는 가족, 가족보다는 이웃을 돌아보라고 한가위가 풍성한 거 아니겠는가. <최재석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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