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순실 쓰나미에 휩쓸린 국가의 백년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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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순실 쓰나미에 휩쓸린 국가의 백년대계
  • 연합뉴스
  • 승인 2016.10.30 19: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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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순실 게이트'라는 홍수 속에 대한민국이 떠내려가고 있다. 의혹은 매일 눈덩이처럼 커지고 있다.

한 자연인이 대통령과 권력을 나누었다. 민주국가에서 권력은 국민에게서 나온다. 위임받은 권력은 결코 사유화될 수 없다. 그 신성한 권력이 엉뚱하게 새고 있었다. 여기에 국민은 분노했다.

통치는 말로 이루어지는데 대통령의 연설이 최순실에게 오염됐다. 인사와 정책, 국가예산과 공적 기금이 그에게 휘둘렸다는 의혹이 도처에서 불거졌다. 국민과 국가에 헌신해야할 고위 관료들이 최순실의 수족이 됐다. 5천만 국민을 이끄는 대통령이 공과 사를 구분하지 못했다. 대통령의 지지율이 10%대로 추락했다.

나라 경제와 안보가 위기 상황이다. 현안은 켜켜이 쌓였다. 아직 정권의 임기는 1년 4개월이나 남았다. 만기친람의 제왕적 대통령제하에서 국가의 모든 핵심 의사 결정은 대통령이 해야 한다. 대통령이 국정 추진력을 잃으면서 국가 운영이 표류하고 있다.

박 대통령은 개헌을 들고나왔을 때 꽃놀이패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성사되든 안 되든 국면전환 효과를 기대할 수 있었다. 개헌의 키를 움켜쥠으로써 레임덕을 최소화할 수 있었다.

하지만 단꿈은 눈 깜짝하는 사이에 깨졌다. 대통령이 '임기 내 개헌' 의지를 밝힌 지 불과 30시간 만에 최순실의 국기 문란에 대해 대국민 사과 성명을 발표해야 했다. 이 순간 청와대발 개헌은 만사휴의가 됐다.

언론의 헤드라인과 여의도에서 뜨겁게 타오르던 개헌론이 바람 빠진 풍선처럼 쪼그라들었다. 야권에서 개헌은 사실상 금기어가 됐다. 정치권에서 개헌의 불씨가 꺼진 것은 아니지만, 재점화는 쉽지 않게 됐다.

개헌에 대한 여론 지지율은 최고 70∼80%에 달했으나 대통령이 최순실 국정개입을 인정하고 사과한 후엔 급락했다. 대통령의 개헌 제안을 의혹을 덮기 위한 방편으로, 진정성이 없다고 본 것이다.

민의를 대표한다는 국회의원 200여명이 찬성하는 개헌론이 이렇게 허망하게 꺼져도 되는 것일까.

최순실 사태를 보면서 역대 대통령들의 불행을 돌이켜보지 않을 수 없다. 노태우 대통령 이후 지금에 이르기까지 대통령의 리더십은 모두 집권 후반기에 최측근의 추문으로 무너졌다.

주기적으로 되풀이되는 비극의 원인은 대통령인가, 무소불위의 대통령제인가. 물론 제도보다는 사람에게 책임이 있다. 권력은 양날의 칼이다. 잘 쓰면 선정(善政)이지만 엉뚱하게 휘두르면 자해가 된다. 그래서 권력의 '관리'가 중요하다.

하지만 권력자는 성인(聖人)이 아니다. 권력의 속성은 자기 증식이다. 끝없이 확대되고 뻗어 나가기를 갈망한다. 강한 권력일수록 견제나 간섭을 배제한다. 그렇게 형성된 권부의 음습한 그늘엔 온갖 야심가와 간신, 사기꾼이 창궐한다.

역대 대통령의 임기 말이 모두 불행했다면 원인을 구조적인 틀에서도 살펴야 한다. 현행 대통령제에 결함이 있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지 않을까. 그렇다면 이를 찾아 제거하거나 보완해야 한다. 권력의 집중이 문제라면 분산하면 될 것이다. 헌법 개정 논의가 중단돼선 안 되는 이유다.

현재 우리나라는 온갖 모순이 내연하고 있다. 정치는 권력 쟁탈을 위한 사생결단식 싸움만 있을 뿐 사회적 갈등 조정의 장이 되지 못한 지 오래다. 임금근로자의 절반 가까운 890만 명의 월급이 200만 원이 안 된다. 빈부 격차에 따른 계층 갈등은 위험수위로 치닫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경제는 성장동력이 고갈돼 비틀거리고 있다. 증기기관의 발명으로 촉발된 산업혁명 이후 다시 한 번 세상이 개벽할 '패러다임'의 전환기를 맞고 있다. 인공지능과 사물인터넷이 주도할 4차 산업혁명이 시작됐는데 우리의 대응은 굼뜨기만 하다.

국본(國本)인 헌법을 바꾼다고 해서 국가가 당면한 모든 부조리를 녹여낼 수는 없다. 그러나 그것이 나라를 한 번 바꿔보자는 몸부림일 수는 있다. 문제가 있는 권력 구조나 국민 기본권, 지방자치, 미구에 닥칠지도 모를 통일시대 등을 반영해 헌법을 미래지향적으로 바꾸는 건 시대의 소명이다.

개헌은 각 정당이 뜻을 함께하고, 대통령이 찬성한다고 해서 성사된다는 보장이 없다. 미래 권력인 유력 대권후보들도 참여해야 한다. 주권자인 국민의 전폭적 지지가 있어야 한다. 이들 조건이 모두 충족돼도 권력 구조를 어떻게 할 것인가 하는 문제는 사람마다 정파마다 이해가 다르므로 합의점을 찾기 어렵다.

그렇더라도 일단 개헌을 공론화해 국민적 합의를 추구하는 노력을 포기할 수는 없다. 청와대는 발을 빼고 국회가 주도해야 한다. 최순실에 흔들려선 안 될 일이다. 국정농단 의혹에 대한 철저한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과는 별개로 국가의 백년대계인 개헌 논의는 치열하게 굴러가야 한다. <김종현 연합뉴스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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