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정욱의 사시사철] 보수, 고민·성찰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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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정욱의 사시사철] 보수, 고민·성찰 필요하다
  • 연합뉴스
  • 승인 2017.03.02 08: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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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법재판소 결정을 앞두고 조기 대선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으나 대선 무대에서 보수진영 후보가 눈에 잘 띄지 않는다. 더불어민주당의 문재인 전 대표, 안희정 충남지사, 이재명 성남시장 등이 대선판을 달구고 있는 것과는 사뭇 다른 양상이다. '4말(末)·5초(初)'(4월 말이나 5월 초) 대선이 실제 이뤄진다고 가정할 경우 대선까지 남은 기간은 불과 2개월 안팎이다. 우리 사회의 중심축을 형성해온 보수진영의 대선 특수 실종은 기이하다면 기이한 현상이다. 보수 무기력증을 넘어서 보수 위기감이 팽배한 이유이기도 하다. 지난해 4.13 총선 이후 수세 국면으로 몰리기 시작한 것이 1년 만에 거의 보수 정당 와해 수준으로 치닫고 있다고 해도 무리가 아니다.

보수 정당의 현 주소는 각종 여론조사에서 여실히 드러난다. 최근 한 조사 결과에 따르면 민주당 대선후보 중 누가 나와도 보수진영 후보를 압도한다. 잠정적으로 보수 후보 중 지지도가 가장 높은 황교안 총리를 대입했을 때 문재인-황교안-안철수(46%-17%-15%), 안희정-안철수-황교안(43%-15%-15%), 이재명-안철수-황교안(37%-19%-17%)의 순으로 나왔다. 황 총리가 아닌 유승민 의원이나 홍준표 경남지사, 김문수 전 경기지사, 남경필 경기지사 등 나머지 보수 후보의 경우 그 격차는 더욱 현격히 벌어진다. 후보별 지지도는 문 전 대표 30.9%, 안 지사 15.8%, 황 총리 10.3%, 이 시장 10.1%, 안철수 전 국민의당 대표 7.8%, 유 의원·홍 지사 각 1.6%, 김 전 지사 0.7%, 남 지사 0.1%였다. 보수진영 후보를 모두 합쳐도 14.3%에 그친다. 문 전 대표는 물론 안 지사 개인 지지도에도 미치지 못한다. 정당 지지도도 마찬가지 추세다. 민주당 46.8%, 자유한국당 10.5%, 국민의당 7.6%, 정의당 4%, 바른정당 3.7%로, 보수 정당인 자유한국당과 바른정당을 합쳐도 지지도는 14.2%에 불과하다. 이런 수치로 보면 보수 정당은 절대 위기다. 실제로 박근혜 정부 출범 당시인 2013년 1월만 해도 일반 국민을 대상으로 한 이념 스펙트럼 조사에서 보수 40%, 진보 24%였던 것이 최근에는 24%, 36%로 역전됐다. 불과 4년 만에 보수의 감소 폭은 16%P, 진보의 증가 폭은 12%P에 달한다. 이번 대선에 나설 수 있는 보수 후보들에 대해 우호적인 여론이 도출되지 않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결과라고 할 수 있다. 새누리당을 뿌리로 하는 보수정당이 자유한국당과 바른정당으로 분당한 것도 보기 드문 상황이다. 한 정치 전문가는 "보수는 부패하고 진보는 분열한다는 게 속설인데, 보수가 이렇게까지 분열하는 것은 처음 본다"고 말했다.

보수 정당 위기의 본질은 일차적으로 내부에 있다. 대충 해도 표가 들어오는 보수 유권자의 두터운 지지가 안일과 나태, 오만을 초래했고, 시대 흐름에 뒤처지는 요인이 됐다는 지적이다. 그 결과가 '패권공천-4.13 총선패배-친박·비박 대립-최순실 국정농단 파문-분당-지리멸렬한 대선'으로 이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보수 가치 재정립도 시급한 과제다. 보수(保守) 의 뜻은 '보호하고 지킨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 전제는 변화를 위한 유연성과 적응 능력이다. 도그마에 빠진 보수는 진정한 보수라고 하기 어렵다. 완고한 극우에 다름 아니다. 보수의 기본 원칙을 견지하되 유연한 적응능력을 갖지 못하면 세상 만물이 그렇듯 도태할 수 밖에 없다. 영국 보수당의 아버지라 불리는 벤저민 디즈레일리는 "오두막이 행복하지 않으면 궁전도 안전하지 않다"고 했다. 국민행복이라는 좌표를 향해 부단히 가야 한다는 뜻이다. 보수당이 180년 동안 강고하게 유지돼 온 것도 이런 기본 원칙을 지키면서 변화가 필요할 때 과감히 변화를 택했기 때문이다. 물론 한국의 여건이 영국 같지는 않다. 무엇보다 경직된 분위기가 강하다. 흑백 논리 사이에 중간지대가 넓지 않고 썩 관용적이지도 않다. 입각, 개각 때마다 순백주의 잣대을 넘지 못하는 후보자들의 추락이 속출하는 것도 이와 무관치 않을 것이다. 정치진영 간에도 타협과 절충의 기술이 싹트지 못하는 바람에 걸핏하면 삿대질이고 싸움질이다. 유연한 보수를 하려다간 사이비로 몰리기 일쑤다.

기술의 발전이나 사회의 다원성을 고려하면 보수-진보의 이분법적 구분 자체가 무의미할 수 있다. 이념의 종언, 역사의 종언이라는 개념이 나온 지도 벌써 수십 년이 지났다. 반기문 전 유엔사무총장은 대선 중도하차 전 '진보적 보수주의자'라고 자처했다가 '따뜻한 아이스 아메리카노', '민주주의를 사랑하는 독재자'라고 조롱받았다. 인명진 창조한국당 비대위원장은 대놓고 "보수에 속합니까, 진보에 속합니까"라고 묻기도 했다. 여기에는 중도 우파, 중도 좌파 등 덜 진한 보수나 진보가 들어설 공간이 거의 없다. 오른쪽이면 오른쪽, 왼쪽이면 왼쪽으로 딱 부러지게 서야 명분과 진정성을 인정받는다. 물론 목청도 돋울 수 있다. 이런 분위기에선 발전적 보수를 위한 변화를 모색하기 쉽잖은 게 사실이다. 즉, 유연한 보수를 위해선 사회가 좀 더 트일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유연한 보수를 한다면서 포퓰리즘에 빠져 허우적대는 것은 최악의 꼴불견이다. 그만큼 보수 개혁을 위해선 보수의 진정한 가치와 시대 정신 등에 대한 깊은 성찰이 전제돼야 한다. 디즈레일리는 "빌어먹을 너의 원칙을 버려라"고 했다. 말은 쉽지만 실천까지의 고민은 클 것이다. 고민은 보수진영 전체의 몫이다.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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