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풍 차바> "가뭄도 견뎌냈는데" 수확 앞두고 쓰러진 들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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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풍 차바> "가뭄도 견뎌냈는데" 수확 앞두고 쓰러진 들녘
  • 연합뉴스
  • 승인 2016.10.06 15: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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쌀값 하락에 태풍 피해까지 엎친 데 덮쳐…"다 키운 자식 잃은 심정"
▲ 수확을 앞둔 벼가 쓰러진 순천시 낙안면 들녘.

 "올여름 지독한 가뭄도 이겨냈는데 기가 막혀서 할 말이 없네요."

제18호 태풍 '차바(CHABA)'가 휩쓸고 간 전남 순천시 낙안면 들녘을 바라보는 농민 김성천(66)씨의 눈가에 시름겨운 주름이 파였다.

3천㎡에 이르는 김씨의 논에는 영글다 만 벼들이 바람에 헝클어진 머리카락처럼 들쭉날쭉 제멋대로 쓰러져 있었다.

김씨는 수확을 보름가량 앞두고 누워버린 벼 이삭에서 사흘 정도 지나면 싹이 피어날 것이라며 한숨을 토해냈다.

예전 같았으면 면사무소에 도움을 청하고 쓰러진 벼를 세워 묶는 작업에 나섰겠지만 품만 더 들어갈 뿐 젖은 상태로 포개진 벼가 짓무르고 썩기는 매한가지라고 김씨는 말했다.

그는 벼를 쓰러진 그대로 햇볕에 말려 기계로 베어내고 쓸만한 나락을 골라낼 예정이라고 덧붙였다.

끈덕진 농심은 태풍이 할퀸 상처에도 흔들리지 않고 수확의 순간을 묵묵히 내다보고 있었다.

김씨가 사는 교촌마을에서는 농가 20여곳이 태풍 '차바'로 비슷한 피해를 봤다.

이들 농가는 대부분 농업재해보험 가입 기준에 못 미치는 소규모 경작을 하고 있다.

▲ 수확을 앞둔 벼가 쓰러진 순천시 낙안면 들녘.

농민들은 지금보다 더 생활비를 아껴 쓰면서 부지런히 품팔이에 나서지 않으면 산 입에 거미줄을 치게 될지도 모른다고 입을 모았다.

전남도는 태풍 '차바'로 도내 1천397㏊ 논에서 벼가 쓰러지거나 물에 잠기는 피해를 본 것으로 6일 잠정 집계했다.

순천 낙안면이 파악한 15㏊는 전남도 통계에 포함되지 않은 만큼 지자체별로 수집한 현황 자료를 최종 합산하면 농경지 피해 면적은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농경지뿐만 아니라 배·감·사과 등 수확기를 맞은 과일의 낙과 피해와 비닐하우스 13동 7천992㎡ 등 시설물 붕괴 사례도 잇따라 접수되고 있다.

전남도는 피해 농가가 도움을 청하면 민·관·군이 함께 복구에 나설 예정이라고 밝혔다.

순천 낙안면 교촌마을 이장 박동식(60)씨는 "다 키워 놓은 자식을 잃은 심정이다"며 "정부와 정치권이 고된 농사일에 쌀값 하락, 하늘이 내린 재해까지 삼중고에 시달리는 농민들을 위해 노력해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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