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고은의 참새방앗간] 헤어스타일 메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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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고은의 참새방앗간] 헤어스타일 메시지
  • 연합뉴스
  • 승인 2017.03.24 09: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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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출'해 '거리'로 나온 앤 공주가 가장 먼저 한 일은 머리카락을 싹둑 자른 것이었다.

우연히 만난 이발사는 그녀의 긴 머리카락을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싹둑 잘라냈고, 예쁜 손님과 자신의 솜씨가 빚어낸 앙상블에 못내 흡족해했다.

이후 또다시 우연히 재회했을 때 이발사는 주머니에 상비한 빗을 꺼내 공주의 앞머리를 살짝 정돈해주기도 했다.

1953년 세상에 나온 영화 '로마의 휴일' 속 이야기다.

▲ 영화 '로마의 휴일'

오드리 헵번이 연기한 앤 공주의 이 같은 헤어스타일은 이후 '헵번스타일'로 불리며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유럽 어디 작은 나라 공주로 설정된 앤 공주는 하루 동안 거리 세상을 신나게 체험했고 자유를 만끽했다. 짧은 쇼트커트의 헤어스타일은 앤 공주의 커다란 변화를 상징했고, 앤 공주와 영화 관객의 사이를 순식간에 바싹 좁힌 장치가 됐다.

성형이 편의점 드나들듯 쉬워진 세상이지만, 사람의 인상을 가장 자연스럽게 변화시키는 것은 헤어스타일이 아닐까 싶다.

여자들이 심경의 변화를 느낄 때 미용실을 찾는다고 하지만, 헤어스타일의 중요성과 의미에서 남녀가 유별하지 않다.

군대 갈 때 삭발하면서 울컥하지 않는 남자 없고, 이제는 남자아이들에게도 '미용'을 위해 파마를 시키는 게 흔한 일이 됐다.

2004년 개봉한 '효자동 이발사'는 1960~70년대 청와대 인근 효자동에서 이발소를 운영하던 순박한 이발사의 이야기다. 그가 어느날 청와대에 불려가 대통령의 머리를 깎는 청와대 이발사가 되면서 벌어지는 일이 격동의 실제 역사와 맞물려 그려졌다.

▲ 영화 '효자동 이발사'

서슬 퍼렇던 시절, 대통령 각하의 '용안'에 면도칼과 가위를 들이대야 하는 주인공 이발사는 진땀 뻘뻘이다.

이 영화 속 대통령은 늘 같은 헤어스타일을 유지했다. 군대식 깔끔한 스타일. 이발사는 그 규격에서 벗어나지 않기 위해 세심하게 신경 써야 했다.

헤어스타일은 자존심이고, 세상과 소통하는 방식이다.

평생 한 헤어스타일을 고수할 수도 있고, 늘 변화무쌍한 모습을 연출할 수도 있다. 어느 쪽이든 머리 모양은 그 사람의 성격과 심경을 대변한다. 그래서 '해석'의 여지가 있다. 드라마에서도 등장인물의 심경과 신상에 변화가 생길 때 가장 먼저 변화하는 게 헤어스타일 아니던가.

요즘 삼성동에 사는 어떤 분의 헤어스타일이 새삼 화제가 되고 있다. 영화 '효자동 이발사'에 나오는 대통령과 연관된 분이다. 청담동의 미용사가 하루도 거르지 않고 매일 아침 '출장'을 다녀간다고 해 '뉴스'다.

이를 두고 다양한 해석이 나온다. 단단한 자존심도 알겠다.

하지만 세상이 뒤집혔다. 그 격변의 원인 제공자가 홀로 조금의 미동도 없는 모습이다. 국민이 입은 상처는 누가 어루만져주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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