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빈의 삶' 살다간 시대의 의인 조비오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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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빈의 삶' 살다간 시대의 의인 조비오 신부
  • 연합뉴스
  • 승인 2016.09.21 10: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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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년 5월 민주화운동 앞장…'광주정신' 실천한 원로
평생을 약자와 함께…나눔과 청빈의 삶 실천

 

▲ 21일 선종한 조비오 신부

"마지막 순간까지 온몸으로 고통을 겪으며 사제의 모습을 보여주셨습니다"

21일 새벽 선종한 조비오(조몬시뇰) 신부를 곁에서 지켰던 소화자매원 이엠마뉴엘 수녀는 안타까운 심정에 말끝을 잇지 못했다.

1980년 5월 광주민주화운동의 현장에서 시민수습대책위원장을 맡아 사회 정의를 위해 앞장섰다.

계엄군의 잔혹한 폭력에 맞서 총을 든 젊은이들을 찾아가 평화 시위를 촉구하며 총기 회수에 나섰지만, 김대중 내란 음모사건의 핵심 동조자로 지목돼 옥고를 치르기도 했다.

국회청문회와 증언집 등을 통해 계엄군의 야만성을 폭로하는 등 불의에는 굴하지 않았지만 약한 자에게는 한없는 사랑을 쏟았던 참된 신부였다.

'민주화의 산증인'으로 알려졌지만 그는 5·18 이전부터 사회 복지운동에 힘을 기울였다.

1968년 사제 서품을 받은 조 신부는 1976년 계림동 본당 신부로 부임하면서 소화자매원과 인연을 맺었다.

조 신부는 갈 곳을 잃은 부랑자와 폐결핵 환자를 돌보다 1985년에는 정신질환자를 위한 복지시설로 만들었으며 1997년에는 지적 장애인들을 위한 생활시설인 소화 천사의 집을 열었다.

2006년 8월 31일 38년간의 사목 생활을 퇴직하고 나서 소화자매원 이사장을 맡아 여생을 봉사활동으로 보냈다.

교구청에서 제공하는 사제관을 거부하고 소화자매원 인근 아파트에서 홀로 살며 청빈의 삶을 이어왔다.

어쩌다 통장에 돈이 들어오면 새로 짓는 성당을 위해 봉헌하거나 어려운 이웃에게 남김없이 베풀어 항상 잔고는 비었다.

여행이나 별다른 취미도 즐기지 않았고 시민사회단체 활동과 봉사활동에는 어김없이 모습을 드러냈다.

지난해까지도 왕성한 활동을 보였던 조 신부는 최근 들어 기력이 떨어지며 자주 넘어졌지만, 끝까지 병원 치료를 거부하며 소화자매원을 돌봤다.

이엠마뉴엘 수녀는 "착한 목자의 모습을 그대로 보여주고 가셨다"며 "너무 가난하게 사셔서 가슴이 아프다. '내가 할 일이 얼마나 많은데 병원에 있어야 하나?'며 마지막까지도 미사를 보시던 모습이 안타까웠다"고 말했다.

조영대 신부는 "공적인 차원에서 엄격한 신부의 모습을 보여주셨다면 사적으로 뵈면 항상 따뜻하게 안아주신 분이셨다"며 "5월 정신이 제대로 평가받지 못한 상황에서 항상 답답하고 속상해하셨지만, 광주가 다시 대동단결해 시대의 횃불로 타오르길 바라셨다"고 회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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