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신의 끝은 어디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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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신의 끝은 어디인가
  • 연합뉴스
  • 승인 2016.09.19 09: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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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 사는 세상에서 믿음은 사회의 존립 근거다. 신뢰가 붕괴한 사회는 만인 대 만인이 투쟁하는 정글일 뿐이다. 의심과 의혹, 배신이 난무하는 국가는 모래성이다.

세월호 사건 이후 우리 사회를 관통하는 불안의 근원은 '신뢰의 소멸'이 아닐까 싶다. 소통과 대화, 합의가 사라진 폐허에는 양보와 배려, 온정이 뿌리내릴 수 없다. 자고 나면 터지는 대형 뉴스의 상당 부분은 책임을 져야 할 사람들이 직업윤리를 저버린 부끄러운 기록이다.

불신의 뿌리는 사회 지도층의 도덕적 타락에서 찾아야 한다. 국가를 지탱하는 중심축이 썩거나 부실해져 국민이 해방 이후 70여 년간 피땀 흘려 이룩한 대한민국의 미래를 장담할 수 없게 됐다.

정당이나 정치인은 '국민'을 입에 달고 살지만 정작 국민의 삶은 갈수록 팍팍해지고 있다. 정치권은 4ㆍ13 총선 민의를 받들어 협치를 하겠다고 합의하고도 헌신짝처럼 팽개쳤다. 집권당 대표는 국회의원을 나라에 해를 끼치는 '국해(國害)의원'이라고 고백했다.

공직 후보자의 인사청문회는 국가의 지도층의 건전성 수준을 보여준다. 인사 검증을 거친 인사들이 이 정도라면 검증에서 탈락한 사람들의 재산형성이나 입신 과정에서의 탈ㆍ불법은 어떻다는 건가.

▲ 복마전 경영으로 미래가 불투명한 대우조선해양

대우조선해양은 복마전 종합세트다. 부실과 비리 드라마에서 경영진과 국책은행, 정부, 정치권이 누가 주연이고 조연인지 모를 정도로 뒤엉켜 열연했다. 여기에 유력언론사의 주필 부인이 선박 명명식 도끼질로 스토리의 정점을 찍었다.

법치국가의 보루라고 할 수 있는 법조 3륜(판사 검사 변호사)은 거듭되는 비리와 추문으로 바퀴를 잃은 채 시궁창에 추락했다.

국제투명성기구(TI)가 발표한 국가별 부패인식지수(CPI)에 의하면 한국은 100점 만점에 56점으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가입 34개국 가운데 27위로 하위권이었다. 아시아권의 싱가포르(85점)·홍콩(75점)·일본(75점)에 비해 크게 낮았다.

국가 기관에 대한 국민의 평가도 바닥이다. 지난 2월 경제학 공동학술대회에서 발표된 조사를 보면 정부에 대한 국민의 신뢰도(100점 만점)는 평균 44.7점이었다. 국회(28.9점)가 꼴찌였고, 검찰(39.7점)이 그 바로 위였다.

윗물 아랫물 가릴 것 없이 사회 전반이 혼탁하다. 나와 가족 외엔 아무도 믿을 수 없다는 인식이 팽배한 사회에서는 양심을 저버린 원색적 이기주의가 판을 치게 된다. 사기와 음해, 무고, 소송이 난무한다. 우리나라는 엄한 사람에게 죄를 덮어씌우는 무고 사건 비율이 세계 1위이고, 무고죄 기소 건수는 이웃 일본의 200배가 넘는 것으로 보도됐다.

사회 구성의 기초 단위인 가정의 유대도 깨졌다. 지난해 혼인 건수는 30만2천 건이었지만 이혼 건수는 10만9천 건이었다. 세 쌍 가운데 한 쌍꼴로 결혼이 파탄 나고 있다. 최근 들어서는 결혼 20년이 넘은 부부의 황혼이혼이 급증하고 있다. 배우자의 은퇴를 기다렸다가 연금을 나눠 가지려는 이혼이 증가한다니 야박 세태를 짐작할 만하다. 가정의 해체는 많은 경우 2세, 3세의 삶을 불행하게 한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가운데 자살률 1위라는 통계도 기댈 곳을 찾기 힘든 사회 분위기와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사회 내부에서 불신이 위험 수위로 치닫고 있지만 종교계를 포함한 어느 집단도 이를 바로 잡을 수 있는 권위는 없어 보인다.

▲ 국민이 행복한 나라 노르웨이의 수도 오슬로

공자(孔子)는 한 나라가 굶주리거나 군대가 없어도 유지될 수 있으나 믿음(信)이 없으면 존속이 어렵다고 단언했다. 우리 사회가 자정 기능을 발휘하지 못하고 불신의 폭주가 계속될 경우 그 끝이 어떻게 될지 두렵다.

그렇다면 해결의 실마리도 믿음의 회복에서 찾아야 한다. 지상에서 사람이 가장 살만한 곳이라는 북유럽 국가들은 정부 등 공적 영역에 대한 국민의 신뢰가 강하다. 공직자들이 국민의 행복을 위해 헌신하고 법과 윤리가 살아 있으며, 제도적으로 불평등을 최소화했다.

이런 나라를 만들기 위한 해법은 이미 나와 있다. 우리가 애써 외면해왔던 대한민국 헌법 전문을 이 땅에 바로 세우면 된다.

헌법 전문은 "정의·인도와 동포애로써 민족의 단결을 공고히 하고, 모든 사회적 폐습과 불의를 타파하며, 자율과 조화를 바탕으로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더욱 확고히 하여 정치·경제·사회·문화의 모든 영역에 있어서 각인의 기회를 균등히 하고, 능력을 최고도로 발휘하게" 하도록 규정했다.

불신과 부조리의 근원인 차별과 격차, 불의, 부패를 배격한다. 헌법 전문이 실현된다면 우리나라는 믿음이 해일처럼 용솟음치는 유토피아가 될 것이다. 정부와 정치권은 모든 노력을 다해 이를 구현해야 할 의무가 있다. 이는 좋은 정부, 착한 정치를 가르는 잣대이기도 하다.

내년 대선에서 대통령이 되겠다는 사람들은 구구하게 비전이니 뭐니 내놓을 필요도 없다. 헌법 전문을 청사진으로 삼으면 된다. 포퓰리즘이나 교묘한 말장난으로 국민에게 아첨할 생각 말고 헌법을 어떻게 이 땅에 꽃피울 것인지 구체적 방안을 제시해야 한다. <김종현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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