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과 대결'의 시대에서 '평화와 번영'의 시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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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과 대결'의 시대에서 '평화와 번영'의 시대로
  • 연합뉴스
  • 승인 2018.04.27 2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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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4월 27일 판문점에서 역사가 움직였다. '평화, 새로운 시작'의 첫 발걸음을 성큼 내디딘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판문점 정상회담을 통해 적대와 대결로 점철된 분단 질서를 허물고, 공존과 공영을 바탕으로 '평화와 번영의 시대'로 나아가겠다고 선포했다. 남북 정상이 서명하고 공동 발표한 '한반도의 평화와 번영, 통일을 위한 판문점선언'은 남북 관계와 한반도 평화의 새 이정표를 제시한 역사적 문서라고 평가할 만하다.

판문점선언은 '완전한 비핵화'와 '핵 없는 한반도'에 대한 두 정상의 의지를 명문화했다. 또 올해 종전선언을 하고 정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전환하기 위한 남·북·미 3자 또는 남·북·미·중 4자 회담 개최를 적극적으로 추진하겠다고 공표했다. 남북 정상회담 정례화와 적대 행위의 전면 중지도 합의하며 남북 관계도 새로운 궤도에 올리기로 했다. 특히 김 위원장이 세계에 생중계되는 TV 카메라 앞에서 문 대통령과 판문점선언을 공동 발표하는 전례 없는 형식을 취하며 북한이 정상국가임을 국제 외교무대에 연출했다. 남북 정상회담에 이어 한미 정상회담, 북미 정상회담으로 연결되는 연쇄 정상외교는 한반도와 동북아 질서의 대전환을 예고하고 있다.

◇ '완전한 비핵화' 명문화…북미 정상회담 성공 디딤돌

이번 회담의 핵심 의제는 비핵화였고, 정부는 북한의 뚜렷한 비핵화 의지를 명문화하는 것을 회담의 성공 조건으로 삼았다. 판문점선언은 3조4항에 '남과 북은 완전한 비핵화를 통해 핵없는 한반도를 실현한다는 공동의 목표를 확인하였다'고 명시했다. 북미 정상회담을 앞두고 '완전하고 검증가능하며 불가역적인 비핵화'(CVID)를 일관되게 요구하고 있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을 향해 김 위원장은 '완전한 비핵화'라는 입장 표명으로 화답한 것이다. '한반도 비핵화는 선대의 유훈'이라는 기존의 반복된 표현보다는 한 발짝 진전된 언급이다.

북한이 정상 차원에서 비핵화 의지를 문서화한 것은 사상 처음이고, 김 위원장이 이를 내외신 언론 앞에서 공표한 점도 의미가 무겁다. 남북 간 합의 문서에 비핵화 표현이 들어간 것은 1992년 발효된 '한반도 비핵화 공동선언'이 있지만, 남북 총리가 서명한 선언이었다. 내용 면에서도 1990년대와 달리 여섯 차례의 핵 실험과 대륙간탄도미사일(ICBM)급 시험발사 등으로 핵무기 역량이 고도화한 시점에서 김 위원장이 '완전한 비핵화'를 문서로 약속한 것은 비핵화 의지의 진정성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남북 정상이 냉전 시대의 산물인 북핵과 정전협정 문제를 정면으로 논의했다는 점에서, 판문점회담은 남북이 한반도 문제 해결을 주도해 가는 역사적 분수령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다. 2000년, 2007년 남북 정상회담 때는 비핵화 문제는 의제로 다뤄지지 않았다. 북한이 핵 문제는 미국과 논의할 사안으로 여기고 남북 대화의 의제로 올리는 것을 한사코 거부했기 때문이다. 상황이 바뀐 것은 문 대통령의 적극적인 중재 외교, 트럼프 대통령이 주도한 국제사회의 대북제재, 김 위원장의 대외 전략 노선의 변화가 맞물린 결과다. 판문점회담의 '완전한 비핵화' 선언이 북미 정상회담에서 핵과 평화를 교환하는 구체적 비핵화 로드맵 합의를 낳는 강력한 추동력이 되기를 바란다.

물론 이번 회담에서 북한 비핵화의 시한이나 방법 등에 대한 합의까지 이뤄지지 못한 대목은 아쉽지만, 이는 북미 정상회담에서 담판 지어야 할 사안이라는 점에서 거기까지 나아가는 것은 애당초 한계가 있었다. 북한이 핵을 폐기하는 대신 반대급부로 요구하는 체제 안전 보장은 우리 정부가 아니라 미국이 대답해야 할 사안이다. 비핵화 과정의 구체적 절차도 상호 조치들을 수반하는 문제이기 때문에 핵 폐기 협상의 본무대인 북미 정상회담에서 조율돼야 할 사항이다.

◇ 정전 65년 만의 종전선언 추진, 새로운 평화시대 문 열기를

남북 두 정상은 판문점 선언을 통해 "더 이상 전쟁은 없을 것이며, 새로운 평화의 시대가 열리었음을" 엄숙히 선언했다. 이를 위해 올해 종전을 선언하고, 정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전환하며 항구적 평화체제 구축을 위한 남·북·미 3자 혹은 남·북·미·중 4자 회담 개최를 적극적으로 추진해 나가기로 했다. 양측 정상의 선언과 구상대로 추진만 된다면 정전체제 65년 만에 한반도에는 평화의 새로운 역사가 시작되는 셈이다.

트럼프 대통령도 판문점선언이 발표되자 곧바로 트위터에 글을 올려 "한국전쟁이 끝날 것이다!"라며 "미국과 모든 위대한 미국인은 한국에서 일어나는 상황을 매우 자랑스러워 해야 한다"고 연내 종전선언과 평화협정 체결 구상에 환영의 뜻을 표했다. 정전협정 체결 당사국인 미국의 정상이 남북 정상 간 합의를 공개적으로 지지함으로써 '한반도 평화시대로의 전환' 구상은 한층 탄력을 받을 전망이다.

이를 위해서는 판문점 선언이 밝힌 대로 군사적 긴장상태 완화와 전쟁위험 제거를 위한 실질적인 조치에 대한 구체적 협의가 원만히 진행되길 바란다. 양측이 합의한 대로 비무장지대(DMZ)를 실질적인 평화지대로 만드는 것은 의지와 진정성만 있다면 실천할 방법은 얼마든지 있을 것이다. 우발적 충돌을 막기 위한 군 수뇌부 간 직통전화 설치를 포함한 다양한 방안이 검토될 수 있다. 우선 5월 중에 개최키로 합의한 장성급 군사회담에서 진지하고 실질적인 방안들이 논의되기를 바란다.

다만 단계적 군축 방안을 비롯한 여러 군사적 문제들은 우리 사회 내부에서 충분한 공감을 받으면서 차분히 추진되어야 한다. 안보 사안은 관점에 따라 첨예하게 시각 차이가 있을 수 있고, 본질과 상관없이 국민의 분열을 촉발할 수도 있다는 점을 당국은 잊지 말아야 한다. 이런 우려가 기우가 되도록 정부는 충분한 의견 수렴과 설명 속에서 국민적 합의와 공감대를 바탕으로 하나씩 추진하길 바란다. 행여나 남남(南南) 갈등이 생겨난다면 결코 바람직한 일은 아닐 것이다.

◇ 상시 대화채널 구축한 남북, 소중한 동력 유지해야 한다

이번 회담은 남북 관계발전 측면에서도 획기적 동력을 마련했다. 남북 정상이 정기적 회담과 직통전화를 통한 현안 수시 논의에 의견을 모았고, 문 대통령은 올가을 평양을 방문하기로 했다. 또 개성에는 양측 당국자가 상주하는 공동연락사무소 설치를 합의했다. 이제 남북 간에는 실무선에서 최고 지도자까지 상시적인 대화 통로가 마련됐다. 의미가 매우 크다.

새로운 관계발전의 동력이 약해지지 않도록 남북 당국 모두 노력하길 바란다. 특히 과거 남북은 좋은 합의를 어렵게 하고도 제대로 실천하지 못함으로써 원점으로 되돌아가는 실패를 되풀이한 아픈 교훈들이 적지 않다. 이런 일이 더는 재발하여서는 안 된다. 남과 북은 고위급회담을 비롯해 각 분야의 대화와 협상을 이른 시일 안에 개최하기로 했다. 우선 앞으로 열릴 각종 회담에서 정상회담 후속조치가 차질 없이 논의되고 합의되어야 한다.

남북 간 각계각층의 다양한 협력과 교류 왕래, 접촉 활성화를 명문화한 합의도 소중하다. 또 적십자회담 개최에 의견이 모이고, 8·15를 계기로 이산가족 상봉행사를 진행하기로 합의한 것은 다행스럽다. 이산가족 문제는 남북 간의 가장 중요한 인도적 현안이다. 한을 안고 세상을 뜨는 고령층 이산가족이 늘어나고 있다. 이제는 일회성, 이벤트성 만남이 아닌 전면적 생사확인과 상시적 만남을 포함한 근본적 접근 전환이 이뤄지기를 희망한다.

◇ 대결의 시대로 되돌아가지 않는 '불가역적' 실천 이행해야

북한의 최고 지도자가 한국전쟁 후 남한 땅을 처음으로 밟고, 남북의 두 정상이 판문점 군사분계선 상에서 손을 맞잡은 장면은 한반도 역사의 대전환을 선언했다. 판문점이 분단의 상징에서 평화의 상징으로 세계인들에게 각인되는 순간이기도 했다. 예정에 없이 두 정상이 나란히 손을 잡고 군사분계선을 넘어 북으로 월경했다가 다시 남으로 넘어오는 장면은 분단의 벽을 함께 허물고 대결의 역사에 종지부를 찍자는 상징적 행동이다. 다시 대결의 시대로 역사의 수레바퀴를 거꾸로 돌려선 안 된다.

앞으로 중요한 것은 신뢰를 바탕으로 한 판문점선언의 이행이다. 역사의 물줄기를 바꾸겠다는 남·북·미 정상들의 강한 의지가 작동하고 있어 합의 이행을 기대하게 한다. 연쇄 정상외교를 통해 정전체제에 종말을 고하고 한반도 평화와 번영의 시대라는 새 길을 활짝 열어젖히길 온겨레가 한마음으로 바란다. 정부는 회담 결과를 국민에게 투명하게 설명해 공감대를 확보하는 것은 물론 국제사회의 지지를 확보하기 위해 관련국에 대한 후속 외교도 소홀히 하지 말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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