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용의 저울달기> 정경유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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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용의 저울달기> 정경유착
  • 연합뉴스
  • 승인 2016.12.13 09: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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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8년 만의 재벌총수 청문회, 정경유착 추궁

최순실 국정농단 의혹 사건의 실체와 관련해 주요 화두는 정경유착이다. 유착(癒着)은 엉겨 붙는다는 뜻이다. 의학 용어로는 서로 분리돼 있어야 할 생물체의 조직 면이 섬유 조직 따위와 연결돼 붙어 버리는 일이라고 풀이돼 있다. 염증 치료 과정이 잘못돼 생긴다고 한다.

정경유착은 부정적인 의미를 담고 있다. 정치권력과 기업인이 금전과 사업상 특혜를 주고받는 은밀한 '뒷거래' 관계를 말한다. 최 씨 사건에 국내 유수의 대기업들이 연루됐다. 미르와 K스포츠 재단에 지원된 돈이 774억 원이다. 막대한 액수에 비춰보면 뭔가 심각한 내막이 깔렸음을 짐작할 수 있다. 대기업이 줄줄이 기부한 돈의 뇌물성 입증은 '최순실 특검' 수사의 핵심 줄기다. 대가 없이 단순히 '거절하기 어려워' 제공한 돈이라는 재계 주장을 그대로 믿기는 어렵다.

우리나라만의 문제는 아닐 듯하다. 1976년 일본 정가를 강타한 '록히드 뇌물 스캔들'은 정경유착 비리의 전형으로 꼽힌다. 당시 미국 록히드는 자사 여객기 발주 과정에서 일본 유력 정치인 등에게 거액의 뇌물을 제공한 사실이 드러났다. 뇌물 비리의 중심에 다나카 가쿠에이 전 총리가 있었다. 요시나가 유스케를 수사주임으로 하는 도쿄지검 특수부의 활약상이 돋보였다. 이례적으로 전직 총리인 다나카를 체포해 법정에 세웠다. 수사 문제를 놓고 자민당 정파 간에 끈질긴 암투가 벌어지기도 하지만 다나카의 뇌물 비리는 유죄 판결을 받았다.

지난해 9월 폴크스바겐 배출가스 조작 사건이 터졌을 때 독일 정계와 자동차 산업계 간의 인력 교류 문제가 비판의 도마 위에 올랐다. 사회민주당 소속 지그마르 가브리엘 부총리는 폴크스바겐 그룹 최고의사결정 기관인 경영감독위원회 위원을 지냈다. 게르하르트 슈뢰더 전 총리도 자동차 업계와 긴밀한 관계에 있었다. 앙겔라 메르켈 총리의 자문관이던 에카르트 클레든은 공직을 떠나 다임러-벤츠의 로비스트가 됐다. 정치권력과 산업계의 유착이 자동차 산업에 대한 규제를 느슨하게 만들어 대형 스캔들을 불러온 게 아니냐는 곱지 않은 시선이 나왔다. 독일의 경우 유착 관계가 비리 사건으로 이어지진 않았다. 유착 사실이 비밀은 아니기 때문인 것 같다. 자동차 업체가 유력 정치인에 거액의 후원금을 제공하는 일도 있었지만, 세간에 공개돼 있다.

▲ 브리핑하는 이규철 특검 대변인

'최순실 국정조사' 1차 청문회가 열린 지난 6일 여의도 국회 본관 245호실. 9대 대기업 집단의 총수가 증인으로 한 번에 등장했다. 1988년 '5공 청문회'를 연상케 했다. TV로 생중계되면서 온종일 큰 관심을 받았다. 지금 우리 재계는 비상이다. 삼성은 그룹 컨트롤타워인 미래전략실을 해체하는 수순에 들어갔다. 삼성을 비롯한 주요 대기업들과 산업은행·기업은행 등 금융기관들이 잇따라 전국경제인연합회 탙퇴를 선언했다. 올해로 창립 55년을 맞은 전경련은 내년 2월 총회에서 존폐를 결론 낼 예정인데 사실상 간판을 내리겠다는 얘기다. 손가락질의 대상이 돼 온 정경유착의 고리를 끊어보자는 시도의 일환이다.

정경유착은 재계의 노력만으로 근절될 리 만무하다. 부패하거나 무능한 정치권력과 그 언저리에 기생하려는 일당에 대한 상시적인 감시와 검증 장치가 대폭 강화될 필요가 있다. 권력 행사의 당위성과 투명성을 확보하기 위한 것이다. 최순실 사태는 자칫 방관했을지도 모를 국내 정치권의 수준과 한계를 새삼 되돌아보게 한다. 비리의 실체를 밝혀내고 단죄하는 작업이 진행되고 있는데 정치권력의 일탈 행위를 밀착 견제하고 차단할 특단의 대책은 없는지 국가적 차원에서 고심해야 할 때가 왔다.

언론 보도와 검찰 수사를 통해 최 씨 사건의 진상이 상당 부분 밝혀지기도 했지만, 의문점은 많이 남았다. 최순실 특검법에 규정된 수사 대상은 총 15개 항목이다. 15번째 항목은 1-14번째 항목에 대한 수사 과정에서 인지된 사건으로 돼 있어 구체적으로 특정돼 있지는 않다. 15번째를 제외하고 14개 항목 가운데 최 씨 일가의 비리 의혹과 관련돼 수사하겠다고 명시된 것은 3~5번, 7번, 12번 등 5개에 이르러 3분의 1가량을 차지한다. 불법적이고 사적인 짬짜미가 횡행하는 유착 관계를 발본색원하는 데 비중을 두고 수사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으로 읽힌다. 현직 대통령을 상대해야 할 박영수 특검팀의 어깨가 무겁다.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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