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의 고질, 부정청탁과의 전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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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의 고질, 부정청탁과의 전쟁
  • 연합뉴스
  • 승인 2016.09.26 1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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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종현 논설위원

'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김영란법) 시행으로 답답해하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동창회, 향우회, 종친회 등 온갖 모임에 발바닥이 닳도록 쫓아다니며 뭔가를 도모하려던 사람들이다.

앞으로도 이런 모임에 참석할 수는 있겠으나 공직자는 물론 이들의 주변에 기생하면서 인맥을 통해 사리사욕을 채우려는 사람들의 행동반경은 매우 좁아졌다. 이권이나 자리 청탁이 어려워졌기 때문이다.

김영란법은 빽이나 끈이 없는 사람도 손해 보지 않는 사회를 지향한다. 그래서 우리나라의 역사 이래 고질인 패거리 문화를 겨냥한다. 혈연, 지연, 학연 등으로 얽히고설킨 연고주의는 하염없는 비리와 부패의 온상이었다. 어느 나라건 피붙이에 대한 신뢰나 고향 사랑, 학교 선후배 간 유대는 미풍양속이지만 우리나라는 그 도가 지나쳐 국가 투명성의 암적 존재가 된 지 오래다.

국민은 우리 사회에서 종적이든 횡적이든 끌어들일 수 있는 배경이 없으면 부와 권력의 획득, 계층상승이 어렵다고 본다. 사적 네트워크가 정치와 경제, 예술계, 심지어 학계까지 좌지우지한다. 생판 모르는 사람도 출신 지역이나 학교가 같으면 금세 '형님 아우'로 친해진다. 이 게 국가의 의사결정 회로에 스며들면 권력과 자원의 분배, 인사가 왜곡된다.

우리 사회에서 발생하는 크고 작은 비리의 출발점엔 늘 연고 관계가 숨어 있다. 최근 국민을 경악시킨 법조비리는 학연과 지연을 양분 삼아 독버섯으로 자랐다. 롯데그룹의 전근대적 오너 가문 비리와 경영권 싸움은 빗나간 혈연주의의 막장이다.

우리나라의 끈끈한 연줄문화는 불행했던 역사와 무관하지 않다. 식민지와 6ㆍ25 전쟁, 외환위기 등 삶이 파괴된 비극적이고 힘겨운 시대를 겪으면서 이는 더욱 강고해지고 내면화했다. 내일을 기약할 수 없는 극한 상황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비빌 언덕을 찾아야 했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다. 먹이를 찾아 철 따라 이동하고, 엄혹한 자연의 폭력에 노출됐던 원시사회에서는 무리에서 떨어진다는 건 곧 죽음을 의미했다. 따라서 네트워크를 짜고, 의지하는 것은 본능적이다. 사회의 성립과 발전을 위해서도 서로의 유대는 필수적이다. 인류의 생존 비결이었던 연고 문화를 악(惡)으로 매도하는 것은 너무 야박하다. 당장 입에 풀칠을 걱정해야 했던 험한 시절, 안면에 기반을 둔 온정주의는 한계에 처한 사람들의 구명줄이기도 했다.

하지만 인구가 급증하고 정돈된 세상에서 사회가 공정과 품격을 갖추려면 사람 사이의 관계도 윤리적, 도덕적 토대에 서야 한다. 특히 공적 영역에서의 인적 관계는 누구나 인정하고 승복할 수 있는 규범 위에서 작동해야 한다. 그 게 혼탁해지면 부정과 비리, 차별과 배제가 만연할 수밖에 없다. 능력주의가 설 땅이 없어지는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나쁜 청탁과 반칙이 사회 전반에 퍼져있다고 단정하는 건 과하다. 특권층의 탐욕이 인맥 악용으로 이어지면서 사회 질서를 교란했다고 봐야 한다. 이재열 교수(서울대 사회학)에 따르면 서울대 사회과학대학이 지난 2013년 직종별 인맥 활용 정도를 측정한 결과 전체 응답자 가운데 83%는 인맥의 덕을 한 번도 보지 못했다. 이는 국민 대다수가 맑게 살아가고 있음을 보여준다.

김영란법은 오염된 의리(義理) 문화의 청산을 요구한다. 혈연과 지연, 학연 등의 폐쇄적인 사적 네트워크에서 의리는 각자가 가진 권력이나 이익의 나눔을 의미한다. 의리란 사람으로서 응당 지켜야 할 바른 도리지만, 타락한 의리는 음습한 뒷거래를 조장한다. 김영란법의 성패는 이런 악습을 얼마나 쓸어낼 수 있느냐에 달렸다.

공적인 의사결정 구조 위에 '우리가 남이냐'며 이익을 주고받는 사적 연고가 똬리를 틀고 있는 조직은 발전을 기대할 수 없다. 동향과의 저녁 술자리, 학교 선후배와의 전화 한 통에 국가의 정책이나 인사, 기업체의 경영, 피고인의 형량이나 벌금이 좌우되는 나라에 미래가 있겠는가.

김영란법이 불온한 청탁문화를 획기적으로 개선할 수 있을지는 불투명하다. 선물이나 접대 등은 겉으로 드러나기 때문에 감시받기 쉽다. 하지만 청탁은 노출되기가 어렵다. 요즘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한 청탁이 문제가 되긴 하지만 대부분 말로 직접 전달되기에 증거도 남지 않는다.

결국은 당사자들의 양심에 맡겨야 하지만 마르지 않는 돈과 권력, 정보의 원천인 인맥 속에서 벌어지는 그 '뜨거운 으∼리'를 왜 신고하고 폭로하겠는가. 어느 스폰서 부장검사의 비리를 언론에 터뜨린 친구 같은 '배신자'를 자주 기대하기는 어렵다.

그렇다고 비관에 매몰돼선 안 된다. 한칼에 모든 것이 해결될 수는 없겠지만, 김영란법이 청탁과의 전쟁을 승리로 장식할 수 있도록 국민이 모두 나서야 한다. 이번에 부정청탁을 뿌리 뽑지 못하면 우리 사회의 정화는 영원히 불가능할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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