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3 수험생 부모의 욕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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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3 수험생 부모의 욕심
  • 연합뉴스
  • 승인 2016.09.30 17: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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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재석 논설위원

며칠 전 저녁 모임이 늦어져 자정이 다 된 시간에 귀가하니 아내와 고3 아들이 작은 말다툼을 벌이는 듯했다. 못 들은 척했으나 분위기가 심상찮았다. 수능시험이 다가올수록 아내와 아들은 서로 감정이 날카로워져 충돌하는 일이 잦다. 웬만하면 참견하지 않은 게 낫다 싶어 잠자코 있다. 그런데 이날은 저녁 모임에서 대학 동창의 딸이 소위 명문대 영문과에 들어갔다는 소리를 들었던지라 아들한테 한마디 하고도 싶었다. 잠시 망설이다 꾹 참았다.

다음 날 아침 아내에게 물어보니 고3 2학기 내신성적이 대입 정시모집 전형에 반영되는지를 두고 승강이를 벌였단다. 수험생이 그것도 모를 수 있느냐며 잔뜩 타박을 나에게 늘어놓았다. 묵묵히 들어줬다. 수험생을 둔 여느 가정에서도 비슷한 풍경이 벌어지지 않을까 싶다.

그간 답답한 마음에 아들에게 몇 차례 잔소리를 한 적 있다. 유독 잠이 많은 것 같아 "수험생이 자고 싶은 잠 다 자고 공부는 언제 하느냐' '나중에 후회하지 말고 지금 열심히 해라"와 같은 말을 내뱉고는 금방 후회했다. 시쳇말로 머리가 다 큰 애한테 이런 잔소리가 뭔 소용이 있겠느냐 싶고, 괜히 부자 관계만 나빠질 게 뻔하니 말이다. 우리 세대와 비교해 죽어라 공부만 하는 것 같아 안쓰러워 보이는 때가 한두 번이 아닌데 부모라고 괜한 욕심을 부렸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오은영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가 얼마 전 일간지에 기고한 '수험생과 부모의 마지막 소통 기회'라는 글을 읽었다. 공부를 열심히 하든, 안 하든 아이들은 지금 모두 불안한데 계속 압박하면 더 초조해지고 불안해져 자기능력을 더 발휘하지 못한다고 했다. 고3 아이들에게 지금 필요한 건 채찍질이 아니라 마음을 편하게 해주는 것이라는 조언이었다. 따뜻한 격려가 필요하다는 얘기다. 그다음부터 아들을 보고 화가 나 '욱'할 때마다 이 조언을 되새긴다.

[수능을 100일 앞두고 자녀의 합격을 기원하는 부모들. 2016.8.9]
수능을 100일 앞두고 자녀의 합격을 기원하는 부모들. 2016.8.9

요즘 대부분 가정에서 자녀 입시 지도가 어머니의 몫이겠지만 아버지들도 겉으로 표현을 안 해서 그렇지 다들 관심이 많다는 것을 느낀다. 대학 동창들을 가끔 만나면 한두 해전 대입을 치렀거나 올해 수험생을 둔 친구가 제법 있다. 자연스럽게 이야기는 입시 문제로 흘러가고 자녀를 명문대나 외국 유명 대학에 보낸 친구가 이야기를 주도한다. 그렇지 못한 친구는 주로 얘기를 듣게 된다. 성인군자가 아닌 바에야 자녀가 좋은 대학에 가서 부러움을 사면 부모의 어깨가 우쭐해지는 건 당연한 일이다.

일부 지역에서는 '어머니 세계'에서 자녀의 입시 결과가 그들의 '인생 성적표'라는 말이 있다. 그런데 '아버지 세계'도 별반 다르지 않은 것 같다. 처음에야 어떤 직장을 갖고 얼마나 출세하느냐가 관심이겠지만 자녀가 대학에 갈 때쯤이면 아들, 딸이 어떤 대학에 갔느냐가 그들의 인생을 평가하는 하나의 잣대가 된다. 더욱이 이때는 월급쟁이라면 잘해야 몇 년 더 다니고 은퇴해야 하는 나이다 보니 직업이나 직위가 그리 중요하지 않게 여겨진다.

올해 11월 17일 치르는 수능시험에는 작년보다 4%가 감소한 60만5천988명이 원서를 냈다. 이 많은 수험생이 지금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을 것이다. 수능을 치르고 대학에 가는 것이 인생의 전부가 아니라고들 한다. 나도 남들에게는 그렇게 말한다. 하지만 아들에게는 솔직히 이런 말을 하고 싶다. "살아보니까 그게 전부는 아니더라도 중요하더라. 최선을 다해라. 후회하는 게 인생이라지만 먼저 인생을 살아본 아빠의 깨달음이다."

부모의 욕심에 자녀를 맞추려고 하지 말고 그들의 인생을 존중하라고 한다. 맞는 말이다. 인생은 스스로 선택하고 책임지는 거다. 부모는 옆에서 지켜보며 선택을 도와줄 뿐이다. 그래도 부모라면 욕심이 생기게 마련이다. 선택의 결과가 좋으면 부모에 대한 세상의 평가도 덩달아 좋아지니 왜 그렇지 않겠는가. 수험생 자녀가 부모 마음마저 이해하길 바랄 순 없다. 아직은 시간이 더 필요할 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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