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은주의 시선] 세계여성의 날에 돌아보는 한국 여성의 현주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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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은주의 시선] 세계여성의 날에 돌아보는 한국 여성의 현주소
  • 연합뉴스
  • 승인 2017.03.08 08: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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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8년 3월8일. 미국 여성 섬유노동자 1만5천여명이 뉴욕 러트거스 광장에 모였다. 이들은 열악한 환경의 작업장에서 화재로 불타 숨진 여성 노동자들을 기리며 10시간 노동제와 작업환경 개선, 여성 참정권 등을 요구하는 시위를 벌였다.

전 세계적으로 자본주의 체제가 자리 잡음에 따라 여성들도 노동자로 나서야 하는 상황이 됐다. 그러나 여성 노동자들은 남성 노동자들보다 더 가혹한 조건에 시달렸다. 앞서 1857년 뉴욕에서 방직·직물 공장에서 일하던 여성 노동자들이 저임금과 열악한 노동 환경에 항의해 시위에 나섰으나 경찰에 의해 해산됐다.

1908년 3월8일을 기념해 이듬해 2월28일 미국에서 첫 번째 '전국 여성의 날'이 선포됐다. 이에 영감을 얻은 유럽에서는 1910년 사회주의 제2인터내셔널대회에 앞서 8월 덴마크 코펜하겐에서 열린 제2회 국제사회주의 여성회의에서 독일의 여성운동가 클라라 제트킨과 러시아 출신 여성운동가 알렉산드라 콜론타이의 제안에 따라 참가자들은 세계여성의 날 제정을 결의했다. 이 주장이 받아들여져 1911년 3월19일 독일과 오스트리아를 중심으로 일부 국가에서 세계여성의 날 행사가 처음으로 개최됐다. 이 행사에는 독일과 오스트리아, 스위스, 덴마크 등지에서 약 100만명 이상의 여성이 참가했다. 1913년부터는 3월8일로 변경돼 오늘날까지 많은 국가에서 매년 이날을 기념하고 있다.

특히 1913년부터 세계여성의 날을 기념해온 러시아 여성 노동자들은 러시아력으로 2월에 해당하는 1917년 3월8일 여성 노동자들이 앞장서서 제정 타도를 외치며 페트로그라드(상트페테르부르크) 거리에서 시위를 벌였다. 이것이 러시아 2월 혁명의 시작이다. 이는 뒤이은 10월 혁명에서 여성들의 평등권 신장의 밑거름이 됐다.

이후 1927년 스탈린이 권력을 잡으면서 국제공산주의를 부인함에 따라 노동자들의 국제연대가 약화하고 이에 따라 세계여성의 날도 쇠퇴했다. 그러다가 1960년대 들어 여성운동이 활발해지면서 세계여성의 날은 전 세계 여성 노동자들의 축제와 같은 모습을 갖게 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유엔은 1975년 세계여성의 해를 맞아 3월8일을 세계여성의 날로 공식 지정하고 기념하기 시작했다.

▲ 제32회 한국여성대회(2016년 3월 5일) 서울시청에서 열린 3.8 세계여성의 날 기념 제32회 한국여성대회를 마친 참가자들이 종로구 일본대사관 앞에 있는 소녀상을 향해 행진하고 있다.

한국에서는 일제강점기였던 1920년 나혜석·박인덕 등 자유주의 계열 여성운동가들과 허정숙·정칠성 등 사회주의 계열 여성운동가들이 주도해 각각 세계여성의 날 기념행사를 개최했다. 조선총독부는 행사를 감시하기는 했지만 뚜렷한 명분이 없어 탄압하지는 않았고 행사는 일제강점기 내내 이어졌다.

1925년 3월9일 자 동아일보에는 당시 동아일보 기자였고 후에 북한 정권에서 문화선전상을 지낸 허정숙이 '수가이'라는 필명으로 쓴 '국제부인데이에'라는 기사가 실렸다.

"삼월 팔일은 무산부녀들의 단결적 위력을 나타내인 날로써 세계 각국의 무산부녀들이 국제적으로 기념하는 날이다. 오래인 성상 동안에 여러가지로 미명의 마수제를 가지고 횡포와 우월권을 마음껏 행사하는 부르주아 계급에게 굴욕을 인종하며 살아오던 부녀의 무리가 전제정치와 자본계급에 반항하여 맹렬히 분기한 날이다…"

앞서 3월5일자에는 '국제부인데이기념 강연개최'라는 제목으로 조선여성동우회·경성여자청년동맹·경성여자청년회 등 3개 여성단체 연합주최로 국제무산부인데이 기념강연회가 열린다는 기사가 실려 세계여성의 날에 대한 식민지 조선 여성들의 관심을 촉구했다. 이러한 기사들을 보면 당시 여성운동가들이 세계여성의 날을 중요하게 여기고 적극 활용했음을 알 수 있다.

▲ 국제부인데이에 동아일보 1925. 3. 9.

해방 이후 사회주의적 경향을 가진 세계여성의 날은 공식적으로 열리지 못했고 일부에서만 소규모로 치러지다가 1985년부터 공개적으로 세계여성의 날 기념행사가 개최되기 시작했다. 1985년 한국여성단체연합 주최로 제1회 한국여성대회가 열린 이후 매년 3월8일이면 다양한 여성 관련 행사들이 개최된다. 기념식과 여성축제, 거리행진, 여성문화제 등 다양한 프로그램이 마련되고 여성고용, 여성실업, 여성노동문제 해결 등을 요구하기도 한다.

적지 않은 세월 동안 양성평등을 위한 노력으로 전 세계적으로 여성의 지위가 괄목할만하게 향상됐다고 하나 여전히 갈 길은 멀다.

실제 한국 여성의 현실도 녹록지 않다. 경제활동 참여율은 외국에 비해 낮은 수준이고 안전성도 미흡하다.

최근 회계컨설팅업체 PwC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5개 회원국 중 33개국을 대상으로 조사해 발표한 '여성경제활동 지수 2017' 보고서에 따르면 남녀 간 임금 격차는 한국이 가장 컸다. 남녀 간 임금 격차가 무려 36%였는데, 동일한 일을 하고 남성이 100만 원을 받는다면 여성은 64만 원을 받는다는 뜻이다. 조사 대상 평균은 16%로 한국은 이보다 두 배가 넘는다. 32위인 에스토니아도 29%로, 한국과 7%포인트 차이가 났다. PwC는 한국의 남녀 임금 격차가 해소되려면 100년 이상이 소요될 것으로 전망했다.

PwC가 남녀 간 임금 평등, 여성 구직 용이성, 여성고용 안정성, 정규직 근로자 여성 비율 등을 토대로 산출한 여성경제활동지수는 한국이 100점 만점에 37.3으로 32위를 기록했다. 이는 지난해 31위보다 한 단계 밀린 것이다. 33개국 평균은 58.7이었으며 한국보다 떨어진 국가는 멕시코가 34.8로 유일했다.

지난해 영국의 경제주간지 이코노미스트가 발표한 유리천장지수도 한국은 25.0점으로 OECD 국가 가운데 최하위였다. 직장 내 여성차별의 정도를 측정하는 유리천장지수는 남녀의 경제활동 참여 비율, 고등교육 이수율, 고위직 여성 비율, 남녀 육아휴직 비율 등의 차이를 종합해 산출한다.

경제적 지위뿐 아니라 여성 안전도 불안하다. 최근 여성가족부가 내놓은 전국 성인남녀 7천200명을 대상으로 한 '전국 성폭력 실태조사' 결과를 보면 평생 한 번이라도 신체적 성폭력을 경험한 여성의 비율은 21.3%로 5명에 1명꼴이었다.

세계여성의 날의 상징은 '빵과 장미'이다. 빵은 생계를 위해 일할 권리, 장미는 인간답게 살 권리를 의미한다.

봄의 시작인 3월. 많은 국가에서 세계여성의 날은 봄을 맞아 첫 번째 축제로 치러진다. 100년도 더 전에 더 나은 생존을 위해, 더 인간다운 삶을 위해 궐기했던 여성들. 올해로 109돌을 맞는 세계여성의 날은 이들의 노고를 기억하며 오늘날 여성의 현실을 돌아보고 개선방안을 생각해보는 계기가 되어야 할 것이다. (글로벌코리아센터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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