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7년체제 30년> ⑫'양대 노총' 명암…"협력·공존 노사문화 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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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7년체제 30년> ⑫'양대 노총' 명암…"협력·공존 노사문화 필요"
  • 연합뉴스
  • 승인 2016.10.30 21: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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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기업 노동권 키웠지만, 비정규직 등 노동 약자 아픔은 외면
협력적 노사관계 위해 경영진도 노력해야

1987년은 한국 노동운동 역사에서 분수령을 이룬 한 해였다.

1987년 노동자 대투쟁의 산물로 한국노총과 민주노총이 노동계를 대표하는 조직으로 부상했다. 노동 삼권 확보와 실질임금 상승은 양대 노총이 주도해온 투쟁의 결실이라고 할 수 있다.

30년간 이어진 노동운동 패러다임은 많은 성과에도 불구하고 한계도 드러냈다. 대기업 정규직 위주로 편중된 탓이다.

이러한 노사관계는 치열한 글로벌 경쟁과 구조조정 한파를 극복하는 데 취약하다는 지적을 받는다. 노동운동의 울타리가 필요한 비정규직이나 대기업 협력업체 노동자에게 불리하다는 평가도 나온다. 양대 노총이 노동 약자들의 아픔은 외면한 채 산하 노동자들의 기득권 확대에 주력했다는 비판을 받는 이유다.

따라서 노동권은 사측과 공존하는 노사문화를 만들고 비정규직은 물론, 중소기업 노동자들과 상생하려는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주문한다.

◇ '87년 대투쟁'으로 양대 노총 체제 정립…노동권 보장·임금상승 기여

1970∼1980년대 한국은 세계 최빈국에서 벗어나 중진국으로 도약했다. 노동자들의 끝없는 희생과 헌신 등으로 경제가 고속성장을 거듭한 결과다. 노동자들은 열악한 작업환경과 저임금에 시달렸는데도 저항하지 못했다.

단결권·단체교섭권·단체행동권 등 노동 삼권은 법전에만 기록된 '유명무실'한 권리였기 때문이다. 대다수 기업은 노조를 불허하거나 어용 노조를 만들어 근로자들을 통제했다.

장시간 노동과 위험한 작업장 환경은 좀처럼 바뀌지 않다가 1987년 들어 획기적으로 개선됐다. 그해 6월 민주화 항쟁 물결을 타고 노동운동이 활발해졌기 때문이다. 같은 해 7월 노조 불모지였던 현대그룹에서 현대엔진이 노조 결성에 성공했다. 대규모 공장이 밀집한 울산과 마산, 창원 등에서 노조 결성과 파업 열풍이 휘몰아쳤다.

파업 투쟁은 운수, 광산, 사무, 판매, 서비스 등 분야로 확산했다. 1987년 7월부터 9월까지 파업에 참가한 노동자는 200만 명, 파업 건수는 3천300건에 달했다.

노동자 대투쟁 덕분에 1천200여 개 노조가 결성돼 양대 노총 체제로 이어졌다. 군사 정권 시절 어용 노조라는 오명을 얻은 한국노총은 1988년 '제2의 탄생'이라는 기치 아래 권력과 자본으로부터 독립을 선언했다. 1995년에는 산별노조 체제에 기반을 둔 민주노총이 세워졌다.

양대 노총은 파업과 대규모 시위를 무기로 개별 사업장의 민주노조 결성과 노동 삼권 확보, 임금상승 등을 강하게 요구했다. 그 결과 많은 대·중소기업에서 노조가 세워졌고, 노동자 권리 또한 크게 향상됐다. 실질임금 상승은 내수를 키워 경제의 선순환 구조를 형성했다.

▲ '흉물' 되는 통영 문 닫은 조선소

◇ '대기업 정규직' 중심 노동운동 비정규직 포용에 한계

1987년 노동자 대투쟁을 주도한 양대 노총은 막강한 정치적, 사회적 영향력을 얻는 듯했으나 외연 확대에는 실패했다.

1989년 19.8%로 정점을 찍은 노조 조직률은 1995년 13.8%, 2000년 12.0%, 2005년 10.3%로 급락했다. 2010년에는 9.8%로 10% 선마저 무너졌다. 이후 10.2%까지 회복했지만, 노동계가 전체 노동자 10명 중 1명밖에 대변하지 못하는 처지가 됐다.

노동운동의 주 기반인 제조업 쇠퇴와 공장의 국외 이전 등이 주원인으로 꼽힌다. 노동계가 환경 변화를 제대로 수용하지 못하고 기득권에 집착한 점도 문제점으로 지적됐다.

1997년 외환위기 이후 기업 경영이 '수익 지상주의'로 바뀌면서 노동 현장에서도 기간제·사내하도급·파견·용역 등 비정규직 노동자가 많이 늘어났다. 전체 노동자 중 비정규직 비중이 3분의 1에 달할 정도다.

▲ "협력·공존 노사문화 필요" 1987년 노동자 대투쟁의 산물로 한국노총과 민주노총이 노동계를 대표하는 조직으로 부상했다. 이후 30년간 이어진 노동운동 패러다임은 많은 성과에도 불구하고 한계도 드러냈다. 대기업 정규직 위주로 편중된 탓이다. 이러한 노사관계는 치열한 글로벌 경쟁과 구조조정 한파를 극복하는 데 취약하다는 지적을 받는다. 노동운동의 울타리가 필요한 비정규직이나 대기업 협력업체 노동자에게 불리하다는 평가도 나온다. 양대 노총이 노동 약자들의 아픔은 외면한 채 산하 노동자들의 기득권 확대에 주력했다는 비판을 받는 이유다. 사진은 1990년 4월 대형 기중기 골리앗 위로 올라가 농성하는 울산 현대중공업 노조원들(왼쪽)과 2015년 11월 민중총궐기 투쟁대회에 참가자들이 경찰과 충돌빚는 모습(오른쪽). 사진=연합뉴스

기존 노조는 비정규직 노동자를 적극 끌어안으려는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비정규직 노동자의 임금과 처우 개선에 정규직 양보가 필요할 때도 손 놓은 듯했다.

지난해 정규직 노동자의 노조 가입률은 16.9%이지만 비정규직 노동자 가입률은 2.8%로 6분의 1 수준이다. 2007년 5.1%에서 반 토막 수준으로 떨어졌다. 정규직 중심의 노동계에 비정규직이 설 자리는 거의 사라졌다.

상당수 대기업 정규직 노조는 자신들의 임금상승과 복지 향상에만 몰두하는 듯했다. 요구 사항이 관철되지 않으면 대규모 사업장 가동을 중단시키는 강경 카드를 수시로 꺼냈다.

현대차가 1987년 노조 설립 이래 29년 동안 4년만 제외하고 해마다 파업한 것은 대표 사례다. 그 결과 정규직 조합원의 평균 연봉은 9천만 원을 넘어섰지만, 비정규직은 임금 인상은 커녕 일자리보존마저 불안한 형편이다. 갈수록 심화하는 노동계의 양극화에 국민 시선은 싸늘하다.

◇ "노동계, 과거 패러다임 집착…협력·공존 노사문화 필요"

올해는 조선·해운업종의 구조조정과 자동차, IT 등 수출 주력 업종의 업황 악화로 노사 화합이 가장 절실했다.

하지만 대기업 조선 3사 노조의 거센 구조조정 반대, 현대차 조합원의 임금·단체협상 노사 합의안 거부, 공공부문 노조의 성과연봉제 반대 투쟁 등으로 노사 분규가 되레 급증했다.

노사 분규로 인한 사회적 손실을 근로 일수로 측정한 근로손실 일수는 올해 들어 9월까지 119만4천일이다. 최근 10년 동안 가장 높은 수치다. 현대차 파업은 무려 3조 원 이상의 생산 차질을 빚었다.

권혁 부산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올해 노동계 파업이 과연 국민 눈높이에 맞는 파업이었는지 냉철하게 따져봐야 한다"며 "협력업체 경영난이나 사회적 손실을 외면한 대기업 정규직의 파업은 국민 지지를 얻을 수 없을 것"이라고 꼬집었다.

중국 제조업체의 급부상 등 극심한 글로벌 경쟁으로 '일자리 문제'가 심각한 상황에서 노동계가 과거 패러다임에 얽매였다는 비판도 나온다.

배규식 한국노동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성장률이 급락하고 구조조정이 만연한 상황에서 노조원 임금·복지 향상만 외치는 노동운동은 현실에 맞지 않다"며 "이제는 '일자리를 어떻게 유지할 것인가'가 최대 화두인 만큼 노동계는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노사가 머리를 맞대고 경쟁력 향상과 일자리 유지를 고민하는 협력적 노사관계를 정착해야 한다는 조언도 나왔다.

박지순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조선업 몰락에서 알 수 있듯 노사가 함께 경쟁력 향상을 고민하지 않으면 구조조정 한파는 어느 업종, 어느 기업에도 한순간에 불어닥칠 수 있다"며 "생산성 향상과 합리적인 임금체계 마련 등을 통한 글로벌 경쟁력 강화는 이제 노사 모두의 의제이자 책무"라고 강조했다.

최근 방한한 앙헬 구리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사무총장도 "한국 경제를 살리려면 노동개혁을 해야 한다"며 "정규직과 비정규직 간,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 남녀 간 임금 격차가 큰 노동시장의 이중구조를 개선하고 유연성을 강화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당부했다.

선진적 노사관계를 확립하려면 경영진도 구시대적 사고방식을 버리고 노조 협력을 끌어내야 한다는 제언도 나왔다.

권혁 교수는 "노조를 인정하지 않고 '유령 노조'를 만들거나 부당 해고를 일삼는 경영진이 여전히 존재하는 것도 사실"이라며 "협력적 노사관계를 위해서는 경영진이 먼저 회사의 경영 상황을 투명하게 알리고, 근로자 대표와 중요한 사안을 협의하려는 노력을 펼쳐나가야 할 것"이라고 역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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