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현의 풍진세상> 불통과 배신의 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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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현의 풍진세상> 불통과 배신의 정치
  • 연합뉴스
  • 승인 2016.11.07 14: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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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개숙인 박 대통령 박근혜 대통령이 4일 오전 청와대 춘추관 대브리핑실에서 '최순실 국정개입' 의혹 파문 관련 대국민 담화를 마친 뒤 고개숙여 인사를 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권력의 막후 실세였던 최순실이 구속되고 박근혜 대통령이 두 차례 사과했으나 격앙한 민심은 누그러지지 않고 있다. 지난 5일 광화문에는 시민 20만 명(주최 측 추산, 경찰추산 4만5천 명)이 쏟아져나와 촛불을 들었다.

첫 대국민 사과(10월 25일)에 이어 지난 4일 '대국민 담화'에서는 눈물로 용서를 구했으나 국민은 대통령이 상황의 엄중함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한다는 판정을 내렸다.

이 모든 사태를 부른 박 대통령의 비극적 결함은 '불통'이다. 취임 이후 자신을 '문고리 3인방'이 상징하는 협소한 인의 장막에 가둠으로써 지금의 난국을 잉태했다.

청와대 고위 비서관들이나 각료들에게 대통령은 너무나 아득했다. 회의 석상에서나 대면이 가능했으나 수첩에 '말씀'을 받아적느라 얼굴이나 제대로 볼 수 있었을까. 김규현 청와대 외교안보수석은 13개월, 조윤선 문체부 장관은 정무수석 재임 당시 11개월간 한 번도 대통령 독대하지 못했다고 고백했다.

핵심 참모들이 대통령을 만나지 못해서야 어떻게 국정을 돌린다는 건가. 왕조시대에도 이런 일은 없었다. 불통의 장막 뒤에서 최순실과 그를 따르는 비서·관료들이 국정을 농단했다.

과거 박 대통령의 측근이었다가 버림받은 한 인사는 대통령이 몸종형, 돌쇠형 인사만 중용했다고 비판했다. 오직 태양을 바라보는 해바라기만을 선호한다는 것이다.

박 대통령이 '동물의 왕국'을 즐겨본다는 얘기가 있다. 동물은 배신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한다. 하지만 배신은 동물의 속성이다. 사자, 호랑이, 곰도 생존과 권력, 사랑 앞에 배신한다. 인간도 마찬가지다.

대통령은 자서전(2007년 출간)에서 "사람이 사람을 배신하는 일만큼 슬프고 흉한 일은 없다"고 했다. 배신은 가슴 아프지만 거기에 편집증을 갖게 되면 판단이 흐려진다. 간신과 충신을 구분하지 못하는 색맹이 된다. 진짜 충신은 바른말을 하는 신하다. 대가를 바라지 않는다. 아첨꾼은 반드시 충성의 반대급부를 원한다. 성에 차지 않으면 등에 칼을 꽂는다.

박 대통령은 자신이 발탁한 청와대 참모나 관료, 정치인, 공기업 CEO의 배신으로 상처받았다. 사람을 편벽되게 쓴 자업자득이다. 하지만 치명적 배신자는 최순실이다. 대통령이 작은 배신은 보면서도 큰 배신에 눈 감은 것이 국가 위기를 불렀다. 최순실은 대통령과의 친분으로 권력을 사유화하고 관료와 재벌들을 부려 배를 불렸다.

대한민국의 어느 간판 기업은 최순실의 딸에게 10억 원짜리 말을 포함해 승마에 쓰라고 35억 원을 바쳤다. 기업 윤리의 막장이다. 평생을 저축해도 집 한 칸 장만할 수 없는 흙수저 젊은이들은 여기에 절망한다.

직언하는 사람이 없는 권력은 폭주한다. 대통령의 쓸쓸함은 충신 없는 권력자의 뒷모습이다. 역사상 위대한 정치 컨설턴트인 한비자와 마키아벨리는 권력자는 무엇보다 아첨꾼을 경계해야 한다고 누누이 강조했다. 권력은 외부의 적보다 발밑에서 무너진다는 걸 꿰뚫었기 때문이다.

지지율 5%가 보여주듯 민심은 결국 대통령이 국민을 배신했다고 본다. 최순실 사태의 최대 피해자는 국민이다. 이번 파동은 우리나라가 선진국으로 진입하느냐 미끄러지느냐의 갈림길에서 터졌다. 당장은 엄청난 충격이지만 우리가 어떻게 이를 극복하느냐에 따라서는 보약이 될 수도 있다.

미래의 권력자들에게도 이보다 확실한 반면교사는 없을 것이다. 누가 대통령이 되든 성공한 대통령이 되려면 출발 때 측근부터 과감하게 정리하지 않을 수 없게 됐다. 역대 대통령들은 지연과 학연, 정치적 친소를 따져 사람을 쓰다가 말년이 비참했다. 끼리끼리 모이면 사고의 틀도 고만고만이다. 부패와 정실주의에 쉽게 빠질 수 있다. 창의적 아이디어, 혁신적 정책이 나오기 어렵다. 사람을 널리 써야 한다.

중국 천하를 처음으로 통일한 진나라에서 배워야 한다. 사마천의 '사기(史記)' 권위자인 김영수 씨에 의하면 기록이 남아있는 진나라의 재상 25명 가운데 17명이 외국인이었다. 7명은 출신 불명이며, 겨우 1명만 진나라 출신이었다. 진나라 부흥과 통일의 주춧돌을 놓은 상앙과 이사 모두 외국인이었다. 개방적이고 진취적인 인재 등용이 서쪽 변방 진나라를 초강대국으로 만들었다. 손바닥만 나라에서 지역을 따지고 학벌을 가리고 편을 가른 결과가 지금의 대한민국이다.

최순실 사태는 권력의 관리라는 측면에서 우리나라 민주주의의 취약성을 보여준다. 무슨 수를 쓰든 대통령의 도덕적 위기가 국가의 위기가 되는 어이없는 부조리는 막아야 한다. 인사권을 포함한 집중된 권력을 분산하고, 권력의 윤리성과 투명성을 담보할 장치를 만들어야 한다. 청와대 비서실이 대통령의 눈과 귀를 가리는 절벽이 되지 않도록 개방적이고 투명하게 확 바꿔야 한다. 권력과 자본의 유착은 어떤 일이 있어도 있어도 이번에 종지부를 찍어야 한다.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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