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경숙의 시각> '촛불 혁명' 성공 예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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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경숙의 시각> '촛불 혁명' 성공 예감
  • 연합뉴스
  • 승인 2016.12.01 09: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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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광화문 촛불집회 제5차 민중총궐기대회가 열린 26일 오후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많은 시민이 촛불을 밝히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박근혜 대통령이 모든 것을 내려놓았다고 했다. 국회가 정해주면, 그에 따라 대통령직에서 물러나겠다고 밝혔다. 이는 탄핵을 피하기 위한 꼼수라고 의심받고 있지만, 앞으로 정치권과 국민이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결과적으로 하야 선언이 될 수도 있다. 시기, 방식이 문제일 뿐 그의 퇴진은 피할 수 없는 외길이 되고 있다. 그런 점에서 다섯 차례 타오른 '촛불'은 이미 목적의 절반을 이룬 셈이다. 박 대통령이 퇴진하면 촛불집회는 부정부패한 최고 권력자를 시민의 힘으로 몰아낸 무혈 명예혁명으로 역사에 기록된다. 한국 국민은 4·19 의거, 6·29 선언에 이어 다시 한 번 성공적인 시민 저항의 전통을 잇게 된다.

무소불위의 부패 권력을 시민들이 끌어내린 성공 사례는 흔치 않다. 특히 민주주의 역사가 일천하고 독재, 권위주의, 무력을 앞세운 군부 통치의 전통이 깊은 아시아에서는 더 그렇다. 시민, 학생들의 시위로 독재 종식에 성공한 나라는 1998년 수하르토 대통령이 하야한 인도네시아 정도다. 태국은 1992년 많은 피를 흘린 민주화 운동으로 군부 정권을 퇴진시키고 문민정부를 재등장시켰지만, 이후에도 군의 쿠데타와 정치 개입은 재발했다. 미얀마는 1988년 민주화 운동인 '양곤의 봄'으로 수천 명이 사망하고, 2007년 승려들이 주도한 '사프란 혁명'으로 수백 명이 숨졌지만, 실제 민주화가 도래한 것은 지난해 총선 때였다. 중국은 1989년 시민, 학생, 노동자 100만 명 이상이 민주화를 요구하다 수천 명이 숨지거나 다친 천안문 사태가 발생했지만, 민주화 목표 달성은 지금도 요원하다. 홍콩 시민들은 2014년 행정 수반 완전 직선제를 요구하며 79일 동안 민주화 시위를 벌여 '우산 혁명'을 시도했지만, 미완으로 끝났다.

일본과 싱가포르는 정치 문화가 후진적이고, 권위주의적인데도 이에 항거하는 시민운동은 미미하다. 아시아의 대표적 지도자로 꼽혔던 리콴유(李光耀) 전 싱가포르 총리는 아시아에는 가부장적 통치 체제가 적합하다고 대놓고 주장했고, 이를 '아시아적 가치'라고 부르기도 했다. 물론 두 나라는 소득이 높고, 법과 제도가 정착된 데다 사회 투명성이 높아 반독재, 반부패 운동이 일어날 여지가 크지는 않다. 그러나 한국에서 부정한 권력을 비판하기 위한 대규모 촛불집회가 5주째 사고 하나 없이 평화적으로 진행되는 것을 보고 일본 국민은 자국에서는 일어날 수 없는 일이라며 부러워하고 있다.

세계 언론들은 식지 않는 '촛불'의 열기, 축제 분위기에 놀라워하고 있다. 중국 신화통신은 "한국 국민이 축제 형태로 집회의 새 장을 열었다"고 평가했다. 이 통신은 "촛불은 겨울바람이 세차게 몰아쳐도 꺼지지 않을 것"이라며 박 대통령이 퇴진하거나 탄핵당하기 전에는 촛불집회가 끝나지 않을 것이라고 예상하기도 했다. 외신들은 화염병과 물대포가 오가던 한국의 시위가 평화적으로 바뀐 것에도 주목했다.

수십 만의 시민들이 만들어내는 '촛불 파도'는 외신들이 즐겨 보도하는 메뉴가 돼 세계적으로 유명해졌다. '최순실 게이트'는 한국의 수치스럽고 후진적인 국가 운영 방식을 여지없이 드러냈지만 이에 맞닥뜨린 국민은 성숙한 민주 시민 의식을 유감없이 발휘해 보였다. 전근대적인 국정 농단 사태가 수준 이하의 지도자를 뽑은 한국의 낮은 민도에서 비롯됐다는 주장에 동의하지 않는 이유다.

유권자 책임이 없지 않지만 문제는 국민이 아니다. 이는 최고 190만 명이 참여한 촛불집회에서도 확인됐다. 계층, 지역 등의 분열적 구도에 의지해 권력을 얻고 기득권을 유지하려는 정치권, 권력과 결탁한 검찰, 언론, 재벌들에 책임이 있다. 한국이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는 것은 사사로운 이익을 얻기 위해 법과 제도를 농락하는 지도층과 기득권 계층 때문이다. 박 대통령이 물러남으로써 '촛불 혁명'이 성공한다 해도 한국의 미래가 나아질 것이라고 장담할 수 없는 것은 국민의 민주주의 수준이 낮아서가 아니라 사익을 추구하는 정치권, 검찰, 언론, 재벌들이 변하지 않기 때문이다.

2007년 한나라당 대통령 후보 경선 때부터 최 씨 일가의 비리와 이권개입 의혹이 제기됐는데도 한나라당은 집권하기 위해 의혹에 대해 입을 다물었고, 2014년 최 씨 남편이었던 정윤회 씨 국정개입 의혹 문건 유출 사건을 검찰은 제대로 수사하지 않고 덮는 데 급급했다. 언론은 '박비어천가'에 열을 올리다 정권의 힘이 빠지자 비리 폭로에 앞장서고 있다. 재벌과 권력의 유착은 이번 사태에서도 어김없이 확인됐다.

'촛불'이 타오르자 야권은 대권이 가시권에 들어온 양 흥분해 있다. 그러나 촛불 민심은 이른바 보수·진보, 여·야 대결에서 진보 진영이나 야권이 승리했음을 의미하지 않는다. 국민은 정치 성향과 상관없이 박 대통령과 최 씨의 국정 문란 행위, 이권개입을 이구동성으로 규탄하고 있다. 국민이 이번 사태로 야당 지지로 돌아섰다고 믿는다면 오판이다. 야권은 '촛불'에 편승해 대권을 거머쥐려고 할 게 아니다. 작금의 정치, 경제, 안보 위기의 해법을 제시함으로써 지지를 얻고 존재를 입증해야 한다.

'촛불'이 박 대통령을 퇴진시킴으로써 명예혁명으로 자리매김하는 데 성공하더라도 재벌, 언론, 검찰이 만들어내는 우리 사회의 구조적 왜곡까지 태워버릴 수 있을까. 한국 민주주의는 그 지점에 멈춰 서 있다.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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