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7년체제 30년> ②한반도 북핵위기…새 '통일·안보 패러다임' 찾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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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7년체제 30년> ②한반도 북핵위기…새 '통일·안보 패러다임' 찾자
  • 연합뉴스
  • 승인 2016.10.25 2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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北5차 핵실험으로 안보지형 급변…한미일 vs 북중러 신냉전구도 형성
北급변사태로 갑작스런 통일도 대비해야…'플랜A·플랜B' 투트랙 통일전략 필요

 

▲ <87년체제 30년> 한반도 북핵위기…새 '통일.안보 패러다임’ 찾자 1987년 대한항공 858기 폭파 후 체포돼 김포공항에서 압송되는 김현희의 모습은 당시 30여년간 지속된 남북간의 대립과 불신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사건이었다. 이후 베를린장벽이 무너지며 세계는 탈냉전의 시대로 접어들었다. 한반도에도 점진적으로 평화의 기운이 찾아드는 듯했다. 남북 정상이 평양 순안공항에서 두 손을 맞잡았고 이후로도 개성공단과 금강산 관광으로 대표되는 남북교류가 이어졌다. 하지만 한반도의 평화는 쉽게 조각났다. 북한의 핵실험과 연평도 포격이 이어지며 남북관계는 급랭됐다. 오늘도 휴전선 최전방을 지키는 국군 장병들은 비무장지대(DMZ) 수색을 위해 통문을 열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87년 체제' 이후 30년간 한반도의 통일·안보지형은 급변했다. 가장 큰 변수는 북한이 어느덧 사실상 핵무장국 대열에 들어선 점이다.

냉전이 몰고 온 한반도 분단에 더해진 북한의 핵무기 위협은 새로운 통일·안보 패러다임을 우리에게 요구하고 있다.

대한민국의 공식 통일방안인 민족공동체통일방안은 '87년 체제'의 산물이다.

노태우 정부는 정부 출범 첫해인 1988년 7월 7일 탈냉전의 흐름 속에서 '민족자존과 통일번영을 위한 특별선언(7·7 선언)'을 발표한 데 이어 이듬해 9월 여야 합의를 거쳐 '화해·협력→남북연합→통일국가'라는 3단계의 구상이 담긴 '한민족공동체통일방안'을 내놨다.

문민 시대를 연 김영삼 정부가 '한민족공동체통일방안'의 뼈대를 유지하면서 보완한 민족공동체통일방안은 이후 공식 통일방안으로 자리 잡았다

여기에는 압도적인 국력을 바탕으로 남북 교류를 통해 북한을 개혁·개방으로 유도하고 느슨한 연합체 형태의 남북 공동정부를 구성한 뒤 궁극적으로 평화통일을 이룬다는 '낙관적인' 통일관이 깔려 있다.

하지만 이 같은 통일방안은 북한이 핵 개발을 본격화하면서 밑바닥부터 흔들리기 시작한다.

햇볕정책을 전면에 내건 김대중·노무현 정부 당시인 2002년 10월 북한의 우라늄농축프로그램(UEP) 문제가 불거져 2차 북핵 위기가 빚어진 것을 비롯해 2005년 2월 북한의 핵무기 보유선언, 2006년 10월 1차 핵실험 등 고비 때마다 터진 북핵 사태는 남북 화해·협력에 찬물을 끼얹었다.

지금까지 5차례의 핵실험을 통해 북한은 이제 핵무기 실전배치 단계에 접어들었다는 게 국내외의 일치된 견해다.

이에 따라 남북한 화해·협력을 대전제로 하는 기존의 통일방안을 보완하거나 우선순위에서 조정하고, 달라진 한반도 정세에 맞춰 새로운 통일·안보의 틀을 가동해야 하는 상황을 맞고 있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북한이 핵실험을 거듭 강행하고, 이에 맞서 북핵 선제타격론까지 공공연하게 거론되는 위기 국면에 맞게 통일방안과 외교전략을 재정립하고북한의 급변사태 가능성에도 철저히 대비해야 한다고 한반도 전문가들은 지적하고 있다.

또 민족공동체통일방안이 나온 1987년 당시에는 미국과 소련을 중심으로 한 냉전질서가 해제되고 있었던 반면 지금은 미국과 중국을 축으로하는 신냉전 기류가 한반도 주변에 형성되고 있는 것도 새로운 변수다.

윤덕민 국립외교원장은 "동북아 국제정세는 2010~2012년 즈음부터 상황이 변화하는 것 같다"며 "북한이 실패한 국가인 것은 맞지만, 핵을 보유한 국가가 되면서 다른 환경이 됐고, 중국이 비핵화보다 북한 체제 안정을 추구하고, 또 중국의 국력이 커지면서 이 지역에서 미·중 경쟁이 이뤄지는 새로운 전략 환경이 됐다"고 말했다.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배치를 둘러싼 논란은 미국과 중국을 축으로 한 한반도 신냉전 구도를 보여주는 대표적 사례다.

미국과 일본, 한국은 강력한 제재를 통해 북핵을 저지해야 한다는 입장이나, 중국은 북한의 붕괴나 극도의 불안정을 야기할 수 있는 선까지는 용납하지 않겠다는 레드 라인을 고수하고 있다.

북핵을 둘러싼 한반도 긴장이 6.25 전쟁 이후 최고 수위까지 치닫고 있으나, 북한 김정은 정권은 '핵 개발 마이웨이'를 고수하면서 개성공단 폐쇄 등 남북 교류는 완전히 단절됐고, 비상상황 시 가동할 수 있는 '핫 라인'도 부재 상태다. 위기를 흡수할 완충지대가 사라지면서 남북관계의 불가측성은 더욱 높아지고 있다.

특히 김정은 노동당 위원장이 3대 세습기의 권력 취약성을 보완하기 위해 공포정치를 하면서 엘리트층이 대거 탈북하는 등 북한 체제의 불안 요인도 커지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은 최근 김정은 체제의 불안정성과 인권탄압을 거론하면서 북한 주민의 탈북을 유도하는 메시지를 발신하기도 했다.

박 대통령은 지난 13일 청와대에서 열린 민주평화통일자문회 해외자문위원들과 통일 대화에서 "북한 정권은 가혹한 공포정치로 북한 주민의 삶을 지옥으로 몰아넣고 있다"면서 북한 주민을 향해 "모든 길을 열어놓고 맞이할 것"이라고 말해, 정부가 기존 대북정책인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를 포기하고 '레짐 체인지'(regime change·정권 교체)를 대북정책의 목표로 설정한 것 아니냐는 관측을 낳고 있다.

한반도 전문가들은 이와 관련, 새로운 통일전략은 공식적인 통일방안인 '플랜A'를 재정립하는 한편, 갑작스러운 통일에 대비한 비상계획인 '플랜B'도 마련하는 투트랙으로 가야 한다고 조언한다.

고유환 동국대 북한학과 교수는 "지금은 민족공동체통일방안의 3단계 중 첫 단계인 화해·협력 기조마저 무너졌다"면서 "과거와 같이 단계별로 가는 것이 사실상 어려워졌다"고 진단했다.

보수·진보 두 번의 정권교체를 거치면서 갈라진 통일 담론을 다시 모아 제2의 민족공동체통일방안을 마련해야 한다는 것도 고 교수의 주장이다.

북한 급변사태에 대비한 기존의 비상계획을 비공식 통일방안의 하나로 격상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도 만만치 않다.

김정은 체제의 불안정성을 고려할 때 언제든 내부 소요나 대량 탈북 등으로 인한 급변사태가 올 수 있기 때문에 '도둑 같이 찾아올 수 있는' 통일 기회에도 치밀하게 대비해야 한다는 주문이다.

아울러 주변 강대국들의 패권 전략을 꿰뚫어 보면서 우리가 주도적 역할을 하는 게 중요하다. 독일 통일 사례에서 알 수 있듯이 한반도 통일을 위해서는 관계국의 동의가 필수적이다. 동북아 신냉전 상황에 맞게 통일외교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찾아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미국, 중국, 일본, 러시아 등 주변 4강은 한반도의 미래를 놓고 기본적으로 통일보다는 현상 유지를 원한다는 분석도 없지 않다.

중국의 경우 핵개발에 집착하는 북한이 부담스럽기는 하나 한국 주도의 통일이 북한이라는 전략적 '완충지대' 소멸로 주한미군과 국경을 맞댄 채 대치하게 되는 상황을 우려한다. 또 평화통일이 아닌 북한 정권 붕괴에 의한 통일 시나리오는 대량 탈북 등이 자국에 미칠 악영향을 경계한다.

일본도 북한발 안보 위협이 제거되는 데는 찬성하지만 한반도에 '통일 한국'이라는 강국이 등장함으로써 동북아에서 영향력이 저하되는 상황은 내심 경계하는 것으로 보인다.

한승주 전 외교부 장관은 "통일에는 미국의 협조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며 "소극적인 일본을 설득하고 중국의 우려를 안심시킬 수 있는 것은 미국이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한 전 장관은 "우리는 한반도 통일이 중국에도 위협인 북핵 문제를 해소하는 최선의 방법이고, 한중간 경제관계를 확대·발전시키는 길이라는 점을 설득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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