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희 맞는 국회, 자축 아니라 자성해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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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희 맞는 국회, 자축 아니라 자성해야 할 때다
  • 연합뉴스
  • 승인 2018.05.29 21: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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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가 개원 70돌을 맞는다. 격랑으로 일렁였던 해방정국의 총선거를 거쳐 1948년 5월 31일 첫걸음 내디딘 국회는 국호를 대한민국으로 정하고 헌법을 제정하고 정부를 수립하는 주춧돌을 놓으며 신생 독립 국가의 미래를 밝히는 등불로서 일했다. 독재 정권 시절 '통법부'로 불리는 오명을 뒤집어쓰기도 했지만, 압제에 견제 기능을 하면서 민주공화국의 정체성을 유지토록 이어온 역할은 평가받아야 한다. 그러나 국회는 고희(古稀)를 맞는 시점에서 자축해야 할 것이 아니라 대의 민주주의 본연의 기능을 제대로 수행하고 있는지 냉철하게 자성하는 시간을 가져야 한다.

20대 국회는 29일로 전반기를 마무리하고 반환점을 돌아서 30일부터 새롭게 시작한다. 하지만 신발 끈을 다시 동여매고 새롭게 의지를 다질 만큼 출발이 산뜻하지 못하다. 오히려 국민의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장면들로 기대를 외면하고 있다. 지난 24일 구성됐어야 할 후반기 국회 의장단을 제때 뽑지 못해 당분간 국회를 대표하는 의장도 없는 채로 허송할 처지다. 비위 혐의로 구속영장이 청구된 동료 의원 2명의 체포동의안을 부결시켜 국민의 손가락질이 쏟아진 지 채 며칠도 되지 않아 또다시 동료 의원의 구속을 막으려는 '방탄국회' 소집 논란에 휩싸이며 여론에 아랑곳하지 않는 풍경을 연출하고 있다.

특히 1987년 직선제 개헌 이후 31년 만에 찾아온 개헌의 기회를 무산시키면서 당리당략과 정치력 부재의 민낯을 고스란히 노출했다. 1년 반 동안 국회 헌법개정특위까지 가동했지만, 국회에 부여된 개헌 발의권도 행사하지 못했고, 대통령이 발의한 개헌안은 의결 정족수 미달에 따른 '투표 불성립'으로 폐기했다. 여야 모두 지난 대선 때 개헌을 공약으로 내걸었고 "87년 체제를 극복해야 한다"는 목소리를 이구동성으로 외쳐왔던 점에 비춰본다면 이를 실행으로 옮기지 못하는 국회의 무능력은 개탄스럽다.

또 북한 비핵화와 한반도 평화구조 정착을 위해 두 차례의 남북 정상회담이 이어지고, 사상 첫 북미 정상회담으로 향하는 도정에 국회의 존재감은 미미하다. 남북 관계와 외교는 청와대와 행정부의 주도로 전개되는 것이 불가피하지만, 국회도 공론을 모아 정부의 협상력에 지렛대 역할을 하는 것이 바람직한 모습이다. 하지만 '판문점 선언' 지지 결의안조차 합의로 채택하지 못하는 것은 무기력한 국회의 현주소를 반영한다. 임시 국회를 방치하던 끝에 '벼락치기 졸속 심의'로 추경 예산안을 처리하면서 예산 심의권한을 방기하는 모습이나, 20대 전반기 법안 처리율이 27%로 19대 국회 32%보다 떨어지고 있는 것은 국회 생산성에서도 국민 기대치에 벗어나는 흐름이다.

더 큰 문제는 국민이 느끼는 국회의 무책임과 무능력, 비효율에도 불구하고, 정작 이에 둔감한 국회의 무감각이다. 스스로 실책과 오류를 바로잡는 자정 기능이 작동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국가와 공동체보다는 당면한 선거 승리나 당리당략을 우선하는 관성적인 정치에서 벗어나지 못한 탓일 것이다. 현재의 국회를 타임머신에 태워 70년 전으로 옮겨다 놓는다면 과연 국호를 정하고 헌법을 제정하며 나라의 토대를 쌓는 막중한 역사적 대임을 수행할 수 있었을까 곰곰이 생각해볼 일이다. 여야 의원들은 제헌국회 선배들이 만든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에게서 나온다'는 헌법 조항을 되새기고 숙고하며 20대 후반기 국회를 시작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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