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7년체제 30년> ⑥외형성장 한계 봉착…도전·혁신DNA로 체질바꿔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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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7년체제 30년> ⑥외형성장 한계 봉착…도전·혁신DNA로 체질바꿔야
  • 연합뉴스
  • 승인 2016.10.27 2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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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득 3만불 시대 문턱서 주춤…사고의 틀 바꾸는 대수술 절실
무기력 벗고 과감한 도전정신 회복해야…한단계 도약해야 선진국 진입
▲ <87년체제 30년> 외형성장 한계봉착, 체질 바꿔야 이른바 '87년 체제' 출범 이후 지난 30년간 한국 경제는 그야말로 고속성장을 구가했다. 지난 30년간 양적인 성과가 눈부시게 성장했음에도 질적인 지표는 이에 미치지 못한다는 것이 전환기의 요구를 반증한다. 사진은 1980년대의 산업현장과 2016년 현재 가상현실(VR)을 시연하는 모습. 사진=연합뉴스

이른바 '87년 체제' 출범 이후 지난 30년간 한국 경제는 그야말로 고속성장을 구가했다.

1997년 외환위기,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를 겪으며 주춤할 때도 있었지만 놀라운 회복력을 보이며 외형을 10배 넘게 키웠다.

1987년 120조원이던 국내총생산(GDP)은 2015년 1천558조원을 넘어 세계 11위 경제규모를 자랑하게 됐다.

1인당 국민총소득(GNI)도 1987년 285만원에서 2015년 3천93만원(2만7천400달러)으로 10.9배 불어났다. 1인당 GNI 3만달러 시대를 목전에 둔 것이다.

외환위기 당시 고갈될 처지이던 외환보유액은 급격히 늘어 9월말 현재 3천778억달러에 달한다. 1987년 92억달러의 41배가 넘는다.

수출은 1987년 473억달러에서 2015년 5천268억달러로 늘었다. 무역규모도 2015년 9천633억달러로 1987년 883억달러의 10배를 넘었다.

나라살림은 올해 386조원으로 1987년의 25배 규모다. 자동차 등록대수는 1987년 161만대에서 2015년 2천99만대로 급증했다.

◇ 성장 이끈 패스트 팔로어 전략, 대수술 필요한 시기

한국 경제의 87년 체제 30년은 '패스트 팔로어(fast follower·빠른 추격자) 전략'의 성공으로 평가된다.

1970년대 '한강의 기적'으로 도약의 기반을 닦은 한국 기업들은 1980~90년대 세계 최장의 노동시간, 일사불란한 조직문화 등을 무기로 글로벌 기업들을 무섭게 추격했다.

한국 경제를 이끄는 5대 주력산업인 IT·반도체, 자동차, 철강, 석유화학, 조선업종에서는 패스트 팔로어 전략이 착착 먹혀들어 주요 업체의 실적 고공행진을 견인했다. '안 된다는 생각을 버려라'로 시작되는 반도체 10계명은 이같은 성공의 밑거름이자 상징이었다.

하지만, 해외 기업들이 무서워할 정도로 효율적이라던 한국 경제의 성장 전략이 한계에 봉착했다는 지적이 최근 잇따른다.

▲ <87년체제 30년> 외형성장 한계봉착, 체질 바꿔야 이른바 '87년 체제' 출범 이후 지난 30년간 한국 경제는 그야말로 고속성장을 구가했다. 지난 30년간 양적인 성과가 눈부시게 성장했음에도 질적인 지표는 이에 미치지 못한다는 것이 전환기의 요구를 반증한다. 사진은 1987년 서울 명동(왼쪽)과 2016년 5월의 명동거리 모습. 사진=연합뉴스

글로벌 컨설팅 기업 맥킨지의 도미니크 바튼 회장은 지난 7월 대한상의 제주포럼에서 "한국 기업들이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초반에는 잘 적응해 왔지만, 지금은 여러 지표를 보여주는 그래프가 평평해지고 있다"며 '더 빠른 변화'를 주문했다.

한국 기업들의 매출 성장이 글로벌 금융위기 직전과 비교해 12%에서 2%로, EBIDTA(법인세·이자·감가상각비 차감 전 영업이익)는 9%에서 6%로, 부가가치 창출은 21%에서 2%로 줄었다는 것이다.

바튼 회장은 "한국 기업은 더 혁신할 수 있고, GDP가 지금 당장 2% 더 성장할 부분이 있다. 어떤 혁신에 집중할 것인지 고민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세계적 혁신기업 3M에서 샐러리맨 신화를 이룬 신학철 해외사업총괄 부회장은 한국 기업에서 혁신이 잘 이뤄지지 않는 이유를 "패스트 팔로어였기 때문"이라고 진단했다.

그는 코참(KOCHAM·주미한국상의) 연례포럼에서 "지금까지 한국 경제 성장의 90%는 패스트 팔로어에서 나왔다. 이제는 기업을 혁신하는 문화로 바뀌어야 한다"고 주문했다.

최근 맥킨지가 국내 100개 기업의 조직건강도(OHI)를 조사한 결과, 77개사에 빨간불이 들어왔다. 특히 리더십, 조율·통제, 외부지향성에 문제가 많았다.

제조역량만 중시하는 성공방정식은 종말을 고할 때가 됐다는 진단이다. 실행중심 DNA는 시장중심·지식중심 DNA로 옮겨가야 한다는 게 컨설팅 결과다.

◇ 전환기의 질적 도약 위해 '사람·사회 혁신' 전제돼야

지난 30년간 양적인 성과가 눈부시게 성장했음에도 질적인 지표는 이에 미치지 못한다는 것이 전환기의 요구를 반증한다.

세계경제포럼(WEF)의 국가경쟁력 순위는 2007년 11위까지 오른 뒤 지속 하락해 올해 26위에 그쳤다. 노동시장 효율성(77위), 노사간 협력(135위) 등 세부항목은 하위권이다.

유엔 지속가능발전해법네트워크(SDSN)의 행복지수 순위에서도 157개국 중 58위에 머물렀다.

이경묵 서울대학교 경영대학 교수는 "패스트 팔로어 전략은 가는 길이 명확했다. 리더가 구성원의 역량을 한 방향으로 결집해 농업적 근면성으로 열심히 하기만 하면 되는 식이었다"면서 "하지만 퍼스트무버(first mover·시장선도자)가 되려면 그런 방법은 더 이상 유효하지 않다"고 꼬집었다.

유규창 한양대학교 경영대학 교수는 "창조성 중심으로 틀을 바꿔야 한다. 우리 사회의 문제점은 창조성에 수반되는 다양성과 실패를 용인하지 못한다는 점"이라며 "87년 세팅된 체제의 대표적인 예가 연공서열형 인사시스템인데, 이를 공정한, 능력중심의 인사로 개편해야 한다. 끼리끼리 문화를 없애는 의식개혁도 필수적"이라고 지적했다.

미국 캘리포니아주 새너제이에 있는 삼성전자 전략혁신센터(SSIC)에는 사무실 벽이 없다. 물리적 공간을 나누는 벽뿐만 아니라 '의식의 단절 벽'도 허물자는 메시지가 담겨 있다.

손영권 최고전략책임자(CSO)는 "실리콘밸리는 오픈 이노베이션이 이뤄지는 장터이어야 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삼성은 패스트 팔로어에서 퍼스트무버로 전환해가는 과정에서 갤럭시노트7 리콜사태라는 뼈저린 실패를 경험했다.

파업에 휘청거린 현대차도 IMF 체제 이후 18년 만에 마이너스 성장을 경험할 위기에 놓였다.

재계의 한 인사는 "모방 우선주의에서 벗어나 창조와 혁신 마인드로 무장하지 못하면 그동안 글로벌 기업 반열에 올랐더라도 언제든 생존의 위기를 맞을 수 있다는 교훈을 주는 사건이 최근 여러 건 발생했다"고 말했다.

삼성의 혁신을 상징하는 인물 중 한 명인 데이비드 은 GIC(글로벌이노베이션센터) 사장은 "혁신을 위해 가장 중요한 건 역시 사람"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나 우리 사회에 무책임한 떼쓰기와 중상모략, 각종 괴담이 난무하는 찌라시, 갑질 관행, B급 인터넷-SNS 문화가 남아있는 한 이같은 '사람의 혁신'은 요원한 과제일 수밖에 없다는 게 전문가들의 공통된 지적이다.

◇ '이봐, 해봤어?'…무기력 벗고 도전정신 회복하라

전문가들은 우리 사회 전반에 '생각의 틀'을 바꾸는 대수술을 단행할 시기가 도래했다고 조언한다.

특히 젊은 층이 패배감과 무기력증에서 벗어나 도전정신을 회복하는 것이 시급하다고 진단한다.

지난 반세기 동안 한국을 대표하는 경영어록을 뽑아본 결과 고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의 "이봐, 해봤어?"가 압도적 지지를 받아 선정됐다.

'일을 추진하기 어렵다'고 보고하는 직원 앞에서 부정적 사고를 벗어던지라고 '일침'을 가하는 정 회장의 이 말이 던지는 무게가 현재의 한국 사회에 그만큼 무겁게 다가온다는 의미다.

재계의 한 인사는 "젊은이들에게 창업 세대인 이병철, 정주영 회장처럼 겁없이 도전하고 실패를 두려하지 않는 도전정신을 일깨워줘야 할 때"라고 조언했다.

개인과 기업을 불문하고 모든 경제주체가 개인화의 덫에서 빠져나와 공동체 윤리를 우선시해야 한다는 명제도 기업의 혁신, 나아가 사회의 혁신을 위한 필수조건이다. 특히 창조적 리더로의 혁신을 꿈꿔야 한다면 더더욱 그렇다.

경제단체의 한 관계자는 "기업만 바뀐다고 해서 결코 바뀌는 게 아니다"면서 "사회를 지탱하는 윤리와 규범이 법과 관행에 앞서 오래도록 신뢰를 쌓아야만 비로소 변화가 시작될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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