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현의 풍진세상> 국가개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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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현의 풍진세상> 국가개조
  • 연합뉴스
  • 승인 2016.12.12 08: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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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위기의 대한민국호…한반도를 덮친 구름

박근혜 선장이 내걸었던 '국민행복'을 향해 항해하던 대한민국호가 좌초위기에 직면했다. 선장이 배를 '국민불행'으로 이끌었다. 분노한 선원들이 들고일어나 선장의 직무를 정지시켜 선장실에 유폐했다. 선장의 파면 여부는 선상 재판에 맡겨졌다.

그렇지 않아도 폭풍우 이는 한바다였다. 배 밑창엔 여기저기 금이 가고 구멍이 뚫렸다. 돛은 비바람에 뜯겨나가고 돛대는 삐걱대며 헐겁게 흔들리고 있다. 캄캄한 밤이다.

이럴 땐 우선 선원들이 똘똘 뭉쳐 배 밑바닥 구멍을 때워 침수를 막아야 한다. 돛과 돛대를 수리해 목적지까지 침몰하지 않고 배가 움직일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선원들 사이에서는 식물이 된 선장을 배에서 끌어내야 한다는 강경론도 나오고 있다. 선상규율에 따라 합법적으로 배를 끄는 권한을 받은 선장대행을 선장과 한 편이므로 사퇴시켜야 한다는 의견도 분출한다.

하지만 안전한 항해에 책임이 있는 사람들이 여기에 부화뇌동하는 건 곤란하다. 일단 배를 움직여 폭풍우를 벗어나는 게 중요하다. 같은 배에 탔다고 모두 뜻이 같을 순 없지만, 동지이건 적이건 배가 가라앉지 않아야 목숨을 부지할 수 있는 것 아닌가.

나침판이 상업화하기 전 옛 항해자들은 난바다에서 방향이 가늠되지 않을 때 별자리를 더듬었다. 지금 대한민국은 어디로 가야 하는지 막막하다. 이런 상황에서는 헌법과 법률이 길라잡이다.

우리는 지금 가지 않은 길, 길 없는 길을 헤매고 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원칙을 지키는 일이다. 그래야 예측이 가능하다. 열차가 길을 가로질러야 한다고 정해진 노선을 버리고 궤도를 이탈하면 파멸일 뿐이다. 불편하고 시간이 걸려도 참고 절제해야 한다. 그게 민주주의다. 헌법과 법률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초법적 발상을 하는 건 위험하다.

대한민국은 언뜻 보기엔 형체가 멀쩡해 보이지만 뼈대도 내용도 붕괴하기 직전이다. 강한 지진이나 거대한 해일이 몰려오면 버틸 힘이 없다. 인테리어만 그럴듯하게 꾸미고 페인트칠만 다시 한다고 건물의 내성이 강해지지는 않는다. 삭은 주춧돌과 기둥, 서까래까지 갈아치워야 한다.

1차에서 7차까지 이어진 촛불의 함성에 대한 응답을 국가 리더십의 교체로만 어물쩍 넘어가려 해선 안 된다. 지도자를 바꾼다고 나라가 안고 있는 적폐를 일소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 촛불은 국가의 재건축을 요구한다.

어린 자녀와 함께 전국 곳곳에서 촛불을 든 시민들은 박 대통령의 퇴진과 함께 정의로운 나라를 원했다. 그들은 이게 나라냐고 물었다. 최순실 사태는 이 나라가 서민들이 꿈꾸거나 희망을 품을 수 있는 공동체가 아니라는 걸 보여줬다.

그렇다면 정치권은 국민이 바라는 새로운 세상의 설계도를 제시해야 한다. 내년 대선은 어느 정당 어느 후보의 청사진이 국민의 뜻에 부합하고 실현 가능한지를 겨루는 장이 돼야 한다. 우리가 밟고 있는 이 땅을 더 기름지고, 행복하고, 건강하게 할 수 있는 방책을 내놓고 유권자의 심판을 받아야 한다.

물론 자유민주주의와 자본주의라는 기본 틀을 부정하거나 뒤엎는 것은 상상할 수 없다. 빈부 격차, 승자독식으로 상징되는 신자유주의 폐해는 시정하되 개인의 창발성을 북돋는 건전한 시장경제가 더 깊이 뿌리 내려 지속 가능하도록 하는 방향이어야 한다.

명심해야 할 것은 선동가에 휘둘리지 말아야 한다는 점이다. 정치는 본질적으로 포퓰리즘이고 선동이다. 사탕발림 없이 사람을 끌어모으긴 어렵다. 그래서 난세엔 이룰 수 없는 유토피아를 실현 가능한 것처럼 떠벌리는 선동가가 득세한다. 독일에서 히틀러, 옛 소련에서 스탈린, 제국주의 일본에서 군벌이 이런 방식으로 권력을 잡아 국가와 세계를 파탄으로 이끌었다.

지상에서 천국은 불가능하다. 모든 사람이 다 함께 잘살 수 있다는 말도 거짓이다. 완전한 정의, 완벽한 평등도 이데아일 뿐이다. 1%대 99% 또는 10%대 90%를 최대한 중간치에 가깝게 균형을 잡아보자는 정도도 벅찬 목표다.

이는 구호만으로 될 일이 아니다. 국가시스템을 혁신하려면 헌법과 권력구조부터 손을 대야 한다. 대통령의 제왕적 권한을 줄이고, 권력 핵심부를 개방적이고 투명하게 드러내야 한다는 것은 시대적 명령이다. 정의롭고 국민이 살만한 나라를 만들기 위한 철학과 지향점도 헌법에 좀 더 구체화할 필요가 있다.

이를 토대로 정치와 경제 운영, 산업구조, 분배, 교육 체계를 대수술해야 한다. 물론 6.10 민주화 항쟁의 결과물인 87년 체제를 전면적이고 비가역적으로 대체할 수 있는 수준이어야 한다. 최소한 30년 이상 지탱할 수 있는 내구력이 있어야 한다.

국회의원 200명 이상이 찬성하는 헌법 개정은 촛불의 열기가 뜨거운 이번 기회가 아니면 어렵다. 박 대통령이 최순실을 덮기 위한 꼼수로 들고나오는 바람에 헌법 개정의 순수성이 훼손된 건 통탄할 일이다. 그렇지만 포기해서는 안 될 시급하고 절박한 과제다.

정치권과 지도자들은 이 문제를 다시 공론화해야 한다. 시간이 촉박하다거나 지금은 그럴 때가 아니라는 논리는 비겁하다.

이미 연구는 충분하다. 정치권의 의지 문제다. 다만 대권에서 멀어진 루저들이나 최순실 사태에 책임 있는 새누리당이 개헌을 거론하면 국민은 권력을 나누거나 곁불을 쬐려는 술수로 받아들인다.

야권과 유력한 대권 주자들이 국가의 미래를 걱정하는 애국심으로 개헌 문제를 다뤄야 한다. 지금 당장은 어렵다면 개헌 일정표를 구체적으로 내놓고 대선에 나서길 바란다. 당리당략이나 개인적 욕심으로 새 세상을 향한 국민의 열망을 배반한다면 역사에 죄를 짓게 될 것이다.<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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