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병로 칼럼> 촛불 밑바닥의 분노는 '일상 혁명'을 요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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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병로 칼럼> 촛불 밑바닥의 분노는 '일상 혁명'을 요구한다
  • 연합뉴스
  • 승인 2016.12.16 08: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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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이 국회에서 탄핵을 당했는데도 촛불은 수그러들지 않았다. 탄핵 직후인 지난 10일 7차 촛불집회에는 광화문 일대에 집회 측 추산으로 80여만 명이 참여했다. 기온도 뚝 떨어져 참가자가 크게 줄어들 거라는 예상이 일반적이었지만 그렇지 않았다. 좀 더 두고 볼 일이긴 하지만 촛불민심이 어떤 특정 사건을 계기로 순식간에 사그라지는 일은 없을 듯싶다. 이번 촛불집회가 박근혜 대통령 퇴진을 외치면서 시작됐기 때문에 헌법재판소의 판결로 대통령 탄핵이 결정되면 소멸하는 게 자연스러워 보이지만 그것조차도 예단하기는 어렵다. 차기 대통령 선거가 곧 치러지고, 잘못된 과거의 청산이라는 숙제가 여전히 남는 사정도 있다. 여기다가 촛불의 동력은 상상을 뛰어넘을 정도로 강력하다.

어디로부터 어떤 힘이 끝없는 열기를 촛불에 불어넣고 있을까. 대통령이 공범이 돼서 최순실이라는 선출되지 않은 비선 인물이 국정을 전방위로 농단한 데 대한 분노가 밑바탕에 있음은 불문가지다. 검찰 수사결과에서 국정 농단은 겹겹이 확인된다. 지난 11일 검찰이 최순실 게이트와 관련한 수사를 마무리하면서 박근혜 대통령에게 적용한 혐의는 무려 8개다. 대기업에 774억 원대 미르ㆍK스포츠재단 출연금 강요, 현대차에 11억 원대 납품계약 및 최 씨 소유 플레이그라운드 71억 원 광고 발주 압력 등등 혐의가 최순실과 안종범, 정호성의 범죄사실 공소장에 나열되면서 대통령이 피의자로 등장했다. 여기에 조원동 전 경제수석비서관의 CJ그룹 이미경 부회장 퇴진강요미수 혐의에서도, 김종 전 문체부 2차관의 각종 이권 개입에서도 대통령은 공범이다.

이 정도로 끝이 아니다. 검찰이 수사의 결론을 내리지 못하고 특검에 넘긴 박근혜 대통령의 제3자 뇌물수수 의혹이 추가로 규명돼야 한다. 그 중심에는 삼성그룹의 '최순실-정유라 모녀 특혜 지원'이 자리한다. 또 특검이 떠맡은 사안에는 최순실의 딸 정유라의 이화여대 특혜 입학ㆍ학사 농단과 박 대통령의 주사제 대리처방 의혹도 있다. 이중 제3자 뇌물수수 의혹을 규명하는 문제는 대통령의 최종 거취와 직결돼 있다. 특검이 밝혀내야 할 이런 의혹은 그 자체로도 엄중한 내용이지만 촛불 정서에 미치는 영향이 심대하다. 국민의 일상이 송두리째 부정당하는 내용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보통 사람들은 자신이 알고 있는 일상이 '어이없는 비정상'이었다는 사실이 확인될 때 분노한다고 한다. 그리고 이런 분노는 걷잡을 수 없는 힘을 가진다. 이런 현상을 놓고 프랑스의 철학자 앙리 르페브르는 단언한다. "사회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이 더는 자신의 일상성을 지속시키지 못할 때 그때 혁명이 시작된다. 오직 그때뿐이다." 르페브르는 일상의 비정상을 확인하는 게 뭔지 설명한다. 일상 속에 녹아있는 거짓과 위선이 적나라하게 폭로됐을 때가 그 순간이다. 우리의 경우도 최순실 사태로 발각된 일상의 배신은 실망과 환멸이 되어 분노로 변했다.

지금 우리가 피부로 느끼는 환멸은 이렇다. 보통 사람은 아등바등 월급을 쪼개 아이를 학원에 보내고, 밤잠 재우지 않고 대학에 보내기 위해 애쓴다. 그래도 좋은 대학에 갈 확률은 매우 낮다. 하지만 금수저를 입에 물고 태어난 정유라는 몇억짜리 말을 타면서 온갖 부정을 통해 금메달을 목에 걸고, '예약해 놓은 명문 대학'에 유유히 걸어 들어간다. 친구들에게 "돈도 실력이다"라는 말을 튕기면서 말이다. 정유라가 보통 사람의 일상을 비웃게 만든 힘은 평생 변변한 직업 한 번 가져본 적 없는 엄마로부터 나왔다. 어떻게 모았는지 모르는 막대한 돈을 가진 엄마는 세상만사를 휘둘렀다. 대통령과 가까운 정도가 아니라 어둠의 대통령이었다. 이런 '일상의 배신'이란 실체를 목격하고 분노하지 않으면 오히려 이상하다.

아마도 대통령의 중대한 헌법과 법률 위반행위가 확인돼 헌재가 탄핵을 수용할지라도 촛불의 저변에 흐르는 '일상의 배신에 대한 분노'는 쉽게 가라앉지 않을 것이다. 그런 분노의 흐름을 달랠 방법은 단순하다. 우리의 일상을 권력과 돈으로 왜곡하고 뒤집는 원인을 찾아내 깨끗하게 도려내는 방법뿐이다. 촛불의 분노는 대통령의 탄핵과 함께 이런 '일상 혁명'을 원한다.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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