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7년체제 30년> ⑦ 악화되는 양극화…유연·실용적 접근 중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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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7년체제 30년> ⑦ 악화되는 양극화…유연·실용적 접근 중요
  • 연합뉴스
  • 승인 2016.10.28 1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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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활성화 필요…달라진 시대에 맞는 방법 찾아야"
"동반성장·복지강화·공정한 시장질서가 해법"
▲ <87년체제 30년> 악화되는 양극화 1997년 외환위기를 거치면서 근로소득과 자산소득의 편중, 부의 세습, 대기업과 중소기업간, 정규직과 비정규직간 격차 등 경제 분야의 양극화는 심화됐다. 이같은 극단적인 양극화를 완화시키기 위한 해법으로 계층간 부(富)의 선순환이 이뤄질 수 있는 '기부문화' 확산의 필요성을 제기하는 목소리가 갈수록 커지고 있다. 2015년 서울 강남구 구룡마을에서 바라본 대치동의 모습(왼쪽)과 사회복지공동모금회의희망 나눔 캠페인 사랑의 온도탑 제막식. 사진=연합뉴스

경제적 측면에서 '1987년 체제'의 가장 큰 특징은 균형 발전과 적정 분배를 제시한 경제민주화다.

1987년 헌법은 제9장 경제 부문에 119조 제2항으로 경제민주화를 넣었다.

이 조항은 '국가는 균형 있는 국민경제의 성장 및 안정과 적정한 소득의 분배를 유지하고, 시장의 지배와 경제력의 남용을 방지하며, 경제주체간의 조화를 통한 경제의 민주화를 위하여 경제에 관한 규제와 조정을 할 수 있다'고 규정했다.

1987년 이전까지 지속된 압축 성장 과정에서 발생한 경제력의 불균형과 집중을 정부가 해소해야 한다는 당위성을 헌법에 처음 명시한 것이다.

헌법에 경제민주화가 명시된 이후 경제는 물론 교육·노동·사회 정책 등에서 복지와 공정, 평등, 분배 개념이 강화되는 등 일정 정도 성과가 있었다.

하지만 1997년 외환위기를 거치면서 근로소득과 자산소득의 편중, 부의 세습, 대기업과 중소기업간, 정규직과 비정규직간 격차 등 경제 분야의 양극화는 심화됐다.

경제민주화 헌법 도입 30년을 앞둔 지금도 한국 사회의 가장 큰 문제점으로 양극화가 지목되고 있다.

20대 국회 첫 교섭단체 대표 연설에서 여야 주요 3당 대표 모두가 해결이 시급한 가장 큰 문제로 양극화를 꼽았다.

대한민국이라는 공동체의 유지 발전에 필요한 핵심 가치로 양극화 해소가 대두한 것이다.

◇ "상위 10%, 소득 45% 차지"…아시아 최고

양극화는 한국만의 문제는 아니다.

2011년 미국에서 '1%대 99%'라는 구호를 앞세운 월가점령 시위가 발생했을 때 유럽과 아시아에서도 비슷한 시위가 잇따랐다. 대부분 나라가 양극화로 고민하고 있다는 얘기다.

한국 양극화의 심각성은 속도가 빠르다는 데 있다.

고도성장 시기가 끝나가는 시점에서 빠르게 진행되는 양극화는 불균형 분배의 고착화, 빈익빈 부익부로 이어져 사회의 안정성을 뿌리부터 뒤흔들 수 있다.

국회입법조사처가 세계 상위 소득 데이터베이스(The World Top Income Database·WTID)와 국제통화기금(IMF) 자료를 분석한 결과를 보면 2012년 기준 한국의 상위 10% 소득집중도는 44.9%였다. 아시아 주요 국가 중 가장 높고 전 세계 주요국 중 미국(47.8%) 다음이다.

특히 1995년∼2012년 사이에 한국의 상위 10% 소득집중도 상승 폭은 15.7%포인트로 해외 주요국 중 가장 빠르다고 국회입법조사처는 전했다.

정부는 한국의 소득 양극화가 개선되고 있다는 입장이다.

가장 대표적인 소득 불평등 지표인 통계청의 지니계수가 2009년 0.314에서 2015년 0.295로 감소했다.

그러나 통계청의 지니계수에는 한계가 있다. 조사 가구 표본 수가 전체의 0.07%에 불과하고 설문조사 방식이어서 재산소득이 실제와 다를 수 있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지난해 4월 발표한 보고서를 보면 부동산, 주식 등 한국의 순자산 지니계수는 2014년에 0.6014였다.

김낙년 동국대학교 경제학과 교수가 국세청의 2000∼2013년 상속세 자료를 분석한 자료에 따르면 20세 이상 성인 기준으로 자산 상위 10%에 금융자산과 부동산을 포함한 전체 부(富)의 66%가 쏠려 있다고 밝혔다.

이런 양극화는 기업과 개인, 대기업과 중소기업, 정규직과 비정규직에서 심화하고 있다.

◇ 경기침체 장기화로 양극화 가속

▲ <표> 상위 10% 소득집중도 국제비교 ※ 자료 : The World Top Incomes Database(http://g-mond.parisschoolofeconomics.eu/topincomes)

양극화는 1997년 외환위기가 발생한 이후 개방과 경쟁을 앞세운 신자유주의가 확산되면서 심화됐다.

경쟁력이 있는 분야나 계층은 발전했고 그렇지 못한 부분은 쇠퇴했다.

대기업은 수출로 성장했지만 내수 중심인 중소기업의 비중은 줄었다.

정운찬 전 국무총리는 "4대 대기업이 국내총생산(GDP)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10년전만 해도 40% 정도였는데 최근에는 60%로 늘어났다"고 말했다.

대기업 정규직은 노동조합의 강한 교섭력을 바탕으로 높은 임금 수준을 유지하지만 중소기업 비정규직은 임금 수준이 낮고 복지혜택도 많지 않다.

또 경기침체가 장기화하면서 양극화는 가속됐다.

경기 부진에 중견 기업들은 더 처지게 됐고 시장에서 퇴출당했다. 이런 중견 기업들에 다니던 중산층들도 빈곤층으로 추락했다.

◇ "헬조선, 아직은 엄살"…양극화 더 심해지면 현실될수도

양극화가 심화되면 중산층 붕괴와 내수 부진이 발생한다.

중산층 감소는 내수를 위협한다. 안정적인 중산층이 안정적인 소비를 유지한다. 부자 1명이 고급 승용차 1대를 사고 중산층 10명이 소형 자동차 10대를 산다고 가정할 때 고용 등 유발 효과를 비교하면 경제에서 중산층의 의미를 알 수 있다. 성태윤 연세대 교수는 "중산층의 안정적인 소비가 있어야 내수 기업들이 육성될 수 있다"면서 "중산층이 없으면 소비가 불안정해져 기업의 투자가 줄고 고용도 감소해 지속적인 경제성장도 불가능해진다"고 말했다.

신민영 LG경제연구원 경제연구부문 부문장은 "중산층이 무너지면 소비와 내수가 무너져 경제의 지속 가능성이 없어진다"고 지적했다.

또 양극화로 '금수저'와 '흙수저' 등으로 계층이 분화돼 굳어지면 사회가 갈등으로 분열돼 지속하기 힘들어진다. 정치·사회적 불안이 발생한다.

특히 계층 이동의 사다리 붕괴는 청년층의 경제활동 의지와 욕구를 약화시켜 인구 감소 등 사회 문제를 악화시킨다.

한국대학신문의 최근 설문조사에 대학생들은 가장 해결이 시급한 문제로 빈부격차(30.6%)를 1위로 꼽았다. 10년 전인 2006년에는 경제성장(29.1%)이 1위였다. 김낙년 교수는 "젊은이들이 (한국을) '헬조선'이라고 하는데, 객관적 통계로 보면 아직은 엄살로 볼 수 있지만 불평등이 더 커지면 사회적·경제적 활력이 더 떨어진다"며 "이게 (양극화의) 가장 큰 문제"라고 지적했다.

◇ "만병통치약 없다…현실적 목표에 점진적 접근 필요"

전문가들은 양극화 문제 해결을 위해서는 경제 활성화가 우선적으로 필요하다는 데 공감했다. 경제가 살아나야 소득 등의 격차를 줄일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바뀐 시대에 맞는 경제 활성화 방법을 찾아야 한다고 지적했다.

1987년 당시와 같은 고성장 시대는 이미 지나갔고 양극화를 심화시켰던 신자유주의도 쇠락했다는 것이다.

또 이념 대결보다는 합의를 통해 실현 가능한 목표를 설정하고 점진적으로 이를 달성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정운찬 전 총리는 "양극화 해결을 위해서는 우선 경제가 활성화돼야 하고 이를 위해 가계 소비를 늘려야 한다"면서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 최저임금 인상 등을 구체적인 방안으로 제시했다.

정 전 총리는 "트리클다운(낙수효과)이 더는 일어나지 않고 이젠 분수효과가 필요하다"면서 "중소기업을 키우는 동반성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대기업과 부유층의 소득이 늘어나면 중소기업·저소득층으로 흘러간다는 낙수효과가 사라진 만큼 저소득층의 소비를 늘려 경기를 살리는 분수효과를 노려야 한다고 그는 설명했다.

기업을 통한 경기 회복보다는 저소득층에 대한 직접적인 지원을 강조한 것으로 '선(先)성장, 후(後)분배' 패러다임을 버리라는 주문이다.

신민영 부문장도 "경제성장을 위해 노동개혁, 규제완화 같은 제도 변화를 계속 추진해야 한다"면서 "세제지원과 사회복지 등 가난한 개인에게 더 충분한 혜택을 줘야 한다"고 말했다.

김상조 한성대 교수는 "1987년 이후 진영 논리에 매몰돼 진보와 보수, 산업화 세대와 민주화 세대가 타협점을 찾지 못하고 미래를 건설하는 데 충돌해 양극화가 심화된 측면이 있다"고 분석했다.

김 교수는 그러면서 "만병통치약이 있다는 접근 방식을 버려야 하고 실현 가능한 수준을 목표로 제시해 이를 실천하는 점진주의가 필요하다"고 해법을 제시했다. 그는 "공정한 시장질서를 마련해 1차 배분을 하고 여기서 부족한 부분은 사회안전망을 통해 보완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전문가들은 공통적으로 실용적 관점이 요구된다는 점을 강조했다.

어느 하나만 해결하면 양극화를 해소할 수 있다는 조급증을 버리라는 것이다.

정부 재정, 기업과 근로자, 사회 제도 등의 상황에 맞게 복지, 임금, 일자리 창출, 조세 등에서 유연성 있는 실용적 접근이 중요하다는 지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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