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고보니 우린 순종이 아니었네" 인류의 새로운 자화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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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고보니 우린 순종이 아니었네" 인류의 새로운 자화상
  • 연합뉴스
  • 승인 2018.03.24 1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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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모두 2% 네안데르탈인이다'
▲ 우리는 모두 2% 네안데르탈인이다

과학자들도 현생 인류가 오스트랄로피테쿠스에서 호모 하빌리스, 호모 에렉투스, 네안데르탈인, 크로마뇽인 순으로 연속적으로 진화해왔다고 철석같이 믿었던 적이 있었다.

하지만 최근의 연구 결과들은 이런 생각이 인간을 만물의 영장으로, 자연을 신이 인간을 위해 마련한 선물쯤으로 여겼던, 뿌리 깊은 인간 중심적 사고의 산물이었음을 보여준다.

신간 '우리는 모두 2% 네안데르탈인이다'(뿌리와이파리 펴냄)는 소위 뼈 좀 본다는, 내로라하는 국내 인류학자들이 일반 독자들을 대상으로 쓴 고인류학 교양서로 관련 분야들의 최신 연구 결과들을 알기 쉽게 풀어냈다.

"책꽂이에 꽂혀 있는 지난 인류사 책들은 이제 옆으로 치워놓아도 된다"는 추천사가 실감 난다.

저자는 생물인류학을 전공한 우은진 세종대 역사학과 교수와 시카고대에서 인간유전학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은 정충원 독일 막스플랑크연구소 연구원, 조혜란 미국 데이비슨 칼리지 인류학과 교수다.

네안데르탈인이 현생 인류의 조상이 아니라 현생 인류인 호모 사피엔스와 먹이사슬의 패권을 놓고 경쟁하다 멸종한 고인류의 한 갈래라는 건 이제 아는 사람은 아는 상식이 됐다.

책은 여기서 몇 걸음 더 나아가 네안데르탈인이 호모 사피엔스와 경쟁만 한 것이 아니라 한때 뒤섞여 생활하면서 유전자를 공유한 사이였다는 놀랄만한 사실을 알려준다.

브로드 연구소의 연구 결과 인류의 유전자 풀에 대한 네안데르탈인의 기여도는 약 2%로 추정된다. 2%는 작아 보이지만 사실은 불과 5~6세대 전의 조상이 현재의 후손에게 미칠 수 있는 영향과 비슷한 수준이라고 한다.

네안데르탈인에 대한 재평가가 이뤄지기 시작한 것은 1997년 네안데르탈인에 대한 유전자 분석 결과가 나오면서다.

네안데르탈인은 대략 55만년 전쯤 아프리카를 탈출한 고인류의 후손으로 추위가 극심했던 13만년 전부터 3만년 전 사이에 지구상에 존재했던 것으로 추정된다. 현생 인류에 비해 짧고 굵은 다부진 몸매는 혹한의 환경에 적응한 결과다.

반면 현생 인류는 10만 년 전에서 5만년 전 사이 아프리카에서 분화돼 세계 각지로 뻗어 나갔다.

책은 네안데르탈인이 현생 인류 못지않은 지능과 문화를 가졌었고, 인류 진화의 무대에서 결코 시시한 단역이 아니었음을 보여주는 여러 증거를 제시한다.

만약 네안데르탈인이 지금까지 살아남았다면 인간은 일찌감치 다른 지적인 생명체와 공존하는 방법을 익혔을 것이고, 인류 문명은 지금과 다르게 좀 더 겸손한 모습을 했을 듯하다.

운이 나빠 호모 사피엔스가 네안데르탈인과의 경쟁에서 패했다면 인류는 우리가 아니었을 것이란 가정도 가능하다. 이는 현생 인류를 진화의 필연적인 결과로 여기고 싶어하는 목적론적 사고를 반박한다.

네안데르탈인이 한때 현생 인류와 거의 대등하게 존재했었다는 것과 그것을 입증하는 강력한 증거들을 책에서 확인하는 것만으로도, 자기중심적 사고에 빠진 인간에 대한 새로운 존재론적 성찰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하다.

덧붙여, 옛 인류의 화석이 발견된 적인 없는, 그래서 고인류학의 불모지나 다름없는 우리나라의 학자들이 펴낸 저서라는 것도 반갑다.

"지난날의 편견 또는 환상을 걷어내고 보니 우리 모두 2퍼센트의 네안데르탈인이었다. … 그들의 진면모를 파악하는 과정은 진정한 우리의 모습을 찾아가는 과정이 될 것이다. 더불어 이 과정은 세계 곳곳에서 여전히 높은 벽을 쌓으며 살아가는 우리에게 비슷하지만 다른 존재를 동등한 시각에서 바라보게 하는 연습이 되리라 믿는다."

244쪽. 1만5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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