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7년체제 30년> ⑪눈앞에 닥친 '저출산의 그늘' 인구절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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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7년체제 30년> ⑪눈앞에 닥친 '저출산의 그늘' 인구절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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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16.10.30 18: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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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산율 1.24명으로 세계 최저…인구 급감 후유증 속출할 듯
전업주부 2.6명 낳을 때 워킹맘 0.6명 출산…맞벌이 대책 시급
▲ 출생아 수가 급격히 줄어든 모습을 보인 병원의 신생아실. 사진=연합뉴스

국내에서 손꼽히는 인구학자 조영태(44) 서울대 보건대학원 교수. 아내가 직장생활을 병행하며 주경야독한 끝에 서울 인근의 지방사립대 교수가 됐지만 마음 깊이 축하해 주지 못했다. 아내에게 다가올 '회색빛 미래'가 걱정스러웠기 때문이다.

저출산으로 학생 수가 줄면서 등록금 수입이 감소한 사립대학들 가운데 상당수가 도산 위기에 내몰리는 상황에서 교수가 되더라도 안정된 생활을 하며 정년을 맞을 가능성이 희박해졌다는 게 조 교수의 생각이다.

이처럼 인구 절벽의 후유증이 우리 사회 곳곳에서 그 실체를 드러내고 있다. 저출산은 국가 경쟁력을 떨어뜨리고 자녀 세대에 경제적 부담을 떠넘길 수밖에 없는 심각한 현안이다.

불과 한 세대 전만 해도 인구 증가는 고성장의 든든한 지원군이었다. 하지만 이제는 사정이 정반대다. 우리나라 여성이 평생 낳는 아기 숫자는 1.2명으로 감소해 이 추세로 가다가는 2750년에는 한국이라는 나라가 사라질 수도 있다는 전망까지 나온다. 당장 내년부터 생산가능인구가 줄어들면서 경제 성장의 동력을 갉아먹는 원인이 된다.

일각에선 이민을 적극 수용해야 한다는 제안도 나오지만, 혈통을 중시하는 한국인의 특성을 고려할 때 출산율을 먼저 높이는 게 급선무다.

◇ 세계적으로 유례가 없는 저출산 쓰나미

우리나라는 세계에서 유례를 찾아보기 어려울 정도로 인구변화가 극심하다. 출산율은 지난 40년간 계속 감소해 2002년부터 전 세계에서 최하위로 곤두박질쳤다. 출생 아기는 1970년대 한 해 100만 명에서 2002년에 49만 명으로 30년 만에 절반으로 감소했다. 세계에서 한 세대 만에 출생아 수가 반으로 줄어 인구절벽에 직면한 나라는 한국밖에 없다.

2015년 출생통계에 따르면 우리나라 가임여성의 합계출산율은 1.24명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4개국 중 포르투갈과 함께 가장 낮다.

지금의 출산율(1.2명대)이 계속되면 이르면 2018년, 늦어도 2019년이면 한해 출생아 수가 심리적 저지선인 30만 명대로 떨어질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문제는 정부가 현재 추진하는 출산율 제고 정책들이 별 효과를 보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정부는 2006년부터 10여 년간 저출산·고령사회 대책에 무려 150조 원 이상을 투입했지만, '백약이 무효'라는 말이 나올 정도다. 정부는 당장 올해 출산율과 출생아 수가 '사상 최고급'으로 낮아질지 모른다고 걱정한다.

경제, 사회를 구성하는 가장 기본 단위인 인구가 급감하면서 곳곳에서 변화의 바람도 거세다.

먼저 전통적인 '4인 가족' 개념이 사라지고 있다.

통계청에 따르면 우리나라 평균 가구원 수는 1980년 4.5명이었지만, 이후 1990년 3.74명, 2010년 2.6명, 2015년 2.53명 등으로 30여 년 만에 2명대로 떨어졌다.

가구 규모별 추이를 살펴보면, 1990년에는 1인 가구 9.0%, 2인 가구 13.8%, 3인 가구 19.1%, 4인 가구 29.5%, 5인 이상 가구 28.7% 등이었으나 25년이 흐른 2015년에는 1인 가구 27.2%, 2인 가구 26.1%, 3인 가구 21.5%, 4인 가구 18.8%, 5인 이상 가구 6.4% 등으로 바뀌었다. 1990년에 9.0%에 불과했던 나 홀로 가구가 이제는 2∼5인 이상 가구를 제치고 가장 흔한 가구가 된 것이다.

1인 가구가 확산하면서 소비행태도 지각변동을 겪고 있다.

이른바 '혼자서 밥 먹고 혼자서 술을 마신다'는 '혼밥·혼술'이란 신조어가 일상용어로 자리 잡았고, 4인 가구가 주요 고객이던 패밀리 레스토랑은 사양길이다. 가전 시장에서는 1인용 냉장고와 세탁기가 인기상품으로 부상했다. 주택시장에서는 가족 구성원이 줄어들면서 대형 아파트 인기가 시들해지고 소형아파트가 주목받고 있다. 인구감소로 나라를 지킬 병력수급에도 차질이 우려된다. 모병제 주장이 계속 제기되는 이유다.

◇ 워킹맘 지원·낙태 감소 시급…저출산 대책 실효성 높여야

그렇다면 저출산 해법은 무엇일까?

전문가들을 지금처럼 단기처방에 급급하기보다는 저출산 국가로 전락한 근본원인을 분석하고, 출산을 가로막는 걸림돌을 제거해야 한다고 주문한다.

우선 워킹맘들이 일과 가정생활을 양립할 수 있는 환경 조성이 시급하다.

작년 기준 우리나라 맞벌이 여성의 출산 아기 숫자는 0.6명으로 전업주부(2.6명)에 크게 못 미친다. 아기를 낳고 싶어도 못 낳는 맞벌이 여성에 초점을 맞춘 저출산 대책이 필요한 이유다.

유럽연합(EU)은 1970∼80년대 출산율이 급격히 떨어지자 고용불안과 높은 집값, 육아휴직·보육비 등을 출산의 '장애요인'으로 지목했다. 이를 토대로 휴가체계 전면 개편, 공공보육제도 정비, 육아의 사회화 등을 도입해 출산과 양육이 직장생활을 하는 데 걸림돌이 되지 않도록 개선해 큰 효과를 봤다.

저출산에 성공적으로 대응한 스웨덴은 여성 경제활동참가율(2009년 70.2%)과 출산율(2010년 1.94명)이 모두 높다.

홍승아 한국여성정책연구원 가족·평등사회연구실장은 "자녀를 낳고 키우는 일은 개인과 사회의 공동 책임"이라고 전제하면서 "육아휴직을 마친 후에도 일과 가정을 양립할 수 있는 시스템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남성이 적극적으로 육아에 참여해야 하고 기업문화도 변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삼식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저출산고령화대책기획단 단장은 취업여성들이 아이 낳기를 포기하지 않도록 하는 환경 조성이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이 단장은 "자녀를 낳아서 키우는 과정은 매우 길며, 어느 한 구간에서 장애가 있으면 더는 애를 낳기를 꺼리게 된다"면서 "자녀양육비 부담 경감, 돌봄 서비스 확충 등 저출산 대책을 생애주기에 맞춰 체계적으로 시행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와 함께 여성을 취업 전선으로 내모는 어려운 경제 상황을 개선하고 전업주부의 가치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회 분위기가 필요하다는 제안이 나온다.

여성이 직장생활의 부담을 털어내고 가정생활에 전념할 수 있을 때 맞벌이 여성보다 훨씬 더 많은 아기를 낳기 때문이다.

또 매년 17만 건에 달하는 낙태도 큰 문제다. 우리나라의 연간 신생아 수가 40만 명을 조금 넘는 수준임을 고려하면 낙태 숫자만 줄여도 출산율을 크게 높일 수 있다.

일각에서는 저출산 예산의 일부를 낙태방지에 사용하자는 의견도 나온다.

아울러 아동교육을 사회 공동 책임으로 규정하고 개별 가정의 사교육비 부담을 덜어주는 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 '저출산의 그늘' 인구절벽 인구 절벽의 후유증이 우리 사회 곳곳에서 그 실체를 드러내고 있다. 저출산은 국가 경쟁력을 떨어뜨리고 자녀 세대에 경제적 부담을 떠넘길 수밖에 없는 심각한 현안이다. 불과 한 세대 전만 해도 인구 증가는 고성장의 든든한 지원군이었다. 하지만 이제는 사정이 정반대다. 우리나라 여성이 평생 낳는 아기 숫자는 1.2명으로 감소해 이 추세로 가다가는 2750년에는 한국이라는 나라가 사라질 수도 있다는 전망까지 나온다. 사진은 올해 1월1일 신새벽에 태어나 힘차게 우는 신생아의 모습(왼쪽)과 1990년 초 한 종합병원에서 태어난 신생아들이 나란히 누워 있는 모습. 사진=연합뉴스

서울대 보건대학원 조영태 교수는 "정부와 기업은 미래의 시민이자 노동자인 어린이들에 대한 투자에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며 "비용 부담이 발생하지만, 궁극적으로는 경제 성장의 원동력이 된다"고 말했다.

일부 전문가는 현재의 어려운 경제 상황을 고려할 때 미래의 출산율이 획기적으로 높아질 가능성은 작다면서 저출산에 따른 차선책도 준비해야 한다고 권고한다.

저출산으로 빚어질 혼란을 최소화하려면 다운사이징 사회에 맞춰 제도와 문화는 물론, 의식까지도 개선해가며 바뀐 현실에 적응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인구축소로 미래사회의 모습이 어떻게 될지 가늠하고 사회규모에 맞춰 각종 사회·경제·문화·교육제도를 정비하는 등 정부와 기업, 개인이 체질을 바꿔나가면 미래가 아주 절망적이지만은 않을 것이라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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