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비 경쟁의 끝은…'농게'에게 물어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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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비 경쟁의 끝은…'농게'에게 물어봐
  • 연합뉴스
  • 승인 2018.06.23 2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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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간 '동물의 무기'…동물을 닮은 인간의 무기경쟁

수소폭탄이나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같은 첨단 무기들은 물리학, 에너지·정보 기술, 정치, 군사학 등 인류의 역량이 결집한 문명의 총아라 할 만하다.

무엇보다 지구를 통째로 날려버리고도 남을 파괴력은 다른 종(種)들은 범접하기 힘든 인간의 비범함을 증명하는 듯하다.

하지만 오늘날의 대량살상무기에 이르기까지 수천 년간 인간이 무기를 발전시켜온 원리는, 정글이나 바닷가에서 생존과 번식에 열중하는 다른 동물들과 놀랄 만큼 흡사하다.

신간 '동물의 무기'(북트리거 펴냄)는 인간의 무기와 자연계 생명체들이 진화시켜온 무기들이 얼마나 유사한지를 보여주는 다양하고 흥미진진한 사례들을 제시한다.

▲ 동물의 무기

저자인 더글러스 엠린 미국 몬태나대학교 교수는 동물들의 무기 발달과 진화, 인간 무기와의 비교연구 분야의 전문가다.

흰개미는 수백만 마리가 협동해 배설물과 모래 알갱이를 이용해 2m 이상 높이의 토루(土壘)를 쌓는데 가마에 구운 벽돌만큼 단단한 내구성을 자랑한다. 이 요새는 단단한 외벽과 내벽 두 겹으로 싸여있고 그 속에 자리한 도시는 좁은 미로와 같은 터널들로 연결됐다. 안으로 들어가려면 좁은 문을 통과해야 하는 구조여서 적은 병력으로 대규모 침략자를 막아낼 수 있다.

실제로 아프리카 군대개미는 5천만 마리가 몰려다니며 가축까지 뼈만 남길 만큼 가공할 파괴력을 자랑하지만, 흰개미는 견고한 성채 때문에 건드리지 못한다.

높은 성벽으로 둘러싸인 인간의 고·중세 도시들은 흰개미의 토루를 닮았다. 튼튼한 벽돌담이나 돌담으로 에워싸인 데다 요새화한 문을 통해서만 출입할 수 있어 방어에서 수적 열세를 만회할 수 있다. 인간이 이중벽으로 성체에 두 개의 방어선을 구축한 건 기원전 1천500년 무렵부터다.

무겁고 화려한 갑옷으로 전신을 가린 채 말을 타고 주체하기 어려운 긴 창을 들고 펼치는 중세 기사들의 마상 창 경기는, 거대한 뿔과 상아, 집게발을 앞세우고 사생결단 맞붙는 무스나 코끼리, 사슴벌레, 농게의 짝짓기 결투와 흡사하다.

기사들은 말 위에선 막강했으나 말에서 떨어지면 갑옷 무게 때문에 뒤집힌 거북처럼 혼자선 일어설 수도 없었다.

이처럼 기형적으로 비대해진 무기는 다른 동물들에서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미국 순록은 뿔이 길이 1.5m, 무게 9kg으로 몸무게 8%를 차지한다. 멸종한 큰뿔사슴(아일랜드 엘크)은 뿔 길이가 4m가 넘고 무게는 90kg에 달했다.

체중 대비 가장 큰 무기를 가진 농게는 집게발이 몸무게의 반을 차지한다.

이런 극한의 무기들은 극한의 비용을 요구한다.

한 연구 결과에 따르면 수컷 무스가 뿔에 들이는 비용은 에너지나 영양 면에서 암컷이 두 마리 새끼를 낳아 기르는 일과 맞먹는다. 뿔이 자라는 데는 많은 칼슘과 인이 필요한데 식사만으로 충분치 않아 다른 뼈에서 빌려온다. 이는 심각한 계절성 골다공증을 유발하므로 결투 중 뼈가 부러져 생명을 잃기 십상이다.

수컷 농게는 큰 집게발 때문에 천적인 새들에게 쉽게 노출되고 재빨리 대처하지도 못해 쉽게 잡아먹히기도 한다.

그렇다면 생존까지 위협하는 이런 무기들은 왜 진화시켰을까.

사실 대개의 동물은 온건한 비용의 온건한 무기를 선호한다. 흔히 접하는 개나 고양잇과 동물들처럼 무기가 유난스럽지 않다. 이는 크기와 휴대성, 비용과 효용 사이의 적절한 타협의 결과다.

하지만 특정 상황에서는 극한의 무기경쟁이 발생하게 된다.

책은 무기경쟁을 촉발하는 세 가지 조건을 제시한다.

우선, 치열한 경쟁이다. 특히 짝짓기 경쟁이 가장 치열하다. 수컷들은 번식의 기회를 얻기 위해 질병에 대한 면역, 생리, 먹이 등 모든 것을 희생한 채 무기에 에너지를 쏟아붓는다.

나머지 두 조건으로는 자원이 국지적으로만 존재해 방어의 이득을 충분히 얻을 수 있는 생태환경과 무질서한 쟁탈전이 아니라 1대 1로 싸우는 대칭형 전투를 든다.

무기 경쟁이 영원히 지속하지는 않는다. 경쟁을 촉발한 환경이 변하거나 더 효율적인 무기나 속임수가 등장했을 때, 그리고 더 이상 과도한 비용을 대기 어려울 때 경쟁은 종식한다.

거대한 무기는 기형적이지만 나름의 합리성도 있다. 거대한 무기가 실제 싸움에 쓰이는 경우는 드물다. 무기가 커질수록 억제력도 따라서 커지기 때문이다.

농게는 결투 전 수십 시간이나 집게발을 흔드는데 경고용이다. 농게들은 집게발 크기로 상대방 전투력을 가늠한 뒤 싸움 없이 물러선다.

저자는 이런 원리가 인간의 무기에도 똑같이 적용된다고 지적한다.

국가 간 경쟁에서 대립하는 주체는 정부고, 무기는 해당국의 군대라 할 수 있다. 두 경쟁국 간 무기경쟁은 두 마리 동물이 대결하는 것과 닮았다.

실제로 냉전 시기 초강대국인 미국과 소련의 경쟁은 극한의 군비 경쟁을 낳았다. 미국은 국민에게 제공할 각종 사회복지를 희생하면서 국내총생산(GDP)의 10% 이상인 수십억 달러를 방위비로 지출했으며, 소련은 GDP 40%까지 군비로 썼다고 한다. 결국 소련은 부담을 견디지 못하고 1991년 무너졌다.

저자는 이제 "미국은 해변에 남아있는 가장 큰 농게"가 됐다고 말한다.

과거 핵무기와 같은 우월한 전력은 농게의 거대한 집게발처럼 전쟁 억제력을 발휘했다.

하지만 이제는 무기를 개발·생산하는데 드는 비용이 싸지면서, 초강대국만 가질 수 있던 대량살상무기를 많은 나라가 보유하게 됐다.

세계가 새로운 경쟁 국면을 맞게 된 것이며, 패권을 유지하는 방식에도 변화가 생길 수밖에 없게 됐다.

북트리거 펴냄. 408쪽. 1만9천5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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