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7년체제 30년> ⑧ 길어야 5년짜리 정책…경제 활력 잃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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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7년체제 30년> ⑧ 길어야 5년짜리 정책…경제 활력 잃어
  • 연합뉴스
  • 승인 2016.10.28 1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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툭하면 조직 개편·장관 교체로 중장기 정책 실종
단기처방으로는 해결안되는 구조, 긴 안목으로 해법 찾아야

우리나라의 경제성장률은 1970년대 연평균 9.1%에서 1980년대 9.8%로 상승했다.

1990년대 중반까지도 이같은 고성장을 이어갔다. 이를 바탕으로 1996년 선진국 클럽으로 불리던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도 가입했다.

'한강의 기적'으로 불릴 만큼 고성장을 구가한 배경에는 경제개발 5개년 계획으로 대표되는 정부 주도의 성장 전략이 자리잡고 있다.

과거 1차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이 시작된 1962년부터 5차 계획이 완료된 1986년까지 우리나라의 1인당 국민소득은 87달러에서 3천402달러로 40배 늘어났다. 중장기 미래비전과 이를 뒷받침하는 정부의 추진력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결과라는 평이다.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은 아무것도 없었던 한국 경제에 사회간접자본(SOC)을 확충하고 수출 중심의 중공업을 발전시키는 데 초점을 맞췄다.

그러나 정부 주도의 경제발전 전략은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를 겪으면서 한계에 봉착하게 된다.

저유가와 저금리, 낮은 원화가치 등 이른바 '3저 호황'이 1980년대 끝나고 대기업·제조업 위주의 고속성장 과정에서 불거진 경제적 불균형과 노사갈등, 사회적 신뢰의 부재가 드러나면서 결국 IMF 외환위기를 맞았다.

이후 우리 경제는 눈에 띄게 활력을 잃어갔다. 결국 2010년대 들어서는 2%대 성장이 고착화되는 모습이다.

2006년 1인당 국내총생산(GDP) 2만달러 돌파 이후 10년이 지난 올해도 3만달러 고지 달성에 실패할 것이 확실시되는 점이 이를 상징한다.

국회예산정책처의 중기 경제전망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1인당 GDP는 2018년에야 3만1천744달러로 3만달러대 진입이 가능할 것으로 추정됐다.

◇ 경고음 켜진 한국경제…저출산 고령화 해법 절실

우리 경제 부진의 가장 큰 요인으로는 '저출산 고령화'가 첫 손에 꼽힌다.

저출산 고령화는 경제활동에 참여해야 할 청년층이 줄어들면서 경제에 투입될 생산요소는 줄어드는 반면 구매력이 낮은 노인인구가 늘어나는 것을 뜻한다.

베이비붐 세대가 하나둘 은퇴하면서 이들을 대체할 노동력을 구하지 못한 기업들은 문을 닫게 되고 국민연금이나 건강보험 같은 사회보장 제도 역시 낼 사람은 줄고 받을 사람만 늘어나면서 지속 가능성이 현저히 떨어질 수 밖에 없다. 나라 전체가 노쇠화되는 것이다.

결국 이는 우리 경제의 잠재성장률 하락과 직결된다.

잠재성장률은 자본과 노동 등 생산요소를 최대한 사용해 물가상승을 유발하지 않고 달성할 수 있는 국내총생산(GDP) 증가율을 의미한다. 노동투입이 감소하면 잠재성장률 역시 하락할 수밖에 없다.

우리 경제의 잠재성장률은 2001∼2005년 4.8∼5.2%에서 2006∼2010년 3.8%로 떨어졌고 2011∼2014년엔 3.2∼3.4%로 추정됐다.

민간 경제연구소들은 이미 우리 경제의 잠재성장률이 2%대로 떨어진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

잠재성장률이 연간 4%일 경우 생산성을 2배로 올리는 데 20년이 걸리지만 3%로 떨어지면 70년이 걸린다는 분석도 있다.

잠재성장률이 하락하면 우리보다 앞서 있는 선진국과의 격차는 더 벌어지고 뒤져있는 나라들에게는 추격을 허용하게 된다.

제조업이 한계에 봉착한 가운데 신성장동력으로 삼아야 할 서비스경제가 여전히 취약한 점도 우리 경제의 위기감을 키우고 있다.

실제 제조업 위기는 현재 진행형이다.

올해 3분기(7∼9월) 한국 경제는 전 분기보다 0.7% 성장하는 데 그쳤다. 특히 제조업은 삼성 갤럭시노트7 리콜과 자동차업계 파업으로 7년 6개월 만에 가장 낮은 성장률(-1.0%)을 기록했다.

제조업 부문 취업자는 지난 7월 6만5천명 줄어들면서 2012년 6월(-5만1천명) 이후 49개월만에 감소세로 반전한 데 이어 8월(-7만4천명)과 9월(-7만6천명)을 거치며 감소 폭이 확대되고 있다.

반면 서비스업 육성은 더디게 진행되고 있다.

1992년 50.2%였던 서비스산업 고용 비중은 2015년 70.1%까지 늘어났지만 같은 기간 서비스산업의 부가가치 비중은 53.9%에서 59.7%로 소폭 증가하는 데 그쳤다.

미약하나마 성장하는 서비스업 고용도 음식·숙박업처럼 상대적으로 부가가치가 낮은 업종에 집중돼있다.

서비스산업의 노동생산성도 OECD 국가 중 최하위 수준이다.

노무현 정부 때부터 연례행사처럼 서비스산업 발전전략이 나오고 있지만 일관성이 부족한데다 현실과 동떨어진 백화점식 대책에 그치면서 효과를 보지 못하고 있다.

서비스산업발전기본법은 18대 국회 때인 2011년 12월 처음으로 발의됐지만 의료 민영화 논란 때문에 5년이 다 돼가도록 국회에 발목이 잡혀 있다.

◇ 5년 단임제 아래 단기정책 급급…중장기 정책 부재

전문가들은 중장기 정책이 사라지게 된 가장 큰 원인으로 대통령 5년 단임제로 대표되는 우리나라의 권력구조를 지목하고 있다.

미국처럼 공화당과 민주당, 보수와 진보라는 양당 체제가 굳건하지 못하다 보니 선거 때마다 이합집산이 일어나고 정당과 정권이 확고한 이념보다는 시류에 따라 정책을 펴게 된다는 것이다.

5년 단임제에서는 대부분 집권 1년차에 주요 경제정책의 제도적인 변화와 패러다임을 제시하고 2∼3년차에 본격적인 시행 및 효과가 나타나게 된다.

초기 3년간에 초점이 맞춰지다 보니 장기적인 시계를 가지고 국가 정책을 결정할 수 없어 조급증이 생길 수밖에 없다.

성장률 등 외형과 단기적 지표에 집착하면서 근본적인 활로를 찾는데는 소홀하게 된다.

747과 474로 요약되는 대선공약이 대표적이다.

이명박 정부는 대선 과정에서 경제성장률 7%, 1인당 국민소득 4만달러, 7대 경제강국 달성 등 747 공약을, 박근혜 정부는 잠재성장률 4%, 고용률 70%, 국민소득 4만달러 달성 등 474 공약을 각각 내놨지만 달성에는 실패했다.

잦은 정부조직 개편과 수장의 교체도 정책의 연속성 및 일관성을 어렵게 만드는 요인 중 하나로 꼽힌다.

역대 대통령들은 5년이라는 제한된 임기에 자신의 국정비전을 구현하고, 또 이를 대외적으로 보여주기 위해 정권 초 정부 조직개편을 실시했다.

김영삼 정권은 당선인 시절 1차 조직개편을 통해 상공부와 동력자원부를 통합하는 등 정부 부처를 축소했다.

노무현 정부는 정부 조직의 기능 조정을 실시했고, 이명박 정부는 '10년 만의 정권 교체'를 상징하듯 부총리제를 폐지하고 기획예산처와 재정경제부를 통합하는 등 대대적인 조직개편을 단행했다.

매번 각 정권에 입맛에 맞는 조직 폐지나 통·폐합이 이뤄지다 보니 관료사회는 정권 눈치보기만 심해지고 정작 중요한 장기정책의 추진에는 관심을 두지 않는 복지부동 현상이 심각해졌다.

각 부처 장관의 잦은 교체는 중장기 정책 부재를 부채질하는 요인이다.

이명박 정부에서 임명된 장관 49명의 평균 재임기간은 18.9개월로 2년이 채 안됐고 노무현 정부는 11.4개월에 불과했다.

특히 경제정책을 총괄하는 경제수장들의 단명이 두드러졌는데 한 조사에 따르면 경제기획원이 생긴 1961년 이래 2012년까지 43명의 부총리와 장관의 평균 재임기간은 1년 2개월에 그쳤다.

장관들이 임기가 짧다 보니 예산과 인사, 조직 등 업무 전반에서 소신을 갖고 통솔할 수가 없는 구조인 셈이다.

반면 같은 대통령중심제를 운용하는 미국의 경우 정부 수립 이후 재무장관의 평균 재임기관이 3년에 이른다. 아예 대통령 임기 4년 내내 한 사람이 맡는 경우도 많다.

백웅기 상명대 경제학과 교수는 "우리나라는 정권을 잡았을 때 5년간 가시적인 것을 만들어내야 하다 보니 경제활성화, 경기부양 등 단기정책에 집착할 수밖에 없는 구조"라며 "전체적 구조조정이나 중장기 밑그림에는 소홀할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백 교수는 "중장기 계획은 적어도 10년, 인구문제는 50∼60년을 내다봐야 한다"면서 "국가의 역할, 정부의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관료들이 잘 생각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김재훈 한국개발연구원(KDI) 연구위원은 "경제정책뿐만 아니라 교육정책, 국가재난 및 안전 문제, 북핵 문제 등에서도 우리나라는 그동안 장기적인 시계보다는 굉장히 단기적인 정책을 펼쳐왔다"면서 "과거의 정책이 다른 정권의 것이었다 하더라도 공은 살리되 과는 배제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조장옥 서강대 경제학과 교수는 "예를 들어 구조조정의 경우 미국에서는 한계기업은 시장에서 알아서 떨어져 나간다. 우리가 미국처럼 시장이 발달한 상태라면 장기정책의 중요성이 크지 않을 수 있다"면서 "그러나 우리나라는 정책을 통해서 하는 게 습관화돼 있다. 지금은 장기정책이 절실한 시점"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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