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7년체제 30년> ④'지역할거 정치' 대안 없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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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7년체제 30년> ④'지역할거 정치' 대안 없나
  • 연합뉴스
  • 승인 2016.10.26 18: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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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선거구제 대신 중대선거구제·권역별 비례대표제 도입 논의 활발
정치권의 대승적 '이해관계 조정'이 관건

 

▲ <87년체제 30년> '지역할거 정치' 대안 없나 87년 체제에서 채택된 소선거구제는 1등만 당선되는 승자독식 구조이기 때문에 나머지 후보가 얻은 표는 사표(死票)가 된다. 지금까지 선거에서 지역 기반을 가진 정당의 후보가 대부분 당선돼 왔기 때문에 타(他) 정당 후보의 득표는 아무런 의미를 갖지 못했다. 제20대 국회의원 총선을 앞두고 서울 종로구에서 선거벽보를 붙이는 모습(사진 위), 2002년 6월 지방선거에서 한나라당이 압승한 뒤 선거상황실 모습(아래 왼쪽), 1992년 경남 사천, 진주지역의 정당연설 모습. 사진=연합뉴스

"순천·곡성은 명실상부한 대한민국 동서화합의 성지로 떠올랐다. 포용력과 위대한 판단을 높게 평가해 주시고 지긋지긋한 지역 구도를 무너뜨려 나가는 데 협력해야 한다."(새누리당 이정현 대표, 2014년 7·30 보궐선거 순천·곡성 당선 직후)

"지역주의에 찌든 정당 문화에 염증을 느낀 측면이 있다. 더는 지역주의도, 진영 논리도 거부하고 오직 국민만 바라보는 정치를 하겠다."(더불어민주당 김부겸 의원, 올해 4·13 총선 대구 수성갑 당선 직후)

이 대표는 1988년 국회의원 소선거구제 도입 이래 26년 만에 광주·전남에 새누리당 깃발을 꽂은 여세를 몰아 올해 4·13 총선에서도 승리를 거뒀고, 김 의원 역시 중선거구제로 치러진 1985년 12대 총선 이후 31년 만에 처음으로 정통 야당 후보로서 새누리당의 텃밭인 대구에서 당선됐다.

한국 정치의 망국적 병폐인 지역주의 구도가 균열을 보이는 대표적 사례들이다. 이 뿐 아니다. 4·13 총선에서 민주당을 탈당하고 무소속으로 출마한 홍의락 의원이 대구을에서 이겼고, 새누리당의 아성이었던 부산·경남에서 민주당이 7명이나 되는 국회의원을 배출했다. 새누리당 정운천 의원도 보수정당 후보로는 20년 만에 불모지인 전북에 깃대를 꽂았다.

지역주의라는 길고 긴 터널이 끝을 보이는 것일까?

선거 전문가들은 이 물음에 여전히 회의적이다. 지역 민심도 민심이지만 소선거구제라는 제도 자체가 지역주의를 조장하는 측면이 있기 때문이다.

87년 체제에서 채택된 소선거구제는 1등만 당선되는 승자독식 구조이기 때문에 나머지 후보가 얻은 표는 사표(死票)가 된다. 지금까지 선거에서 지역 기반을 가진 정당의 후보가 대부분 당선돼 왔기 때문에 타(他) 정당 후보의 득표는 아무런 의미를 갖지 못했다. 이를테면 새누리당 후보가 호남에서 20%의 득표를 올려 2등이 됐다고 해도 이 20%의 민심은 정치에 전혀 반영되지 못하고 사장되는 셈이다.

한국정치학회장인 강원택 서울대 교수는 "소선거구제로는 지역주의 극복이 어렵다"면서 "득표한만큼 의석을 얻는 선거구도가 돼야 지역주의가 완화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국회는 이런 상황을 감안, 그동안 정치개혁특위(정치발전특위)를 운영해 선거법 개정을 논의해 왔고 한 선거구에서 2∼5명의 국회의원을 뽑는 중대선거구제 전면 도입이나 도시지역은 중대선거구제를, 지역은 넓으면서도 유권자가 적은 농촌 지역은 소선거구제를 유지하는 도농복합선거구제 등을 대안으로 제시해왔다.

현행 소선거구제에 대해선 역대 대통령들도 대안을 내놨다. 지역구도 타파를 최고 가치로 삼았던 노무현 전 대통령은 취임 직후인 2003년 4월 ▲ 중대선거구제 도입과 도농복합선거구제 검토 ▲ 소선거구제 유지 시 권역별 비례대표제 도입 ▲ 권역별 비례대표 확대 시 지역구 축소보다 의원정수 확대 안을 내놨다.

이명박 전 대통령도 2009년 9월 언론 인터뷰에서 동서화합을 강조하면서 소선거구제+중선거구제, 권역별 비례대표제 도입 등 선거법 개정 필요성을 역설한 바 있다.

하지만 정치권 논의는 각 당의 이해득실이 갈려 번번이 무산됐다.

가령 중대선거구제의 경우 야당은 영남권의 상당수 지역에서 2∼3위 당선자를 낼 수 있지만, 새누리당의 경우 2∼3위 당선자를 낼 가능성이 상대적으로 떨어진다는 것이 정치공학적 설명이다.

권역별 비례대표제도 충분히 검토해볼 만한 대안으로 꼽힌다. 전국을 6개 안팎 권역으로 나눠 인구비율로 비례대표 의석을 배분한 뒤 정당투표 득표율에 따라 정당별로 당선자를 배출하는 방식이다. 상대의 텃밭에서 국회의원을 배출할 수 있지만 47석인 현행 비례대표 의석을 최소 100석까지는 늘려야 그 효과를 볼 수 있다.

비례대표를 늘리기 위해서는 현재 253석인 지역구 수를 줄이거나, 지역구 수를 유지하면서 의원정수를 늘리는 방법이 있다. 지역구 감소는 지역구 의원의 반발이, 의원정수 확대는 여론의 반발이 걸림돌이다.

권역별 비례대표제는 권력구조 개편과도 직간접적으로 연결될 수밖에 없는 사안이다.

김형준 명지대 교수는 "권역별 비례대표제를 하게 되면 현재의 2∼3개 정당 체제에서 다당제로 전환할 가능성이 크다"면서 "이 경우 정당 간 연정 필요성이 자연스럽게 부각되기 때문에 대통령제 하에선 맞지 않는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소선거구제와 중대선거구제, 권역별 비례대표제 등이 모두 장단점이 있는 제도지만 권력구조 개편을 위한 개헌논의 과정에서 그동안 단점이 많이 부각돼온 소선거구제에 대해선 손을 볼 필요가 있다는 게 정치 전문가들의 대체적인 진단이다.

그동안 지역할거 정치의 폐단이 극명하게 드러난 만큼 다른 선거구제로의 전환을 통해 승자독식의 대결정치 구도를 완화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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