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고죄 족쇄 걷어낸 경찰의 '미투' 수사 주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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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고죄 족쇄 걷어낸 경찰의 '미투' 수사 주목한다
  • 연합뉴스
  • 승인 2018.03.05 2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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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폭력 피해를 폭로하는 '미투(#MeToo·나도 당했다)' 운동이 한 달을 넘겼지만, 사회 각 분야로 더 거세게 확산하고 있다. 서지현 검사의 검찰 내부 성추행 피해 폭로로 시작된 미투 운동은 문화계, 공연예술계, 종교계, 의료계를 거쳐 대학가로도 번지는 양상을 보인다. 이 과정에서 전 연희단패거리 예술감독인 연극 연출가 이윤택 씨가 오랜 기간 극단 단원들을 성추행하거나 성폭력을 행사한 사실이 드러났고, 노벨 문학상 후보로 거론돼온 시인 고은 씨의 성추행 의혹에 대한 동료 문인의 폭로도 이어졌다. 종교계에서는 천주교 신부가 해외에서 봉사활동을 나온 여성을 성추행한 사실이 드러나 주교단이 사과하기도 했다. 새 학기가 시작된 대학 캠퍼스에서도 교수나 강사 등에 의한 성추행 의혹이 잇따라 폭로되고 있다. 명지전문대 연극영상학과의 경우 남자 교수진이 장기간 상습적으로 여학생들을 추행했고, 특히 이 대학의 한 교수는 연구실로 여학생을 불러 안마를 시키거나 안마를 해준다며 성추행을 하는 등 지성의 전당에서 입에 담기조차 부끄러운 일탈행위를 해왔다고 한다.

고민 끝에 용기를 내 성추행 피해를 폭로하는 여성이 늘면서 관련 사건에 대한 진상조사와 가해자 처벌을 요구하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이윤택 씨 성폭력 사건의 진상규명과 처벌을 요구하는 청와대 국민청원에는 지지를 표명한 사람이 20만 명을 넘겼다. 이 청원은 '한 달 내 20만 명 참여' 조건을 충족해 청와대가 공식 답변을 내놔야 한다. 미투 운동이 거세지면서 검·경의 발걸음도 빨라지고 있다. 검찰 내 성범죄사건을 조사하고 있는 '성추행 사건 진상규명 및 피해회복 조사단'은 부하 직원을 강제추행한 현직 부장 검사를 구속한 데 이어 서지현 검사를 성추행한 의혹을 받는 안태근 전 법무부 검찰국장을 소환 조사했다. 이윤택 씨 성폭력 고소·고발 사건에 대해서도 서울경찰청 성폭력범죄 특별수사대를 중심으로 본격적인 수사가 시작됐다. 경찰은 이 씨에 대한 출국금지를 법무부에 요청했다. 경찰은 명지전문대 연극영상학과 교수들의 성추행 혐의와 김덕진 천주교인권위원회 사무국장의 여성 활동가 추행 혐의도 내사 중이다. 이주민 서울지방경찰청장은 "제기된 국민적 의혹을 해소하고, 피해 사실을 확인하는 차원에서 엄정한 수사가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 경찰은 특히 이윤택 씨의 혐의 가운데 2013년 친고죄 폐지 이전에 발생한 부분도 상습죄 등을 적용해 처벌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고 한다.

문화체육관광부가 공개한 '예술 분야 성폭력 실태 시범조사' 결과에 따르면 응답자의 39.5%가 피해에 대응하지 못했다고 했고, 성폭력 피해자나 목격자 중 신고한 비율도 4.1%에 불과했다. 이런 현실을 고려하면 우리 사회의 성폭력 피해 중 지금까지 드러난 것은 '빙산의 일각'일 개연성이 높다. 따라서 아직 망설이고 있는 피해자들이 피해 사실을 적극적으로 공개할 수 있게 용기를 북돋우고, 피해자 신상을 보호하는 공공 신고창구를 운영하는 방안이 검토돼야 한다. 직장 내 성희롱 사건에 '사실 적시에 따른 명예훼손죄'를 적용하지 말아야 한다는 의견이 나오는 것도 미투 폭로를 더 많이 유도하려는 취지로 볼 수 있다. 이 밖에 성폭력에 대한 공소시효 폐지, 2차 가해자 처벌 강화 등 다양한 제안들이 여성단체 등을 중심으로 쏟아지고 있다. 이 가운데 합리적 의견들은 과감히 수용해 충실히 실행할 만한 제도적 장치를 마련했으면 한다. 문재인 대통령은 "미투 운동의 용기에 호응하는 분명한 변화를 만들어 내겠다"고 약속했다. 정부는 성폭력 피해자의 폭로부터 진상규명과 가해자 처벌까지 단계별로 특화된 대응책을 강구할 필요가 있다. 그런 의미에서 친고죄 폐지 이전에 벌어진 성폭력 피해도 적극적으로 수사하겠다는 경찰 방침은 긍정적으로 평가할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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