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형화재 참사 이제 그만] 비극 되풀이되는 이유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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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형화재 참사 이제 그만] 비극 되풀이되는 이유는
  • 연합뉴스
  • 승인 2017.12.22 2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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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재 취약한 건물구조에 가연성 자재…무사안일이 근원

29명의 목숨을 앗아간 제천 스포츠센터 화재는 대형화재 때마다 원인으로 지적된 문제점이 어김없이 재연됐다는 점에서 우리 사회의 무사안일 병폐가 여전함을 보여준다.

1층 주차장에서 불이 시작돼 삽시간에 건물 전체로 번진 화재 양상은 2015년 의정부 아파트 화재를 떠올리게 한다. 건물 하단부에 외벽을 없애고 기둥만 세워 주차장으로 활용하는 '필로티' 구조가 지닌 맹점이다.

값은 싸지만, 불이 나면 불쏘시개 역할을 하며 유독 가스를 내뿜는 '드라이비트' 공법의 위험성 역시 의정부 아파트 화재 때는 물론 2014년 고양 터미널 화재 때 이미 경험한 바 있다.

빼곡히 주차된 차들로 소방차 진입이 가로막히고, 복잡한 건물 구조로 인해 인명 피해를 키우는 등 그간 끊임없이 제기됐던 문제점도 이번 참사의 주요 원인으로 지적된다.

◇불 삽시간에 번지고 대피로 막는 필로티…드라이비트는 불쏘시개

제천 스포츠센터 화재는 1층 주차장에서 불꽃이 일어나며 시작됐다. 1층 주차장 오토바이에서 불길이 시작된 의정부 화재 사례와 닮은꼴이다.

두 건물 모두 1층을 비워 주차장으로 활용하는 필로티 구조다.

▲ 제천 '화재진압' 21일 오후 충북 제천시 하소동 피트니스센터에서 불이 나 소방대원들이 화재 진압을 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1층 주차장에서 불이 나면 주변에 주차된 차들로 금방 번진다. 의정부 아파트 화재 때도 시작은 오토바이 키박스에서 일어난 불꽃이었지만 주변 차들의 연료통 속 가연성 연료가 폭발하며 불길이 걷잡을 수 없이 퍼졌다.

주차장이 불길에 휩싸이면 마치 건물 아래에서 불을 지피는 꼴이 된다. 이때 건물 외벽 마감재로 사용한 드라이비트는 불길을 위로 퍼지게 하는 불쏘시개 역할을 한다. 제천 스포츠센터와 의정부 화재, 그리고 고양 터미널 화재 모두 외벽에 드라이비트 공법이 사용됐다.

제천 화재의 경우 필로티 구조의 1층 주차장에 세워진 차량에서 불이 시작돼 위층으로 순식간에 번지며 참사로 이어졌다.

▲ 의정부 화재 당시 1층 주차장에서 불길이 퍼지는 모습 [연합뉴스 자료사진]

필로티 구조 건축물은 입구가 주차장과 연결돼 있다. 1층 주차장이 불바다로 변하면 입구는 대피로 역할을 할 수 없어 저층 주민들은 입구로 대피하려다 변을 당하기 쉽다. 결국 고층으로 올라가야 하는데 구조를 위해서는 고가차, 굴절차가 필요하다. 이러한 대형 장비들은 진입로가 좁은 곳 근처로는 들어오기 힘들어 인명구조에 차질을 초래한다.

◇차 빼느라 시간 낭비…아웃 트리거 못 펼치면 고층 구조용 중장비 무용지물

소방차 진입로 확보도 고질적인 문제다.

▲ 불법 주차 차량에 막힌 제천 현장 출동 소방차 지난 21일 충북 제천 스포츠센터 화재 현장에서 소방차의 진입을 가로막고 있던 불법 주차 차량이 옮겨지는 장면이 인근 상가 CCTV에 기록됐다. 사진=연합뉴스

제천 스포츠센터 화재 진압에 출동한 소방 당국은 스포츠센터 주변에 주차된 차량이 많아 화재 현장 접근에 어려움을 겪었다. 소방 장비가 진입하기 위해서는 7∼8m 폭의 도로가 확보돼야 하는데, 길가에 주차된 차량을 치우느라 아까운 시간을 허비해야 했다.

의정부 아파트 화재 때도 비슷한 문제가 발생했다. 건물 사이의 도로 간격이 좁아 소방차가 진입하기 쉽지 않았다. 도시형 생활주택의 경우 가구당 0.5대의 주차 공간만 확보하면 되도록 법 규정이 완화됐고, 이마저도 지켜지지 않아 불법 주차된 차들이 소방차의 진입을 막는 현상이 되풀이되고 있다.

미국 등 선진국에서는 위급 상황 시 화재 진압에 방해되는 차량을 파괴할 수 있지만, 우리나라 소방 당국은 이런 권한이 없다.

의정부 아파트 화재 때 출동한 한 소방 관계자는 "차들이 많아 소방차가 진입할 수 없으면 선착대가 소방 호스를 들고 현장 가까이 뛰어가 물을 뿌리는 방법밖에 없다"며 "소방관이 차주에게 연락을 돌리는데 전화를 안 받는 경우도 많아 난감하다"라고 말했다.

고층 건물에 불이 나면 굴절사다리차 등 중장비가 건물에 붙어서 구조작업을 벌여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차량 지지대 역할을 하는 아웃 트리거를 펼칠 가로·세로 최소 5m의 공간이 확보돼야 하는데, 매번 건물 주변 주차 차량으로 인해 중장비 운용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미로 같은 내부구조에 허둥지둥…인명 수색도 힘들어

건물에 불이 나 연기로 가득 찼는데 대피로를 찾지 못하면 그야말로 '패닉' 상태에 빠지게 된다. 많은 사람이 이용하는 건물의 복잡한 구조와 부족한 대피안내 표지는 대형화재 때 인명 피해를 키우는 원인이다.

지하 1층, 지상 9층의 제천 스포츠센터에서 특히 피해가 집중된 사우나는 내부가 미로처럼 복잡하고 통로가 좁은 것으로 파악됐다.

평소 이 스포츠센터 사우나를 이용했다는 한 시민은 "내부구조가 복잡하고 통로가 좁아 불이 나면 큰일 나겠다는 생각을 했다"고 말했다.

내부 구조가 복잡하면 소방관도 인명 수색에 어려움을 겪는다. 이번 화재에 출동한 소방관들 사이에서도 "미로 같은 내부구조 때문에 인명 수색이 어려웠다"는 말이 나왔다.

올해 초 50여명의 사상자를 낸 동탄신도시 주상복합건물 화재 때도 비슷한 문제점이 지적됐다.

당시 화재 현장은 불과 264㎡ 규모의 점포였지만, 상가 내부가 미로처럼 연결돼 대피가 늦어지고, 복도를 타고 연기가 퍼지며 인명 피해가 커졌다.

소방 관계자는 "건축주들이 공간을 최대한 공간을 활용하기 위해 설계를 하다 보니 내부구조가 복잡해지는데, 대피 안내 표지나 안내 방송 시스템이 취약한 실정에서 불까지 나면 치명적이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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